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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Dec 03. 2024

정체

다비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신문을 한 부 사들고 둥그렇게 말아 물고 들어왔다. 햇빛이 잘 드는 창 앞 바닥에 신문을 넓게 펼쳐두고는 그 위에 올라가서 매일 기사를 열심히 읽다가 졸리면 신문지 위에서 그대로 졸다가 그루밍을 한다. 

“하나야 이제 일어났어? 좋은 아침! 오늘 아침은 삶은 계란 노른자 반 개 올린 참치 캔이 좋겠는데...”

“아니, 너는 신문 볼 시간도 있으면서 아침 좀 챙겨 먹지 그래?”

“나야 그러고 싶지 그런데 인간들이 만든 문명이라고 도대체가 고양이는 캔을 딸 수가 있게 만들었어야지. 캔만 딸 수 있었으면 네 아침도 준비해 줬지.”

“그래. 그래. 네말이 다 맞아 후~~ 말이나 못 하면, 계란 후라이로 먹으면 안 돼 그럼?”

“당연히 됩니다. 그럼 반숙으로 부탁해.”

“네! 네!”

“인간들은 신문도 인간 사이즈에 맞춰 만드니까 도대체가 동물들이 신문 볼 생각을 안 하지. 이래서 언제 함께 사는 세상이 된다는 건지. 참!”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신문지 위에 앉아 다리를 번쩍 들고 그루밍을 한다.



다비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히 데려올 때는 어떤 아기 고양이보다도 순한 눈망울로 쳐다봐서 순진무구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뉴스를 잘 알고, 뻔뻔한 아저씨 같다. 고양이 나이 다섯 살이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셈이라며 은근 오빠처럼 군다. 그러다가도 다른 동물들을 만나거나 집 밖에 나가면 어린 개냥이인척 살갑게군다. 메모에 집착해서 알아먹을 수 없는 메모들을 집안에 가득 모아놓는 것이나, 가끔은 야밤에 나가서 새벽에나 들어오기도 하고 좋은 룸메이트는 아니다. 강아지들은 몰라도 고양이들은 옷 입기를 싫어 하는데, 특히나 멍청한 아기 고양이나 입을 법한 옷, 아니면, 누가 봐도 암컷들이 입을 만한 옷을 입기를 좋아하는 것, 치장을 좋아하는 것도 이상하다. 

가끔 한가한 주말이면 영화를 보면서 같이 맥주를 마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해 준다. 보통고양이들은 알콜을 잘 분해하지 못해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어떤 삶을 산 것인지 다비는 주량도 꽤 된다.

“내 이름 뜻이 뭔지 알아?”

“다비? 이쁜 이름이지 너한테 안 어울리게. 크크크” 

“크크킄 흐흐크 그렇지. 집이나 병원에서 부모님 보살핌 아래 태어난 집고양이들은 모르지.

살쾡이들은 아직도 변한 세상에 적응 못 하고 대부분 야생에서 태어나지. 태어나자마자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뭔지 모르지.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나서 이제 막 눈을 떴을 때 사람들에게 포획 됐지. 번역기도 그때 심고, 그때 많은 일이 있었지. 하여간 그래서 나는 남들과 생각하는게 달랐어. 달라 보였나 봐. 어릴 때 훈련소 동기, 아니 친구들이 답이 없다면서, 다비라고 이름 지어줬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비가 취해서 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다가 무슨 군가 같은 노래를 부르다 잠들었다. 

다음날에는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창가에서 그날 신문을 읽으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같이 똑똑한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데, 살쾡이도, 개도, 너같이 똑똑한 애를 본 적이 없는데, 네가 직업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뭐. 경비 같은 거도 좀 하고, 공장에서 물건 분류하는 거도 좀 하고 안 하지는 않았어. 알면 다쳐, 알려고 하지마.”

정작 술에 취하지 않은 다비는 농담으로 어물쩡 넘어갈 뿐 뭐하나 시원하게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세계 동물의 날이라서 다비가 들어오면 맥주라도 한 잔 할까 생각하면서 TV를 틀었다. 화면에는 방금 발생한 무무 빌딩의 침입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무무 빌딩 꼭대기 층에서는 무지개빛 연막탄이 빌딩 조명에 반사되어 낯보다 더 환상적인 분위기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고급 식당만 털더니, 무무 빌딩 테러라니. 이제 좀 과격해졌는데, 저기는 들어가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간 거지?”

동물 해방 연대는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는 평화적 시위 단체다. 동물들이 주축이 된 단체 중에 가장 급진적이라는 것이지, 대부분 작은 시위를 할 뿐이다. 이 단체가 유명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어딜 가나 터트리는 무지개 연막탄 때문이다. 무지개색 연막탄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시위 때마다 색을 맞춰서 일제히 각각의 연막탄을 챙겨와서 꼼꼼히 터트린다고 한다. 

TV를 보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다비가 오지 않길래, 혼자 맥주를 마시고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동물의 날이니 다비도 나사가 풀려서 축제에서 친구라도 사귄 모양이다.

그날 새벽에 다비가 급히 나를 깨웠다. 곁에는 처음 보는 새까만 그레이트 댄과 함께 와 있었다. 

“무슨 일인데, 이 새벽에 깨워? 얜 누군데?”

“니가 도와줘야겠어. 누가 좀 다쳤어.”

다비는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맥주마시고 자서 괜찮은지 모르겠네~” 

하면서 미적미적 침대에서 나왔다. 

거실로 나가자 쇼파에는 방울뱀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길게 누워있었다. 

“어머! 깜짝이야! 뱀이잖아!”

“미안. 미리 말해줄 걸 그랬군. 네가 이 친구를 좀 치료해줘야겠어. 총상이야.” 

“나는 파충류는 자신이 없어. 그리고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병원으로 가야지!” 

“병원에는 갈 수 없어, 필요한 것은 대충 근처 동물병원에서 챙겨왔어.” 

식탁에는 이미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녹색 타월과 거즈, 메스, 소독약, 마취제, 주사기 등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일단은 상태가 위급한지 확인이라도 할 생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관통상이어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봉합만 하면 되었다. 수술은 금방 끝났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일단 지혈은 했지만, 병원에는 가야 해. 혹여 모를 감염이나 검사도 해야지.”

“고마워, 하나야. 이 친구는 괜찮아질거야.” 

“이 야밤에 어디서 뭘 하고 온 건데, 이 개는 또 누구고? 신고는 한 거야? 응?”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이 뱀 좀 지켜봐 줘.”

“아니,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병원은 절대 안 돼. 너만 믿는다.”

 그러면서 다급히 나가버렸다. 

급히 나가는 다비와 그레이트 댄은 모두 허리춤에 말로만 듣던 동물용 권총을 차고 있는 것 같았다. 잠결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동물들이 사용하는 권총을 본 적은 없다. 대부분의 물건은 인간이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지고 특히나 무기는 거의 인간만 사용한다. 동물용 무기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동물용 권총은 대부분 머즐에 물게 되어있는데, 가로로 넓적한 사각형 가운데에 총구가 있고 뒤에 집게가 달려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집게 사이에는 방아쇠가 달려있는데 동물의 종류에 따라서 방아쇠의 개수가 다르다. 개나 고양이의 경우는 보통 4개의 방아쇠가 동시에 제껴져야 발사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있다. 살짝 물어서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꽉 물면 송곳니가 방아쇠 사이로 들어가 방아쇠가 뒤로 제껴지면서 발사된다. 거추장스럽게 크기가 크기도 하고, 동물들은 인간들보다 필요 없는 싸움은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서 본 것이 다다. 게다가 동물들은 인간들과 달리 공격은 못 해도 방어능력이라도 한가지씩 출중해서 무기 없이도 자신은 충분히 지킨다. 

이 총상을 입은 뱀과 권총을 차고 나간 다비와 그레이트 댄, 뭘 하고 다니는 걸까?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을 하다가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다비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신문을 넓게 펴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다. 

“좋은 아침. 잘 잤어? 오늘은 배가 좀 고픈데 참치캔에 생꽁치 한 마리 가능할까?”

“윽 방울뱀 옆에서 잠들다니! 생꽁치 좋아하시네, 어젯밤엔 무슨 일이었던 거야?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뱀도 치료해줬잖아. 이 정도면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이야기 해줘야지!” 

“그래. 나도 이야기해 줄 생각이었어. 앞으로도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거든. 아마 사정을 듣고 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도와줄 거야. 우릴 이해해 주겠지. 

사실, 나는 국정원 출신 스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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