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래토드 Mar 27. 2024

뜰이 넓은 집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랑스러운 섬이 있었다. 평안을 위해 기도할 북녘 땅이 가까이 보이는 곳. 집에서 시간을 보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뜰이 넓은 집을 그 섬에서 찾아내었다. 작은 냇가 곁의 텃밭에서 땅의 소소한 산물도 맛볼 수 있는 아담한 나무집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살기로 했다.


포장 이사 말고, 1톤 트럭 이사를 신청했다. 그러니까, 거의 가져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주 만나왔던 여러 무리에게서도 떠나 나왔다. 작별인사도 세세히 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면 그저 바람처럼 가벼이 나오자고 했다. 그러던 중에, 크게 드러내지 않고도 진실하게 사랑했던 관계들은 그 무게 그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소중히 가라앉았다. 이제는 그 중한 관계들에 더욱 집중하고 사랑하며 불안함 없이 배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친밀함의 결이었다.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해안도로를 끼고 잠시 달리다가, 어느 건물도 산과 하늘을 가리지 않는 아담한 시골 마을로 들어서서, 마침내 우리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얘들아, 어서 들어가자!"


"우와~~~!"


종종걸음으로 사뿐히 들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명랑했다. 책과 놀잇감들은 저희들 힘으로 들고 올라섰다. 집에 들어서니 아늑하고 포근한 냄새가 올라왔다.



"엄마, 저는 이층 집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오늘 제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엄마, 집이 너무 예뻐요. 지금 꿈같아요."


  

아이들의 까르륵 웃음이 종일 거침이 없었다. 딸들이 고양이들과 함께 다다닥 이층으로 올라가면, 남편과 나는 거실에 남아 서너 잔씩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놀다 내려와서는 부채질을 해댄다.


"엄마, 그런데 집이 너무 따뜻해요. 저 땀났어요! 아 더워."



사방으로 시원하게 창이 난 나무집은 해도 잘 들고 따뜻했다. 한 겨울, 집안에서도 입김이 날 정도로 추워서, 온 가족이 파카를 입고 생활했던 떠나온 집에서의 날들이 떠올라 남편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왜 진작에 이러한 삶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서로 묻다가, 그저 지금 그러할 때가 된 것이라며 지난날들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견디어 낸 것들에는 섭리가 있을 것 같아서 허무하지 않았다. 그래, 분명 의미가 있었다. 배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날 , 잠자리에 들기  막내의 기도는 평소보다 배나 길었다. 새롭게 시작설레었지만 잠을 설치지는 못했다.  가족이  어느 때보다  깊이 , 단잠을 잤다.







어느 정도의 고립된 사회성을 갖추게 된 우리 가족을 떠올렸을 때 '나노(nano)'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규격화되지 않고 각각의 특성과 생김에 맞도록 살아간다는 사회적 의미에서 이 단어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개인화가 우려에서 트렌드로 전환되는 시대에,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사회적 독립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음껏 뛰어 놀아도

발자국이 많이 겹치지 않는

뜰이 넓은 집에서









이전 03화 불필요한 옷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