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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Apr 27. 2024

나비처럼 훨훨, 자전거 타고 씽씽

훨훨 세상 구경하세요.

아버지 산소에 가면 언제나 흰나비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아요.


몇 해 전 아이들과 아버지 산소를 갔던 그날도 흰나비를 만났었죠.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인사하러 오셨다고 했더니, 딸아이가 제 팔에 꼭 안겼어요.


아버지 보내드린 그날도 흰나비는 종일 우리 곁에 있었어요.


그때 언니가 아버지가 나비로 환생하신 것 같다고 무심결에 했던 말이 각인 되어 흰나비를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유유히 달리고 있는데 흰나비가 저만치서 저를 따라왔어요. 저도 모르게 나비가 가는 방향을 따라 페달을 밟으며 배시시 웃었답니다. 아버지를 만난 듯 기뻤거든요.


아버지가 겁도 없다고 혼냈던 저는 지금 자전거를 꽤 잘 타요. 아들이랑 한강을 달리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작은 여자아이가 끌고 가기에는 버거운 큼직막한 어른 자전거를 혼자 끌고 다니며, 자전거에 오르러 낑낑거린다. 친구들이 다들 자전거를 타는데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어떻게든 자전거를 타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오르기도 버거운 고물 자전거에 몸을 맡기려 했다.


집에 있던 녹슬고 자전거를 무턱대고 끌고 나와 언덕에서 내리막을 향해 질주했다. 핸들은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그대로 골목 담벼락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무릎이 깨지고 손가락에 큰 상처가 났다. 그때의 사고로 아직도 왼손 새끼손가락에는 미세한 흉터가 남아 있다.


그렇게 시작한 자전거 연습은 혼자만의 투지가 발동해 멈출 줄 몰랐다.

길이 완만한 논둑길에서 휘청휘청하다 논둑으로 떨어지기도 했고, 가파른 길에서 중심을 잃어 자전거와 한 몸처럼 넘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녹슨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가스나가 독하고 겁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으셨죠.


"아따 어쩔라고 그라냐, 인자 고만해라이, 가스나가 겁도 없으야, 그라고 큰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냐"


흙먼지를 잔뜩 뒤 짚어 쓰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면 토방에서 묵묵히 지켜보시다 핀잔 한마디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오늘은 선명하네요.


"와따 얼굴이 그게 뭐다냐, 아조 징하게 때꾹물이 나오것네, 언능 씻 거야"

"아버지가 밥 했응께, 언능 묵자"


"아버지가 밥했어?" "그람 얼른 씻고 밥 묵어야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얼룩진 얼굴을 씻고, 고물 자전거와 씨름하고 녹초가 된 나는 아버지가 해준 흰쌀밥에 김치 하나 올려 맛나게 먹었었다.


그렇게 쉼 없이 넘어지고 다치기를 반복한 결과 스스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아버지는 많이 흡족해하셨다.


사실 비밀이지만 언덕에서 내리막을 향해 질주했던 건, 무작정 내려가다 보면 페달 밟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줄 알았다. 시골이라 담장이 낮아서 그나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지금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다 기억하고 계실 테다. 내가 어떻게 무얼 하다 다쳤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셨고, 내가 누구랑 친했는지 누구랑 싸웠는지 내가 김치찌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알고 계셨다. 그것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내 편이 있는 것 같은 기분 아버지는 그 기분을 느끼게 해 줬으니까.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지금 흰나비가 되어 세상 여행 중일 거로 생각한다. 가끔 아주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살포시 나를 찾아와 '괜찮다'라고 자전거를 탔던 그때의 너를 생각하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한 줄 요약 : 지금도 나는 종종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한다. 아버지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듯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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