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새벽공기가 폐부를 파고들 때 느껴지는 청량함. 문득 아버지의 새벽 산책이 생각났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새벽에 산책을 다녀오시곤 하셨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햇살이 따뜻한 낮에는 토방에 걸터앉아 망부석처럼 미동도 없이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시선은 따가운 햇살과도 같았을까,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지 않은 곳을 찾고 있었음을 어른이 된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결핍에 대한 원망이 성숙으로 여물어 가면서 스스로 괜찮아지는 법을 배웠다. 몸으로 느끼며 감정으로 이어지는 결핍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그리고 강단을 심어 주었다.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 같은 엄마의 하루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 엄마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엄마를 보면 행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엄마 숨소리에는 웃음이 없었다. 젊은 엄마의 모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은 걸 보면 엄마는 고목처럼 젊음이 느껴지지 않았던 그저 엄마였던 것 같다.
엄마는 젊은 엄마가 아니었다. 딱 지금 내 나이 내가 지금 아들을 키우듯 몸도 마음도 불혹을 마주하며 초등학생 막내딸을 키우셨다. 둘도 힘든데 엄마는 다섯의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가장의 역할을 전혀 못 하는 남편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아니 살아내셨다. 줄줄이 자식은 왜 그리 많이 낳았는지.
아버지의 새벽 산책은 어머니의 새벽일 터와 동상이몽을 이루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던 엄마의 하루와 달리 24시간이 무료했던 아버지의 하루. 섞일 수 없는 시간을 사셨던 두 분.
아버지의 여유는 엄마의 희생 안에서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무료함은 술이 달래주었다. 아버지 삶에 기회는 없었을까, 불편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볼 자신은 없었을까, 왜 그토록 미련 없는 삶을 사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