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INFP+아들둘맘 정신세계드로잉
나는 운전을 잘한다. 남편은 내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지만 나는 운전을 잘한다.
2007년 스물넷, 결혼식을 올린 후 남편 직장을 따라 경북 구미로 내려갔다. 시내가 아니었기에 차가 없으면 불편했다. 꼼짝없이 집에만 있던 나는 무작정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했다. 열심히 연습한 후 왜 시험을 보러 문경까지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2시간인가(가물가물) 차로 이동해서 시험을 치렀다. 필기건 실기건 한방에 합격(가물가물). 자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남편이 차를 놔두고 회사를 걸어 다녔는데, 옳거니 기분이다, 면허 딴 기념으로 남편을 데리러 가야겠다. 남편은 극구 말렸지만(얜 뭐든지 말려) 자꾸 연습해야 느는 법.
운전은 겁이 없어야 잘하는 것 같다. 나는 닥쳐보기 전엔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겁이 없다. 출발을 했는데 내가 가는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트럭이 나를 향해 달려오며 클랙슨을 계속 울리는 거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죄송합니다" 했지만 뭘 잘못한 건지 알고 싶었다. 나중에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 도로를 지나 보니 으응? 이 방향이 아니구나. 내가 역방향으로 달렸었다. (아무쪼록 큰 사고가 나지 않았어서 다행이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도로였는데 앞으로 뭘 모르면 무모하게 하지 않겠다. 악플이 신경 쓰여 구구절절 이러고 있다.)
이제는 차가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지는 아는, 때는 바야흐로 2015년 경이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성인아이인 내가 둘째를 낳고 엄마 코스프레를 더욱 해야 할 때. 한 살은 집에서 자고 있고 다섯 살은 유치원 소풍을 가는데, 뭘 또 빠뜨리고 보냈다. 도시락이었던가. 소풍 버스가 출발할세라 마음이 급한 나는 얼른 차를 빼서 아이 유치원에 이걸 갖다 줘야 했다. 한 살이 깰까 봐, 다섯 살이 탄 버스가 출발할까 봐 마음이 급한데 어, 어 저 앞에 차가 나오며 내 차랑 부딪히려고 한다. 베스트 드라이버에 운동감각이 있는 나는 순간적으로 차를 확 틀어 경차였던 그 차를 피했다. 대신 뒤에 있던 잘 빠진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남편에게 전화하니 차종부터 묻는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깐, 내 안위부터 물어야 하지 않나? ... 입 닥치고 있겠습니다.) 남편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모*을 피하려고 ?!@#$을 박은 거야?" 남편목소리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내가 차종을 구분 못해서 말인데 그때 박은 차가 머였는지 그때도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와, 이렇게 인지 안되기도 힘든데. BMW, 아우디, 폭스바겐. 이 셋 중 하나였을 거다. 아우디는 헷갈리게 왜 88 올림픽 로고를 따라 했는지 모르겠다. 올림픽이 아우디를 따라한 건가.
걱정하지 마시라. 지금은 당연히 안다. BMW, 아우디, 폭스바겐 (반복만이 살 길). 얘네들이 외제차고 웬만하면 피하라는 거. 열심히 외웠다. 근데 이 차 외에 다른 차들은 아직 못 외웠다. 문제는 로고를 봐야 알지 차만 보고 어떻게 아냐고요. 그리고 부딪히기 전에 로고를 언제 보냐고요. 한 번에 딱 보기만 해도 차종을 아는 사람들은 좋겠다. 어떤 차는 로고를 봐도 모르겠다. 로고 종류도 뭐가 이렇게 많은지... 로고가 뭐든 국산이든 외제든 차는 다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