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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Mar 09. 2024

서울역에 남겨둔 아버지 신발 한 짝

사는 내내 시린 추억

이 이야기를 꺼내어도 될까요? 새벽녘에 잠이 깨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반복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를 만나기로 한 시간, 숨 쉴 시간도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내면서 지쳐 눈물이 맺히는 날이 있었어요. 목요일 저녁은 퇴근길에 그냥 주저앉고 싶은 하루였어요. 집 근처에 도착하면서 굳어 있는 얼굴 근육을 풀며 괜찮다. 즐겁다. 오늘 하루도 잘 이겨냈다는 혼자만의 주문을 되뇌며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힘껏 안아주자, 다짐하고 집에 도착했답니다. 애써 웃어 보이는 모습에 아들이 한마디 하네요. 엄마 피곤해!

아니~ 아니야 하나도 안 피곤 해~ 힘껏 아들을 안아줬어요. 마음이 따스해졌답니다. 지친 피로가 살짝 맺힌 눈물과 함께 사라졌어요. 그날 아버지도 이렇게 힘껏 안아드릴 걸 그랬어요. 


그날은 아침부터 모르는 전화가 연달아 걸려 왔다. 평소 전화를 잘 받지도 않지만, 모르는 전화이기에 애써 무시했다. 퇴근 무렵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또 모르는 번호다 이상한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렸다. "여보세요" OO 씨 전화가 맞나요?

낯선 남자가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잠시 불안감에 맥박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차분하게 "누구세요" 낯선 남자에게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지 왜 전화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소심하게 일단 구누냐고 물었다.

"아, 잠시만요" 한참 침묵이 흐르고 이내 거칠고 둔탁하지만, 낯 잊은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막내냐, 막내여, 아부지다" 한 번도 먼저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던 아버지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했다.

놀라움도 잠시 "어디세요" "방금 그 사람은 누구예요?" 

"어, 여그 여그가 어딘지 난 모르제, 막내 맞지야, 목소리는 우리 막내 맞는디, 아야 나 좀 델루와야것다."

"여그 전화 좀 받아보씨오" 아버지는 전화기 주인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는 듯했다.


"여보세요, 여기 서울역인데요, 아버님 부탁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따님이시면 서울역으로 아버님 모시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여기서 기다리신다고 하시네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아버지가 서울역에 왜 서울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분이 지금 시골에 계셔야 할 사람이 왜 서울역에 계신다는 거지, 뭔지 모르게 불안하고 생각이 복잡했지만 일단 전화를 걸어주신 분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정확한 위치 확인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시골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만 연신 울릴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술 드시고 주무실 거로 생각했지, 다른 생각은 못 했다.

엄마는 며칠 전 내가 시골에서 모시고 올라와 지금은 언니 집에 머물고 계신다.


다급해진 마음에 팀장에게 급한 일이 생겨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도착한 서울역에서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야 할지 망막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지만 일단 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서울역 이곳저곳을 누비며 낯선 남자가 알려준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근처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에 복받쳐 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바쁘게 시선을 움직이고 있을 때 훤칠한 키에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덥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장갑을 끼고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아버지 찾으러 왔소" 대뜸 한마디 하고는 매섭게 나를 쏘아본다. 놀란 가슴에 얼굴까지 빨개진 나는 개미 목소리로 겨우 "네"라고 대답을 했다. "쯧" 대뜸 나를 보고 못마땅하게 혀를 한번 차더니 사내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아무 저항 없이 나는 그 무뚝뚝한 사내 뒤를 따라갔고 이내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아버지를 발견하고 앞서가던 사내를 피해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큰 기둥에 몸을 기대어 앉아계셨고, 주위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내 서너 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미동 없이 그저 "왔냐?" "아따 인사해라, 아부지 친구들이다."

"아따, 나는 인자 딸내미 따라 갈랑께 잘들 지내 씨오"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베여 있는 목소리로 주의 사내들에게 안부를 전하더니 다시 볼 일 없을 거라며 주머니에 있던 만 원권 몇 장을 꺼내 그들 손에 쥐어주었다. 사내들은 연신 고맙다며 앞으로 따님이랑 지내고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고 불편한 몸으로 너무 멀리 다니면 안 된다며 건강 걱정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의 인내력은 바닥이 났고,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을 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부축해야 했지만

마음은 그마저도 거부했다.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모든 상황을 묻지 않았다. 그러는 나에게 아버지는 삼 일 전에 서울역에 도착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거기에서 잠을 잤다. 아까 그 사람들이 먹을 것도 주고 잠자리도 줘서 다행히 잘 지냈는데 돈이 떨어져 가니까 니 생각이 났다. 니 전화번호 생각이 나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너랑 엄마가 떠난 그날 자정에 목표 역에 가서 장애인 혜택을 받아 표를 끊었고 그나마 니가 두고 간 돈을 챙겨와서 며칠 잘 버텼다. 영영 니가 전화를 안 받을까 봐 걱정했다. (장애인이라서 역무원들이 친절하게 표도 끊어주고 도착하고 나서도 잘 안내해줬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아버지가 들려준 며칠간의 이야기였다. 택시 밖을 바로 보는 나는 이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돌봐줬던 그들은 서울역에 거주하는 노숙자였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행색이 말이 아니다. 꽤 쌀쌀한 날씨인데 얇은 가을 점퍼에 여기저기 짙은 얼룩은 며칠 동안 노숙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보고도 못 본 척 감정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아버지 앞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따라오실 거로 생각하고 천천히. 불편한 아버지 모습이 그려졌고, 부축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춰 뒤를 봤다. 생각했던 것 보다 아버지는 먼 거리에서 힘겹게 나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짖을 하고 있는지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해서 눈물범벅인 얼굴을 감출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기다렸다. 근데 아버지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평소보다 더 절뚝거리고 불편해 보였다. 차츰 아버지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오고서야 알았다.


아버지 신발 한 짝이 없다. 한쪽 신발은 너무 커서 헝겊을 칭칭 감은 듯 질질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왜 그래" "신발은 어쩌고 이러고 있어,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신발이 없으면 말해야지, 왜 맨발로 걸어오고 있어"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앙칼지게 갈라진 목소리가 눈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달빛이 선명한 골목길 한복판에서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마주하고 울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상처투성인 아버지 발을 씻겨드리고, 된장찌개를 끓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아니면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주무셨는지 식사 후 코까지 골며 잠이 드셨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셨다고 엄마에게 전했지만, 자초지종은 설명하지 않았다. 혼자 서울역까지 오셔서 집으로 모시고 왔다는 말만 했고 엄마는 다음 날 시골로 내려가시겠다고 하셨다.

 

며칠 전 급하게 시골에 내려가서 엄마를 모시고 왔던 이유는 아버지 주사가 한계점을 넘어 위협 수준이라고 하셨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엄마를 그냥 둘 수 없어 급하게 내려갔고, 보고도 믿기지 않은 엉망인 집을 보고 부랴부랴 엄마를 모시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아버지는 그날 밤늦게서야 술이 깼고 당분간 엄마는 서울에서 지내실 거라는 쪽지를 확인하고 불안한 마음에 서울행 12시 기차를 탔다고 한다. 새벽에 도착한 낯선 곳에 술이 있었고 주머니에 돈이 있었기에 며칠 노숙인으로 지내는 걸 마다하지 않으셨던 거였다.




다음 날 출근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며칠 너랑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낯선 동네이니 집에 계시라고 일찍 들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의 복잡미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PS : 아버지는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내가 사준 새 신발을 신고 나왔고 서울역에 도착해 누군가에게 깨끗한 신발은 도난당했고 주인 없는 신발을 신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내내 후회한다. 한 번만 아버지 모습을 살폈더라면 이렇게 시린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그냥 한번 안아주었더라면 맨발인 아버지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텐데, 사는 내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을 텐데, 아버지 죄송했어요.




한 줄 요약 :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참 많네요. 앞으로 하나씩 꺼내놓을게요.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아버지#서울역#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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