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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Apr 03. 2024

홈은 원래 스쿨이었다

홈스쿨링을 넘어 가족 관계의 본질을 말하다



내가 홈스쿨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몇 달 앞둔 무렵이었다.


부모님과 잘 알고 계셨던 어르신께서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매거진 창간하는 일을 맡게 되셨는데, 진행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다. 당시 약혼자였던 남편과 나는 결혼 후 바로 0국에 선교사로 파송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그러나 상황을 살펴보니, 해결해야 할 과정이 많고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시작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에 하던 일을 내려놓고 출근을 시작했다.


작고 어두운 사무실에 디자이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기자도 정해진 인원이 없는 것 같았다. 창간호 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대략의 주제와 인덱스를 구상하고 인터뷰를 기획했다. 선교라는 렌즈 양방에서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바라보는 내용이면 좋겠다 싶었다. 인터뷰를 통해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교사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도 목적을 두고 싶었다.


'그래. 민낯의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아픔과 힘듦은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그들의 자녀가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때마침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미국 홈스쿨링의 선두주자 격인 브라이언 D. 레이가 한국에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선교사 자녀들 대부분은 국제학교에 다니거나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국제학교에 보낼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되는데, 홈스쿨링은 사역도 버거운 선교사들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준다. 이들 부모 선교사들에게 레이 박사가 좋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몰려왔다.


기사 하단에 작게 적혀있는 정보들을 모아 브라이언 레이의 한국 일정을 담당하는 분과의 연결을 시도했다. 통화가 된 후에는 인터뷰가 가능하겠는지 물었다. 아직 창간호도 발간되지 않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매거진과의 인터뷰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는지, 담당자는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00 일보에 브라이언 레이에 관한 기사가 올라가게 해 준다면 이 매거진과의 인터뷰도 응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00 일보 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이 이러저러하고, 브라이언 레이의 기사는 꽤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기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일단 우리 매거진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보고 자신은 옆에서 참관을 해보겠다고 했다. 기사를 싣을지에 대한 여부는 인터뷰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대신 신문사 사옥에 인터뷰 장소를 잡아주겠으니 브라이언 레이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브라이언 레이 측에 상황을 설명하며 서둘러 일정을 잡고, 사진을 잘 찍는 후배에게 연락을 해서 함께 00 일보 사옥으로 향했다.





로비에서 브라이언 레이 박사와 그의 한국 일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 대표 장갑덕 목사님을 만났다. 다가가서 소개하자 밝게 응대하며 인사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터뷰 장소로 올라갔다.


기자님과 약속한 곳으로 올라가니 엘리베이터 앞으로 마중을 나와계셨다.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리고, 안내에 따라 다들 무언가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는 넓은 사무실의 통로를 지나 아늑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치스럽지 않은 서재 느낌의, 책과 파일로 벽이 온통 채워진 회의실이었다.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간단한 대화로 숨을 잠시 돌리고, 브라이언 레이에게 인터뷰를 시작해도 되겠는지 물었다. 녹음기를 켜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 그때까지도, 이 인터뷰가 내 삶에 그토록 큰 영향을 주게 될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레이 박사님, 박사님께서는 자녀들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양육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왜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먼저 여쭈어도 될까요?"



그의 첫 대답은 반문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의무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네?"


내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다시 대답했다.



"홈스쿨링은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부모에게 그들의 자녀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죠."


그는 무례하지 않은 부드러운 말솜씨로 칼날과 같은 말들을 이어갔다.



"학교가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가족의 원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처음에는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맡기지 않았어요. 저희 부부는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 자연스러운 역할을 부모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부모가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의 주체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서 시작되지요."


"부모가 교육의 주체..."


나는 여기서부터 벌써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맞아, 학교는 애초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이네요. 그것을 제가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놀랍고요."


"그렇지요?"

레이 박사는 전혀 으스대지 않고 내 대답에 미소 지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경우를 많이 보아왔으리라.




(인터뷰 내용이 다음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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