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릴 적 추억이 묻어있는 고향집에는 함께 놀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이 사는 공간의 쓸씀 함과 고요와 적막만 가득하다.
시끌벅적했던 시골집은 텅 비웠다. 엄마는 다리가 불편해서 손수 끼니를 챙길 수가 없고 자유자재의 몸놀림이 어렵다.
엄마의 집은 요양원이 되었고, 엄마의 가족은 요양원 식구들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엄마는 밝게 계속 환하게 웃는다. 내 삶의 찌들어서 엄마를 너무 잊고 살았다. 내 새끼 챙기느라 엄마는 뒷전이었다. 그런 나를 한없이 걱정하고 웃어주며 반겨줬다. 부모란 대가 없는 희생이었다.
오랜만의 만난 자식 앞에서 힘들고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더 굳세게 입꼬리를 올리셨다.
아니 서늘하게 부어 되는 바람과 가끔씩 집 잃은 고양이와 대 숲에서 울어 되는 새소리로 텅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부지런한 언니와 형부가 집주인의 부재를 지우기 위해 열심히 두 집 살림을 한다.
"씨앗만 뿌려놨는데 뭐가 올라왔니?"
어린 열무잎과 야들한 상추와 파릇한 파, 씩씩하게 자란 마늘잎까지 제법 주인의 손길을 외면당했지만 자연이 주는 햇살과 빗물을 먹고 제 몸값을 뽐내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가!
얼마나 손 떼가 묻은 고향 집을 오고 싶었을까?
누가 엄마의 발과 손을 묶어 놓았을까? 지난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잠깐 동안 엄마의 대화 속의 무딘 세월의 야속함과 원망 섞인 한 숨소리가 빗발쳤다.
"몸이 망가 쳐 암 것도 할 수가 없어?
두 다리 걷다가 소리 소문 없이 저승길 가는 게 소원이다."
슬그머니 던진 엄마의 말에 가슴 먹먹함이 올라온다.
틈틈이 가꾸던 엄마의 텃밭은 언니의 애정 속의 여러 야채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들"
앞마당의 들어오더니 쉬지도 않고 열무 속에 무성히 자라난 풀을 한참 동안 뽑아 없앴다. 혹여나 열무에게 방해가 될까 봐!!? 그러면서 고개를 치켜들더니 길게 한숨 소리를 낸다. "몸이 내 것이 아녀?"
내 눈엔 풀이 보이지 않는데 엄마 눈엔 풀만 보인다.
한평생 들에 나가 곡식을 가꾸며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땅과 사랑의 빠진 여인이다. 손 발이 불어 트도록 자식 키우고 열정과 시간을 농사일로 희생했다. 죽음을 앞둔 지금까지도 자식 걱정의 마음 언저리 가 시리다.
"그려, 어디 있든 건강만 하면 돼.
나는 잘 먹고 살 사니 신경 쓰지 마!"
그리운 엄마의 향기에 연신 함박웃음을 짓고 목이 터져라 말을 건다. 일부로 엄마에게 애교 섞인 재롱을 떤다. 보고픔과 외로웠을 엄마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뭐가 그리 바쁜 걸까?
엄마랑 함께 한 시간은 딱 3시간. 만날 때는 좋은 때 헤어짐은 마냥 아쉬움만 남겼다.
"요양원 식구들과 먹을 과자 좀 사주라"
어느새 뿔뿔이 흩어졌고 그 안식처인 보호시설에 모여 하나의 조촐한 식구가 형성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