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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Apr 20. 2024

아버지 나는 슬프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아버지 오늘은 내 얘기를 해볼까 해요.

아버지한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아버지 기억 속 나는 어떤 아이까?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팅팅 부은 내 눈을 보고 어제 울었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어제 모기가 많아 밤새 헌혈을 해서 잠을 설쳤더니 얼굴이 팅팅 부었다고 했어요.

나의 학창 시절에 이런 날이 많았는데 아버지는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언제나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척척하고 살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척하고 사는 게 익숙해졌어요.

특별히 우리 집이 가난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쓸쓸했고 내 마음을 온전히 보듬어 주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지만 척하느라 내색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새벽이면 일을 나가는 무표정한 엄마에게 듬직하고 착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시험을 백 점 맞아 기분 좋은 게 아니라 백 점 맞은 시험지를 엄마가 보면 기뻐할 거라는 기대에 신이 났었는데, 엄마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따스하게 안아주거나 집에 오는 길 상상했던 엄마의 환한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그저 웃는 엄마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내 기억 속 엄마는 항상 무표정이에요.


어쩌면 아버지한테 집착하고 애정을 탐했던 이유는 관심과 애정이 고팠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 젊은 날의 애처로움은 고스란히 제 기억 속에 남겨져 여전히 엄마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이유도 모른 채 밤길을 걷고, 환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단란한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하룻밤 신세 질 수 없냐는 엄마. 오늘은 안 된다고 하면 엄마는 다시 깊은 한숨으로 오빠와 나를 데리고 밤길을 걷는다. 오빠는 엄마 손을 잡고 나는 엄마 등에 업혀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한 시골길을 걷고 또 걷는다.


"아따 영출아베 또 술 마셨다오?" "아짐 싸게 들어오시오" "니그들 밥은 묵었냐?"


하룻밤을 허락한 누군가의 집에서 늦은 밥을 먹을라치면, 목구멍이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지친 엄마 표정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졸려서 자고 싶다고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렸다.


엄마의 삶은 지긋지긋한 하루에 연속이었을 것 같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엄마는 조용히 오빠와 나를 깨웠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으면 무사히 밥이라도 먹고 학교를 갈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책가방만 챙겨 다시 누군가의 집으로 향해야 했다.


하루도 편하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밤길을, 새벽길을 헤매었던 그 시간들 속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고,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엄마 등을 거부하고 엄마와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엄마 손을 거부하고 홀로 집에 남기로 했다.




"니는 왜 거그 있냐" "니그 엄마 따라 나가제, 왜 거그 있어"

아버지는 홀로 남아 있는 나를 보고 왜 나가지 않았냐며 소리 지르고 어서 나가라고 위협을 했다. 나는 조용히 나가지 않겠다고 여기가 우리 집인데 어딜 가냐고 대려 더 큰 소리로 아버지 말문을 막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화가 누그러진 아버지는 체념한 듯 조용해지셨다.


밥상을 차려 같이 밥을 먹자고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노려보더니 "니나 묵어라" 한 마디와 함께 밥상을 내동댕이쳤다.


.....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의 미묘한 대립각이 형성되었고, 술을 드신 날 엄마와 심하게 다툰 날, 나는 홀로 집에 남아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엄마 따라 같이 가장께, 혼자 있으면 안 돼야"


엄마는 홀로 남겠다는 나를 걱정했지만, 엄마 따라 남의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집에 오는 것보다 아버지와 밤을 지새우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 술 주사는 옆에 누가 있던 잠을 재우지 않았고. 당신이 잠이 들 때까지 붙들고 찾아가서 날이 밝도록 잠 못 들게 고문 아닌 고문을 했다.


아버지와 나는 몇 번의 밥상과 몇 번의 술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날을 새웠고, 어느 순간 내면도 외면도 무뎌진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밥상이건 술상을 내동댕이치도록 내벼려두지 않았다.


"밥 잡수고, 술 드셔"  

"확 엎어 불랑께" "저리 가그라"


"밥 잡수고 술 드시라고, 얼른 수저 들고 밥 한술  뜨면 술 드릴랑께"

아버지는 쉽게 삭혀지지 않은 화를 뒤로하고 겨우 숟가락을 들고 밥 한술 뜬다. 며칠 만에 흰쌀이 아버지 몸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독기가 가득한 화를 내뿜던 아버지는 체념과 단념과 타협으로 시간을 바꿔갔고, 홀로 남겨진 나에게 더 이상 폭언도 위협도 가하지 않았고, 잠들려 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지도 못살게 굴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동이 트는 새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녘 집에 돌아온 푸석한 엄마는 "또 장롱에서 잤냐?" 잠이 덜 깬 나를 보고 짧게 묻는다.

한 번도 장롱에서 잤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 많은 날을 그저 그런 날로 보낼 수 없었다는 걸.


아버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남편을 만나 너무 사랑받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엄마 가슴에 멍만 가든 남겨두고 가셨잖아요. 흔한 양말이라도 선물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젊은 날, 여자였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애처롭고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보다 원망과 상처만 가득해서 아버지 모습이 아픔이 되어버린 엄마를 이제는 아버지가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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