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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Sep 14. 2024

소풍과 김밥

그때나 지금이나

유난히 김밥을 좋아한다. 밥 안에 모여 있는 야채의 식감도, 한꺼번에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두툼한 계란의 보드란 식감, 특별한 날에 만날 수 있는 소시지, 당근의 달달함, 툭 치고 나오는 단무지의 새콤함까지 야무지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주는 김밥.


새벽부터 분주한 엄마 손끝에서 퍼지는 고소함과 달달함의 한도 초과. 그 어떤 향기보다 달콤하고 향긋한 엄마표 김밥. 돌돌 말린 김밥을 먹기 좋게 잘라 도시락통에 착착. 도시락통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마 위에흩어져 있는 김밥 꽁지는 잠이 덜 깬 내 입으로 쏙쏙 들어간다.


음~ 맛있다. 엄마 나 김밥 많이 싸줘!! 엄마가 김밥을 싸는 날은 정말 드문 날이고 특별한 날이다.




새벽일을 한 차례 마치고 돌아와 아침을 챙기는 분주한 엄마 모습을 볼 때면 오늘 소풍인데 왜 김밥 안 싸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려 한다. 흰쌀밥을 꿀꺽 삼키면서 목구멍에 흩어진 ㅅ의 흔적도 지워버린다.


결국 오늘도 나는 포크 하나 챙겨 들고 소풍을 간다. 친구들 도시락에 피어있는 김밥의 풍성함에 한번, 입안에 스며드는 맛에 한번, 기꺼이 나에게 김밥을 내어주는 친구들 마음에 한 번 소풍은 추억도 먹을 것도 많은 나들이였다. 여느 부모님처럼 엄마, 아빠도 함께였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특별한 날 나의 외로움은 익숙함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시절 소풍은 흡사 가족 나들이였다.)


물론 나처럼 홀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지만, 단연 그중에 내가 제일 배짱이 좋았던 것 같다. 덕분에 친구 부모님들이 나를 꽤 챙겨 주셨던 기억이다. 


소풍용 포크는 유용하게도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필수품처럼 지니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눈치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안 되려 부득이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듯 다양한 타인의 마음이 존재하기에 그 마음을 다 충족시키기란 버거웠다. 어느 순간 미워하는 마음은 내 몫이 아니기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아버지 관심에 집착했던 어른 아이가 좀처럼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도 슬픔에 잡아먹히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새벽 수영을 다녀와 꼬슬밥에 참기름을 휘리릭 뿌려주고, 맛살, 햄, 당근을 달달 볶는다. 달걀은 최대한 두툼하고 먹음직스럽게 부쳐둔다. 뚝딱뚝딱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김밥 재료에 흥이 절로 난다.


엄마 김밥이야. 눈을 비비며, 코를 킁킁거리는 아들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잘라놓은 김밥 하나를 하품하듯 자연스럽게 입에 쏙 넣는다.


급하게 물을 건네며 물 먼저 마시라고 했지만, 아들은 이미 김밥을 오물거리고 있다. "맛있어 엄마" 빵빵한 볼을 오물거리며 웃는 아들. "국이랑 같이 앉아서 먹어" 눈 뜨자마자 망설임 없이 먹방을 시작하는 아들. 처음 유치원에서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설레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새벽부터 부엌에 분탕 짓을 했던 내가 지금은 뚝딱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김밥을 완성한다. (자기만족 최고치!)


김밥을 생각하면 엄마의 꼬순 뒷모습이 생각나서 정겹다. 김밥에 소주 한 병을 비우시던 아버지 모습도 그립다. 부엌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깔깔거리며 나눠 먹던 김밥 꽁지가 그리워 오늘은 아침부터 김밥으로 허기를 채워본다. 꼬순 엄마 김밥처럼 아들에게도 김밥은 엄마와의 행복한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풍에는 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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