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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Oct 12. 2024

아버지의 새벽 산책

아버지 이야기가 듣고 싶다.

산뜻한 새벽공기가 폐부를 파고들 때 느껴지는 청량함. 문득 아버지의 새벽 산책이 생각났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새벽에 산책을 다녀오시곤 하셨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햇살이 따뜻한 낮에는 토방에 걸터앉아 망부석처럼 미동도 없이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시선은 따가운 햇살과도 같았을까,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지 않은 곳을 찾고 있었음을 어른이 된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결핍에 대한 원망이 성숙으로 여물어 가면서 스스로 괜찮아지는 법을 배웠다. 몸으로 느끼며 감정으로 이어지는 결핍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그리고 강단을 심어 주었다.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 같은 엄마의 하루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 엄마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엄마를 보면 행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엄마 숨소리에는 웃음이 없었다. 젊은 엄마의 모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은 걸 보면 엄마는 고목처럼 젊음이 느껴지지 않았던 그저 엄마였던 것 같다.


엄마는 젊은 엄마가 아니었다. 딱 지금 내 나이 내가 지금 아들을 키우듯 몸도 마음도 불혹을 마주하며 초등학생 막내딸을 키우셨다. 둘도 힘든데 엄마는 다섯의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가장의 역할을 전혀 못 하는 남편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아니 살아내셨다. 줄줄이 자식은 왜 그리 많이 낳았는지.


아버지의 새벽 산책은 어머니의 새벽일 터와 동상이몽을 이루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던 엄마의 하루와 달리 24시간이 무료했던 아버지의 하루. 섞일 수 없는 시간을 사셨던 두 분.


아버지의 여유는 엄마의 희생 안에서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무료함은 술이 달래주었다. 아버지 삶에 기회는 없었을까, 불편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볼 자신은 없었을까, 왜 그토록 미련 없는 삶을 사셨을까?





아버지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침묵만이 묵묵한 삶이 되었다.

초록색 병만이 당신의 유일한 친구였다.


사방이 의문투성이다.

당신은 그저 하루를 하루처럼 살았다.


궁금하지 않았음을, 관심 갖지 않았음을,

하루가 하루처럼 지나고서야 알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당신은 그저 원망이었고,

불편함이었고, 거추장스러운 가족이었다.


당신의 존재가 불편함임을 알고 있었던 걸까,

쓸쓸한 미소가 언뜻 당신 얼굴에 머물 때


당신에게 온기가 닿도록 안아주고 싶었다.

이미 떠나버린 당신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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