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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Feb 28. 2024

베로니카, 필라테스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지는 않았다.

줄거리 "20대 중반의 여성 베로니카는 아름다운 외모와 좋은 직업, 앞으로의 근사한 삶 등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이다.


이런 쉣, 40대에 평범한 외모, 평범한 직업(주부), 앞으로의 불안한 삶을 가진 나는 꾸역꾸역 살기 위해 일단 살을 빼기로 한다. 새벽마다 또 매일마다 (쳐)먹어 살찌웠던 생라면과 르뱅쿠키, 너희에게 작별을 고하-ㄹ 생각은 없고, 일단 먹는 걸 못 끊겠으니 탄력 있고 볼륨 있는 건강한 돼지가 되기로 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비자금을 털어 1대 1 필라테스를 결제했다. 50원짜리 비니루봉다리는 절절 아끼면서 돈의 단위가 커지면 오히려 개념이 없어 헤벌쭉 일을 벌이고야 마는 아줌마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필라테스 선생님은 허리가 한 줌에 뼈 굵기가 내 것의 1/2로 오히려 나의 운동의지를 꺾어놓으실 뻔했다. 처음 보자마자 '난 아무리 해도 저런 몸은 안 되겠지' 좌절감이 몰려와 운동 하면 머해- 싶었던. 그러나 만날수록 발레전공자의 아름다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기운에 자꾸만 기분이 좋아졌다.


거북목에 어깨의 위치가 삐뚜르고 잘못된 앉는 자세로 인해 오른쪽 허리가 아픈 40대 베로니카, 아니 배로미까 아줌마는 씁씁후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2년여 전 그룹 수업을 받은 적 있어서 호흡이나 기본자세는 그래도 배워놨었다. 발등 몸 쪽으로 당기는 걸 플렉스라고 하는데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굽히지 않고 플렉스를 하려면 동작은 단순데 얼마나 프고 지, 종아리가 땅겨서 저절로 악 소리가 난다. 발레리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뻗어 발등과 팔을 몸 가운데 쪽으로 당기는 동작들이 얼마나 힘든 건지 이제야 알다.


이런 자세 저런 자세 열심히 시키던 선생님이 어느 날은 리포머에 날 눕히더니 발아래 판때기(=점핑보드란다)를 대시는 거다. 힐업(구두를 신은 듯 발 뒤꿈치를 드는 것)으로 발판을 구르며 용수철이 매달린 리포머를 힘껏 점프해 보다. 단, 양팔의 팔꿈치 윗부분은 바닥면에 계속 닿아야 하며 두 허벅다리는 벌어지면 안 되고 힐업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 점프를 몇 번 성공하자 이번엔 두 다리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샤샤샥 교차했다가 재빨리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것까지 해보자 하시는데... 선생님? 저 발레할 생각은 없는데요?!


2022년, 여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이렇게 그려도 양심에 털이 안 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년 전인데 마치 어언 20년은 흐른 듯. 히피펌을 하고 기분이 좋아 데님 원피스를 입고 그래도 나름 동네를 홀리던(응?) Miss 아줌마였는데


지금 나는 성난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내뿜으며 분출하는 40대 배로미까 아줌마일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팔꿈치 바닥에 붙이는 거 얼마나 힘들게요. 팔꿈치 붙이려 신경 쓰면 허벅지가 떨어지고 허벅지 붙이려면 팔꿈치가 떨어지는, 아놔 그 와중에 발도 두어 번 교차해야 되고요. 이럴 거면 용수철 한 개만 주시던가요. 이 판때기는 부서지진 않는 거죠? 저는 그저 저 데님 원피스가 내 몸통에 다시 들어가길 바랄 뿐인데... 그런 날이 오겠죠. 그때까지 베로니카, 자살 말고 살자.

2024년, 애쓴다..

사진출처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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