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Mar 23. 2024

양복점에서 만난 소년,

우리 아빠 멋지다.

초라한 아버지를 씻겨드릴 방법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 가족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추억은 동네에서 살포시 팔짱 끼고 몇 걸음 걸었던 기억이 전부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부축받는 걸 싫어하셨기에 뭐든 스스로 하고자 하셨다.


문득 아버지 옷 한 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옷이 필요 없다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근처 목욕탕에 모시고 갔다. 일단 아버지를 씻겨드리고 싶어 목욕탕 사장님께 아버지 씻는 걸 부탁드렸다. 목욕을 마친 아버지를 모시고 이발관에 가서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다듬고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아버지 얼굴을 덮고 있던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낯설게 미소 짓는 아버지 모습이 살짝살짝 보였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장착하고 멋쩍어하셨다.

"우와 우리 아버지 젊어지셨네, 아주 멋져졌어요."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가까운 양정점으로 향했다. 서대문에 위치한, 오래된 양장점에 도착한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생처음 찾은 양장점. 낯선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나처럼, 아버지도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라 당황해하셨다.


"사장님 아버지 양복 한 벌 맞출까 합니다" 내 말에 아버지는 크게 성을 내면서 얼른 집에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몸이 좀 불편하세요. 그래도 양복은 맞출 수 있죠?"

나는 애써 아버지 호통을 못 들은 척하며 사장님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고, 어르신 따님이 양복 한 벌 해드린다고 모시고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걸로 벌 맞추세요"


"아따, 몬 소리요, 저리 치우 씨오, 요런 옷을 입을 일도 없는디 뭣한다고 돈을 쓴다요."

"아따 참말로 가스나가 통도 크네, 언능가자"


아버지 역정은 더 심해졌고 내 팔을 끌고 나가려는 아버지 손을 뿌리치며, "그럼 아버지 내일 내려가요. 모셔다드릴게요" 무뚝뚝한 내 반응에 잠시 아버지는 주춤 하시더니 마지못해 조용히 의자에 앉으셨다. 


사장님은 천천히 양복 원단을 설명해 주셨고, 언제 어떻게 입을 계획인지 물어보셨다. 딱히 계획이 있어 옷을 맞추러 온 건 아녔기에 그냥 아버지께 잘 어울리는 양복 한 벌 필요하다고만 했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좀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양장점 이곳저곳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사장님은 제작된 양복 몇 벌을 가져와 아버지에게 입혀 주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버지는 양복이 잘 어울렸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미소와 어깨를 감싸는 남색 계열의 재킷이 지금까지의 아버지 삶과 다른 삶을 상상하게 했다. 어색한 미소와 부담스러운 터치에 표정이 살짝 굳어지기도 했지만 이내 거울에 비친 모습에 눈을 고정하고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생처음 태어난 고향을 떠나 서울 한 복판에서 처음 입어보는 양복. 낯선 자신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다.


"체구가 워낙 작으셔서 지금 바로 입으실 수 있는 건 없고요, 맞춤 제작을 하면 됩니다"

"네, 아버지께 딱 맞게 맞춤 제작해 주세요" 

"오늘 사이즈 측정하고 제작 들어가면 두 달 정도 걸립니다" "중간에 가봉하러 한번 나오시면 됩니다."


아버지는 어느새 말 잘 듣는 소년처럼 사장님 지시대로 양손을 벌리고, 만세를 하며 잔뜩 경직된 모습으로 이쪽저쪽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정겨웠다.




양복을 맞추고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집에 들어가 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었다. 아버지 좋아하는 소주 대신 꼬랑주 한 병을 시켜 짬뽕 국물에 한잔. "으따~~ 독해라, 이라고 독한 걸 묵은 다냐?" "소주를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꼬랑주는 싫어" "목구맹이 타들어가는디" "에이, 아버지는 소주밖에 모르네, 짬뽕 국물엔 꼬랑주지"


"아따 여그 소주 한 병 주씨오, 니나 묵어라 난 쐬주가 젤루 좋아야"


꼬랑주 한잔에 파르르 떠는 아버지 모습에 그저 깔깔거리며 짬뽕 국물에 꼬랑주를 홀짝 했다.

"우리 막내가 다 컷으야, 아버지랑 술도 마시고"

"아버지 닮아서 술이 아주 쎄, 그래도 취할 때까지 안 마셔, 그건 아버지 안 닮았어."

"그래야제, 술은 재미지게 마셔아제 니 아부지처럼 술 배우면 안되제, 아부지는 쪼깐해서 어른들 술 몰래몰래훔쳐 마셔서 이라고 술버릇이 안 좋아브러"


"아버지 이제 건강 생각해서 술 줄여요" "오늘 맞춘 양복 입고 딸내미 결혼식에 손잡고 들어가요."


"뵐 소리를 다 흐네, 느그 언니들처럼 니도 큰 아버지 손 잡고 들어가면 되제, 뭘라고 내 손을 잡고 들어간다냐, 사람들 숭볼라고"


"딸 셋인데, 셋 다 큰아버지 손 잡고 결혼식장에 들여보낼 거예요, 지금부터 술 조금만 드시고 운동도 조금씩 하면 나 결혼할 때는 아버지가 내 손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지"


"몰라, 난 아버지 손 잡고 들어갈라니까, 지금부터 건강 잘 챙겨요"

"아따~ 시집은 갈랑가부다" 아버지가 웃고 있다. 살면서 아버지 웃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


난생처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내 결혼식장에 함께 들어가지못했지만, 나에게 아버지 양복은 행복이 되어 온전히 마음에 살아있다.


은은한 남색 빛깔 양복을 차려입고 파란 넥타이를 매고 활짝 웃던 아버지 모습이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기억 속 아버지 모습을 살짝 꺼내어 그리워할 수 있는 그날의 추억이 있어 행복하다.


별난 인생이 어디 있을까? 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데 이유도 가지가지 불행의 요소들이 행복을 차단하고 쫓아 버린다. 그러더라도 우리는 행복을 꿈꾼다.



한 줄 요약 : 아버지에게 바다를 보여줬다면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입가에 함박웃음이 그려진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아버지#양복#양장점#







이전 03화 무거운 아버지 눈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