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는 건 예보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루종일 쉴 새 없이 내릴 줄이야. 출근길에는 마트에 파는 스노우트리처럼 소나무 위에 눈송이들이 수줍게 내려앉은 수준이었는데, 오후가 되니 소나무가 첫눈 등쌀에 못 이겨 구부러 지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청렴의 상징인데 잠들어 계시던 선비님들 놀랄 일이다.
1층 사무실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구멍 송송 뚫린 매쉬형 운동화 신고 잠시 밖으로 나간다. 발이 눈 속에 즉시 빠져 버린다. 구멍 사이로 눈이 녹아 들어온다. 바로 들어가면 모양 빠지니 좀 더 걸어보기로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으로 들어가니 나 홀로 노르웨이 숲에 온 것 같았다. 물론 노르웨이 숲에 가본 적은 없다. 사실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는데, 느낌상 노르웨이 숲이다.
지나가는 이 아무도 없어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오겡끼데스까'를 한 번 호기롭게 외쳐보고 싶다. 평범한 대한민국 40대 여성이지만 가끔은 또라이 같은 짓에 끌리곤 한다.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 그만두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언젠가 진짜 노르웨이 숲에 가보고 싶다. 왠지 그곳에서 항시 뛰놀고 있을 듯한 시베리안 허스키도 만나보고, 울라프도 만들어 렛잇고를 부르며 눈밭을 굴러보고 싶다. 이 모든 게 현실성 제로 로망뿐 일지라도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세상은 무슨 꿈이든 흡수할 준비가 된 듯하다.
나는 지금 노르웨이 숲에 와있다. 주문을 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