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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Oct 05. 2024

우리에게 애도의 시간은 줬어야죠.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아무도 울지 않았다. 떠날 사람이 떠난 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을까? 부모님의 죽음은 몹시도 애처롭고 슬픔으로 육체가 말라가는 고통이 따를 거로 생각했다. 막연한 슬픔은 그저 무채색처럼 담담했다.


어두운 밤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을까? 알코올성 치매, 아버지를 데려간 건 술 귀신일까? 온통 의문만 가득했던 아버지 죽음 앞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제처럼 그 전날처럼 그렇게 술을 마시고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 표현) 노인이 된 엄마가 감당하기에 아버지의 폭언과 주사는 도를 넘었을 테고 엄마는 결국 추운 겨울밤, 어린 내 손을 잡고 어두운 길에서 빛을 향해 거닐던 그때처럼 혼자 그 밤길을 헤매었을 테다.


어슴푸레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오는 시간 엄마는 몹시도 지치고 서글픈 몸을 끌고 그래도 집. 그 집으로 돌아가 새벽밥이라도 지으려 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아버지는 만취 상태로 잠이 들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부엌에서 살금살금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미우나 고우나 주정뱅이 남편의 아침을 챙기며 곤혹스러웠던 어젯밤 기억은 항상 그랬듯 의식 속에서 폐기 처분 했을 테다.


술이 덜 깬 아침이면 벌컥 부엌문을 열고 "니미럴 니 시방 뭣하냐, 나가라, 존말 할 때 언능 나가라잉" 밤에 집을 나간 엄마가 괘씸해 추궁 아닌 내쫓김을 당했을 텐데, 오늘은 깊은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내신 안심한 엄마는 따뜻한 밥이라도 한술 뜨고 일을 나가려고 애써 태연한 척 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실 심산이다. 밥물이 자꾸 목에 걸리고 발알은 가시돋은 밤톨처럼 따갑다. '이라고 목구멍이 맥해서 물도 못 삼킨다냐' 혼자 중얼거리고 처량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 지려는걸 가시 돋은 밥알 삼키듯 꾹꾹 눌러 본다.




밥 먹는 건 포기하고 징그러운 인간 낯짝도 보기 싫은데 옷을 챙겨야 해서 조심조심 안방 문 손잡이를 잡고 손가락에 힘을 주며 소리가 나지 않게 손잡이를 돌려본다. "찌~익"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행히 술주정뱅이는 미동도 없다. 안방에 발을 집어넣고 좁은 문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본다. 퀴퀴한 악취가 콧속을 파고든다. '워메 원수 같은 인간 뭔 술을 이라고 먹었다냐' 엎드려 자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옷을 챙겨 나오려는데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술병 옆에 뭣이 반짝 빛을 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민등록증 (뭣한다고 저걸 저라고 꺼내냤다냐, 아구 웬수)


개운치 않은 마음에 주민등록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발을 잘못 디뎌 술주정뱅이 어깨를 살짝 밟고서는 불에 발이 덴 듯 화들짝 놀랐다. 아무런 미동이 없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방안에 퀴퀴한 냄새를 집어삼켰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동체가 깜빡거리지도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했지만, 딸은 지금 서울이라 바로 올 수 없었다. 전화할 곳을 찾는데 자꾸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오메 으짜 그란다냐, 언능 전화를 해야쓴디" "오메 깜짝이여" 심장이 솜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폴짝폴짝 뛰는데 전화벨 소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엄마, 사촌오빠한테 지금 집으로 가라고 전화 했으니까, 진정하고 기다리셔"


"작은어메, 작은어메 지시요?" 조카 목소리를 듣고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쉰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몸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여그, 여그 있당게' 소리는 자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입술은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다. 제대로 떨어지지 않은 입술에 마른침을 르고 힘껏 소리를 질러본다. "여그 있당게" 다리에 힘이 풀려 꼼작할 수 없다.





엄마는, 그렇게 아버지 죽음을 맞이했고, 우리는 언니 전화를 받고 시골로 향했다. 그날 이후 그 누구도 아버지 죽음에 관해 묻지 않았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긴 침묵만을 남겨 두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슬픔을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가버렸다.


나의 슬픔이 아직 그곳에 갇혀 있는 건 아버지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날의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왜 그토록 담담했을까?


십여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내고도 우리는 아직 아버지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 '죽어서도 나를 이라고 괴롭힌다냐' 엄마 꿈속에 나타나 엄마 목을 조르기도 하고, 무서운 얼굴로 언니, 오빠 꿈속에 찾아온다는 아버지 시원하게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이기적인 죽음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가슴에 보이지 않는 상흔을 품고 산다. 원망도 그리움도 우리 가족은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저 나쁜 사람이라는 말도 그저 그리운 사람이라는 말도 할 수 없는 건 우리는 당신을 알지 못했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당신 삶이 어땠는지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다.


사는 동안 징그럽게 힘들었어도 떠나는 날은 미안하다. 한마디는 했어야죠. 그것도 힘들었으면 그냥 웃어 주기라도 했어야죠. 우리에게 아버지는 당신뿐이 였는데.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아버지#죽음#애도#








 










침묵만 남기고 떠나버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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