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0년 서울
병원 근무 내내 힘들었던 마지막 야간 당직이 끝났다. 퇴근하는 아침 7시의 햇살은 지금까지는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비몽사몽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쓸데없이 눈부셨다. 하루 중 가장 단정하게 출근하는 이들 사이에서 숨을 수도 없게 만들었으며, 지친 몸은 빛나는 아침 햇빛을 받고 혼란스러워서, 자고 싶은지,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지 헷갈려서 집에 돌아와도 한동안 잠들 수 없었다. 보통은 운전할 기력도 없어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했는데, 오늘은 차를 가져오기를 잘했다.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퇴사가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나. 햇빛에 달궈진 공기 입자 하나 하나가 피부에 닿으면서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면서,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라고 알려주는 듯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반짝거리며 생기가 넘친다. 조수석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든 환자만 없었더라면 노래를 크게 틀고 드라이브를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를 틀지 않아도 비트가 울리고, 신나는 멜로디가 들렸다. 이제 막 불행을 헤치고 겨우 살아 돌아온 살쾡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힐끔 쳐다보았으나 응급실에서도 편히 쉴 수 없었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 차를 멈출 때마다 간간이 지도를 펴서 길을 확인했다. 다행히 간호사가 적어준 주소는 멀지 않아서 머릿속에 울리는 비트에 심취해서 춤을 추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건물 4층이군’ 곤히 잠든 환자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석을 들어 올리는 순간 살쾡이가 반짝 눈을 떴다.
“다비님. 집. 여기 4층 맞죠?”
대답은 없었으나 환자분도 집을 알아본 듯해서 방석째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딱 봐도 원룸인데, 설마 단 둘이 살진 않겠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면서 벨을 눌렀다. 기척이 없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자 고양이 환자가 방석에서 뛰어내려서 겨우 한 뼘 남짓한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간다.
‘무무 번역칩 주고 가야 하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들어가 버리나?’ 생각하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찰칵 현관문이 열린다. 고양이는 현관 앞에 이미 두 발을 모으고 들어오라는 듯이 앉아 있다.
“문 열어주려고 그러셨구나” 역시 오해는 인간의 특기다.
집은 예상보다 훨씬 좁은 고시원식 원룸이었다. 가족들이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텅빈 방안에 두고 가기 찜찜해졌다.
“다비님. 다른 가족 없어요? 사람 한 명. 고양이 한 마리, 단 둘이 살았어요? 제가 뭐라고 하는지 이해하세요?”
꼬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가끔씩 답답한 듯이 바닥을 탁탁 치는 것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 환자분 이름이 뭐랬더라? 맞다. 미연!”
미연이라는 이름에 앞발을 모으고 단장히 앉았다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벌떡 일어나서 내 쪽으로 걸어오다 다리가 풀려서 넘어져버린다. 손가락을 두 개를 보여주며,
“둘이만 살았어요? 이 집에?”
그러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하~ 지금은 말 못 하겠다. 지금 집사가 사망했다고 전해주고 가버리면, 내 말을 이해 못 해서 혼자 계속 기다리는 거 아냐? 아... 어떡하지? 모르겠다. 일단. 번역 모듈 활성화 되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만, 우리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어차피 퇴사도 했겠다. 시간도 많을 텐데 뭐.’
“다비님, 미연님 오늘 못 와요. 저랑. 두 밤만, 우리집, 같이, 가요.”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열심히 설명했으나 못 알아들었나보다. 방석 위에 올라가자고 해도 요지부동이고, ‘우리 집 같이 가요.’ 이렇게 말하면서 품에 안고 다시 차로 데려가려는데, 다친 몸으로 자꾸 뛰어내려 집으로 돌아온다. 다리에 힘도 없는지 철퍼덕 현관에 엎드려 버린다.
‘아 불쌍해 죽겠네. 환자분 집사 이제 영영 못 와요.’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해서 다시 한번 거의 빌다시피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말했다.
“다비님!! 미연님 못와, 미연 못 와.”
그 순간 동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면서 나를 올려다보던 그 씁쓸한 노란 눈동자는 가엾기 짝이 없었다. 이번에는 방 한쪽에 놓여있는 서랍장 귀퉁이에 기대서서 서랍장을 앞발로 긁다가 다리에 힘이 푸려 자꾸만 주저앉고 만다. 가구 귀퉁이를 한두 번 긁어댄 것이 아닌지 이미 발톱 자국으로 가구에 상처가 나 있다.
“다비님 벌써 일어서면 안 돼요. 그래도 며칠 푹 쉬어야 나아요.”
이렇게 말해봤지만 뭔가 답답한지 계속 일어나서 서랍장을 앞발로 긁는다.
‘뭔가를 이야기 하고 싶은건가?’
일단 서랍장을 열어 줬다. 거기에는 고양이 간식이며 장난감 따위가 들어 있었다.
“여기 서랍 열어달라고 한 거에요?”
그러자 폴짝 뛰어올라 서랍장을 한참 뒤지다가 장난감을 하나 물고 내려왔다.
‘생각보다 훨씬 어린 고양이였나보네. 장난감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어?’
이번에는 자기 발로 환자용 방석으로 터덜터덜 올라가 몸을 둥그렇게 말아 엎드린다. 이제 가자는 뜻인 것 같아 얼른 고양이를 안고 차로 돌아왔다.
퇴사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서였는지, 이 희귀한 고양이 같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꼭 돕겠다고 결심하면서, 치료하는 의사 대신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생명을 보듬어주는 수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 살쾡이는 세상에 나와서 만나는 첫 시험같은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로, 환자를 집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로 다비는 이틀 내내 잠만 잤다. 잠깐 깬 사이에 밥이나 물을 줘도 먹지 않고, 집사가 못 온다고 말했을 때처럼 동공이 세로로 좁아진 눈으로 기운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잠든 삵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불쌍한 것, 세상에 혼자 남았구나! 나도 혼자야.”
그때, 잠든 삵의 작고 부드러운 머리를 내 손에 기댔다.
다음날 잠시 장을 보고 돌아왔을 때 다비는 집안 곳곳을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다니고 있었다. 살금살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걸로 봐서 겁이 많은 스타일인 듯 하다.
다비님! 이제 번역기가 작동할 때가 됐는데, 뭐라고 아무말이나 해봐요. 그러자 냉장고와 벽 사이 빈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던 다비가 나에게 왔다. 동그랗게 확장된 눈을 하고서 고양이보다 훨씬 둥그런 귀에 통통한 몸을 하고서 올려다보는데 보통 귀여운 게 아니다.
“몇 살이야? 아기는 아니라서 5살은 된 줄 알았는데, 혹시 3살이야? 여기는 겁 안 내도 돼. 이제부터 나랑 살아도 돼.”
다비는 마치 집고양이처럼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몸통으로 나를 쓰다듬고는 별말 없이 다시 탐색을 하러 갔다.
“츤데레 고양이네, 이제 내 말 알아듣지 않아? 번역기 테스트도 해야 하니까,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야~~옹”
“알아들었다는 거야?”
“이! 야~옹”
“귀찮다는 거야 뭐야? 삵이 고양이처럼 우는 소리는 처음듣네...”
다비는 쳐다보지도 않고 집안 탐색에만 한참을 몰두했다. 며칠간 먹이도 주고, 관찰을 했지만, 경계도 하지 않고, 쇼파에서 쓰다듬으면서 함께 영화도 봤는데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비야, 아무래도 무무 삽입이 잘못되서 말을 못 하는 것 같아. 내일 병원에 들렸다가, 문제가 없으면 AS센터 다녀오자.”
“응? 병원? 안 가도 될 것 같아.”
“오! 다비님, 번역기 정상 작동합니까?”
“응. 잘 돼. 며칠간 여기가 안전한지 확인하느라.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지.”
“아니, 우리 집인데 당연히 안전하지. 그렇다고 말을 한마디도 안해요? 답답해 죽는 줄 알았잖아요.”
“하나라고 했지? 이제 네 환자 아니니까, 이상하게 존댓말 섞어가며 이야기 하지말고, 여기 같이 살아도 된다고 했다! 맞지?”
“응. 갈 데 없으면 같이 지내자.”
“뭐..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음.. 같이 지내는 걸로 하지.”
“아니, 다비님,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그게 무슨 배은망덕한 말이야? 같이 지내주시는 겁니까? 아... 그리고, 너랑 같이 실려왔던 여자 환자는 사망 했어... 뭐라 해줄 말이 없네.”
“아니야, 괜찮아. 안타깝지만 사실 그 여자 집에는 일주일 정도 잠시 있었어. 원래 집사도 아닌데, 친절한 여자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 그런데, 그 집에는 왜 그렇게 돌아가려고 했던거야?”
“아. 그건.. 뭐 좀 찾아볼 게 있어서. 중요한 건 아니고,”
“나는 또 집사가 그리워서 그러는 줄 알고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하나 엄청 걱정했는데... 그럼 혹시 따로 직업이 있거나 그런거야?”
“아~ 하나씨 궁금한게 많으시네! 차차 알아갑시다!”
“으~ 말 못할 때가 귀여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