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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인생은 원래 개힘들다

by 심재 Mar 31. 2025

어김없이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 7시 37분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오후 1시 전세입주 잔금건 하나가 있다


공식적인 업무 1시간 남짓과 그외 자잘하게 처리해야할건들


오후엔

오랜만에 휴가를 내어서 오후 시간을 나랑 보내주겠다는

딸의 통 큰 기부건이 있네


그럼에도 뭘 해야 할지 갑자기 멍해진다

고민이다

여느 월요일 오전이었다면 고민 없이 세수만 하고 일단

탄천으로 나갔을 것이다


루틴이 깨진 이 느낌은 무얼까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제의 나의 하루가  오늘의 나의 하루를 간섭하기 시작하네


어제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한평생 산 느낌이다

길고 긴 인생 여러 사람의 생을 하루 만에 다 겪은 뒤의 해탈이 오늘 찾아왔다


실은 어제

요즘 이것 안 보면 대화가 안 된다는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16부작을 다 해치웠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밤 9시 가까이가 되어서 끝이 났다


12시간 이상을 꼬박 봤다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후련했다

남의  인생이지만 힘들었다

다 해치워서 후련했다


내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인데 다 끝난 혹은 다 끝나가는 드라마 속의 인생들이 부럽기도 하다.


대작이다

요즘 보기 드문 대서사시 같은 드라마이다


며칠 전 아들이

엄마는 이걸 보면 "무조건 운다 100퍼센트"

라는 말에 반발심이 생겨서

어디 내가 우나 봐라

처음부터 단단히 마음먹고

냉혈한의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리라 굳게 결심하고

시작했다



'어 괜찮네 머 볼만하네

울기는 무슨

나는 울보가 아니야' 

 

몇 회가 넘어가며

하~~~~~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요즘 부쩍 더 나를 놀려대기 시작한 아들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서 분했지만

결국엔 맥을 놓고 울어버렸다.


하루동안 몇 사람의 인생을 내가 살아낸 느낌이었다

애순이엄마 광례

애순이

관식이

금명이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인생을 내가 산 느낌을 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뭔 놈의 인생이  이리도 힘드냐




누구나 살아내야만 하는 자기만의 시간들이 있다

고통의 시간들

그것을 이겨내게 하는  사람의 관계

인간 본연의 치유의 힘

사랑

성실

인내. 이러한 단어들을 드라마에서 보았다.


나는

애순이 엄마와

관식이 시점에서 드라마를 보게 되더라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남자 때문에 울었네.  좀처럼 남자어른에 대한 연민이 나는 없다  어제는 예외였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살아있는 존재 자체가 주는 항상성



 그냥 숨쉬는거다

힘들어도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좋다


힘들면 숨을 몰아쉬면 된다


무서우면 숨을 좀 참으면 된다


괴로우면 거칠게 숨을 쉬면 된다


즐거우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면 된다


행복하면 그 숨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폐에 각인시켜 놓고 앞으로 찾아들지 모를 고통의 때에 기억하게 해 두면 된다


불안하면 숨쉬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어젯밤에 드라마를 다 보고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갑자기 팥죽이 먹고 싶었다.


드라마도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드라마가 끝나고 결이 다르지만  남편은 관식이 코스프레를 하는듯했다


남편이 팥죽 2인분을 배달시켜 주었다

남편은 한 숟가락도 안 먹었다

나 혼자 1인분 반을 해치웠다.



어제 남편의 생일이었다

애순이였다면 관식이 생일에 뭘 했을까


나는 애순이 아니다


종일 멀찍이 앉아 한마디도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넷플릭스만 봤다



"살민 살아진다"



어제의 드라마 인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내 숨 쉬러 탄천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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