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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Jul 27. 2024

당찬 언니의 슬픈 모습

수술 후유증

아버지 오랜만이네요. 고단한 몸이 마음도 고단하게 해서 아버지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어떤 날은 술술 아버지와의 기억이 즐겁지만, 어떤 날은 콩닥거리는 심장에 못이 박힌 듯 아파져서 잠시 아버지를 외면하고 싶었어요.


얼마 전 언니가 수술을 받았어요. 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는지 아니 걱정은 했는지. 기억 속 아버지는 한 번도 언니 오빠의 안부를 묻거나 먼저 그리워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가 많이 예뻐했던 언니, 아버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던 작은 언니가 아팠어요.

언니가 아파서 화가 많이 났나 봐요. 아버지의 작은 관심을 독차지했던 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이끌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버지도 아셔야 했어요.


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두 아이 엄마가 되어 홀로 아이를 키웠어요. 여기까진 아버지도 알고 계시죠? 하지만, 그 후 언니의 삶은 모르시잖아요. 사실 관심도 없으셨죠? 다섯 살 큰 아이, 백일도 안된 둘째를 안고 울고 있던 언니 모습이 아직도 전 선명해요. 친정도 시댁도 언니를 도와 줄 사람은 없었어요. 그 큰일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어요. 어느 날 언니 집 가구에 붙여진 붉은 딱지들 영화에서만 봤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라진 형부와 남겨진 빛. 오롯이 언니 혼자만의 몫이었어요.


그날 이후 언니는 집을 비워줘야 했고,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모아 작은 월셋집을 구해줬던 기억이에요. 후로 줄곧 형부 빚갚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워왔어요. 고작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가장이 되어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언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언니는 정말 강단 있게 세상과 맞짱 뜨며 살아왔어요. 얼마나 원망을 많이 했을까요? 하루를 버터야 했던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캄캄했을까요?


그렇게 살아온 삶의 보상이라고 하기에 세상은 너무도 냉혹합니다.


홀로 식당을 하는 언니 목소리가 갈수록 힘이 없었어요. 가족이라는 게 언니에게는 남보다 못했을 것 같아요.

한 번도 누구 탓을 하지 않던 언니가 자꾸 우는 날이 많아졌고, 사는 걸 못 버틸 것 같다는 불길한 마음이 밀려오더니 결국 언니가 쓰러졌어요.


아버지를 절에 모시던 그날 언니가 심하게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고,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언니를 설득하고 다독여서 급하게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회복 중입니다.


수술 후에도 언니는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 같았어요. 너무 아파서 그저 죽고 싶다는 말만 했으니까요. 조금만 늦었으면 수술도 못했을 언니 몸 상태, 자기 몸은 전혀 돌보지 않고 살아온 언니 삶이 안쓰러웠습니다. 언니는 수술 후 단단했던 마음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그동안 버티고 있던 작은 끈마저도 산산이 흩어져 줄기를 찾을 수 없는 사람처럼 어둡고 침울해 보였어요.


아버지, 제발 인제 그만 힘들게 해달라고 저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몇 달 언니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빛을 잃어 가는 듯하더니,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가고 있어요.

저는 요즘 주말에 언니를 찾아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보내고 있답니다.


이번 주말에도 언니를 만나고 왔어요.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언니가 산책하며 공원에 앉아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시골 소녀라고 하기엔 유독 큰 키에 뽀얀 피부, 고운 말투로 이야기하던 언니를 저는 참 좋아했어요.

팔을 두 번 걷어 올려도 큼직했던 언니 옷을 물려받았지만, 그것도 저는 좋았어요. 제 눈엔 언니가 너무 멋있었으니까요.


육상선수가 꿈이었던 언니는, 그때 그 시절 어쩜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라고 하네요.

    

아버지, 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언니를 생각하면 전 여전히 마음 한구속이 찌릿하게 아파집니다.

꾹꾹 참아 온 세월만큼 아픔이 곪아 병이 되어 좀 쉬었다 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몸이 아픈 휴식이지만 언니는 여전히 하루가 불안하고 두렵다고 합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하루만큼 하루가 사라져 간다는 언니에게 언니를 위한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는 입바른 말을 했지만, 사실 언니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도움 줄 수 없는 저는 슬픕니다.


아, 힘들 때 주저앉고 싶을 때 딱 한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냉정한 세상은 누군가에게 가혹한 현실의 연속임을 언니를 보며 느낍니다.


언니는, 단단한 사람이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언니는, 참 대단한 사림이다. 혼자 우는 일은 있어도 주저앉지 않았다.

언니는, 참 멋진 사람이다. 두려운 현실에 맞짱 뜨며 오늘을 살아가는 대찬 사람이다.

쉽지 않은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아가는 용기가 그저 존경스러운 든든한 언니.


편안함 없는 두려운 하루를 살아가는데, 여유는 언제나 저만치 도망치고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현실의 여유가 찾아오는 그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책하며 느끼는 여유를 어색해하는 언니에게 잠시나마 평화롭게 하늘을 올려 있어 행복하다고 했더니 웃어주네요. 웃는 언니가 참 좋습니다.


아버지가 몰랐던 아버지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 드릴게요.

얼마나 착실하게 촘촘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찬란한 빛이 언제고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뿜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다섯 자식의 각각의 이야기에 아버지 마음을 전해 보세요.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언니#수술#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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