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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an 03. 2024

공연의 추억

교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연습을 가야 하는 첫째 입이 새 부리 마냥 삐죽 나왔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콘서트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연습도 가기 싫다고 했다. 신랑과 나는 난감한 표정을 교환했다. 바로 콘서트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교회 청소년부는 엘프옷을 입고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는데 본인도 해보겠다 말했다.  의무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무대를 몹시 싫어하는 첫째가 웬일로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하고 싶어 했다. 본인의 한계를 깨 보려는 아이의 마음이 보드랗게 만져졌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전 뒤집듯 바뀔 마음이 예상도 되었기에 여러 번 의사를 물었지만 매번 확고한 대답만 돌아왔다.


황금 같은 토요일에 매주 연습을 가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공연 전 주부터 가기 싫다는 아이를 살살 구슬려 연습을 보낸 터라 남편과 나는 오늘이 마지막 연습이니 조금만 힘내자고 격려했다.

공연에 대한 부담이 더해졌는지 아이는 지난 주와는 비교도 안되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남편의 잔소리 공격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야. 시작한 일을 끝내 보기도 해야지 네가 진짜 좋아하는 일도 끝까지 해서 해낼 수 있는 거야."

사춘기에 돌입한 첫째가 '아이고, 그러세요. 아버님' 하며 넙죽 잔소리를 받아낼 리가 없다. 머리를 흔들며 날아오는 말들을 쳐냈다. 연습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와 씨름하고 있는 아이의 등을 조용히 감싸주고 있던 내가 고민 끝에 입을 뗐다.

"OO아, 오늘 연습에 참석하고 무사히 공연을 마치는 게 너를 위한 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 이건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잖아. 다른 날도 아니고 당일날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대열이 다 흐트러질 수 있어. 짝지어서 하는 율동도 있잖아. 시간도 없는데 다들 난감할 거야. 힘들겠지만 오늘은 네가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이 말에 아이는 신음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즉각적인 반응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첫째 성격 상 이 말을 듣고는 계속 누워있을 수 없었나 보다.


가시가 잔뜩 돋은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노래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닌데 교내 합창단이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합창단 충원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다. 가을에 열리는 합창 대회날이 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지도 선생님은 단원들에게 모두 교복을 입거나 감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으라고 했다. 입학 당시 샀던 교복은 이미 작아져 있었고 감색 치마는 없었다. 합창단 활동을 반기지 않았던 엄마에게 치마를 사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연 전날까지 내내 끙끙 앓다 끝내 대회 당일 치마 없이 등교를 하고 말았다.


점심시간에 같이 연습하던 합창단 3학년 동생에게 치마를 못 가지고 왔노라 털어놓았더니, 자기가 학교 앞에 사는데 감색 치마가 2개라며 엄마에게 전화해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겠다 했다. 어린 나이에도 실행력이 좋았던 그 친구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도록 친절한 그 아이의 엄마는 진짜로 교복 치마를 들고 후문 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렇게 극적으로 치마를 구했다. 하지만, 슬픔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태평양 같은 골반을 자랑하던 나에게 동생의 치마가 맞을 리가 없었다.


공연 출발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결국 나는 다시 공중전화에 가서 엄마에게 전화했고, 당연히 욕사바리를 들었다. 얼어붙은 호수 같은 음성으로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은 소리가 수화기에 차갑게 남아 있는 듯했다. 반포기 상태로 교실로 돌아와 보니 이미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내용은 귓등을 치고 튕겨져 나갔고 나는 하염없이 오른발을 덜덜덜 떨었다. 수업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 전화가 울렸다. 몇 마디를 나눈 선생님이 나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엄마라고 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감색 치마를 샀으니 쉬는 시간에 교문 앞으로 받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쉬는 시간에 엄마를 만나 비닐 쇼핑백에 담긴 감색 주름치마를 건네받았다. 그즈음 공연을 위한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나는 말도 없이 공연을 빠졌다. 엄마는 신경질을 내며 돌아섰다.


다음 날, 다른 공연이 있어 감색 주름치마를 입고 쭈뼛거리며 연습실에 갔다. 윗학년 언니들이 어제 왜 안 왔냐고 너 때문에 줄이 흐트러져서 갑자기 공연장에서 줄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 소리 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떠올리면 어린이로서 느꼈을 무력감, 죄책감이 유화처럼 캔버스에 펼쳐진다. 공중전화를 사용하러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던 일, 엄마가 사 온 감색치마의 두툼한 주름과 톡톡한 질감, 치마를 빌려주러 왔던 동생 엄마의 해사한 얼굴과 나를 노려보던 엄마의 눈빛까지.

어린 시절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일부다. 왜일까. 이 일이 유독 떠나지 못하고 살갗에 문신처럼 박힌 것은.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회피라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피했다는 사실이 나를 언제고 벌거숭이 상태로 내동댕이쳤기 때문일까. 서늘한 엄마의 목소리가 여전히 맴돌기 때문일까.


아들이 몸부림칠 때, 이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피가 아닌 정면 승부로 어려움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다만, 나는 언제고 아이 옆에서 따뜻하게 등을 데워주고 있으리라 다짐했다. 크고 작은 파도가 아이를 향해 몰아쳐도 뒤돌면 두 팔 벌리고 서있는 엄마, 아빠에게 와락 안겨 위로와 용기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받을 수 있도록.




무사히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눈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다시 순둥이 강아지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들, 연습 다녀오니 어때?"

"뭐,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아직도 하기는 싫은데 연습 가길 잘한 거 같아요."

어른들의 높은 세상에서 내려다볼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경험이 우리 아이의 영혼을 푹 적셔주길. 자라나며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고난을 견뎌보는 연습을 할 수 있기를. 그래서 삶이라는 공연에 굳건히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침내 모든 공연을 마치고 아들이 말했다.

"이번에 공연 포기 안 하고 하길 잘한 거 같아요."

"자랑스럽다, 아들아!"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근데 내년엔 안 할래요."

그래, 내년엔 엄마 손 꼭 잡고 공연 감상하자며 아들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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