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숨 한번 크게 몰아쉬고 두 손을 불 끈 쥔다. 운동화 끈을 동여메고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준비를 한다. 살금살금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집을 향해 간다.
마을 초입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우리 집이다. 지금부터 마당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거야, 마루까지 쉬지않고 뛰어서 재빠르게 마루 위로 올라가야 해.
집 앞 골목에서 마루까지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우리 집 수문장 강아지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잰걸음을 멈추고 심호흡하려던 그때 나를 향해 뛰어오는 강아지 한 마리.
"멍멍멍" (촐랑촐랑,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필시 강아지는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나를 행해 질주하는 우리 집 누렁이, 반가움에 앞 다리를 번쩍 들어, 내 어깨 위로 두 발을 얹으면 나는 비틀비틀 누렁이의 반가움은 버거움으로 다가와 냅다 줄행랑을 치게 한다.
누렁이는 놀아주는 줄 알고 도망치는 나를 뒤따르며 기분 좋게 멍멍 짖어대며 꼬리를 마구 흔든다. 신이 나서 깡충거리는 누렁이와 달리 빈약한 여자아이는 온 힘을 다해 도망쳐 마루 위로 뛰어오른다.
마루 위에서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지그시 누렁이를 마주한다. 마루까지 뛰어오르지 못하고 마루 끝에 매달려 꼬리를 살랑거리는 누렁이 얼굴을 그제야 만져본다. 내민 손바닥을 핥아가며 좋아하는 누렁이. "진정해, 잘리 좀 진정해" "나도 네가 좋아 근데 네가 껑충거리면 나보다 키가 커져서 넘어질 것 같아"
살짝 마루에 기댄 여자아이의 관심은 온통 잘리에게 머물러 있다. 그제야 깔깔 웃어 본다.
우리 집 누렁이(이름: 잘리)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내 친구. 내 발소리가 들리면 마중 나와 반겨주는 정 많은 친구. 잘리는 아버지도 무척 좋아한다. 아버지는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잘리 밥은 제일 먼저 챙겨 주셨다.
비틀비틀 취해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날에도 꼬리 흔드는 잘리를 보면 "아따, 시방 나왔다고 좋아한다냐" "그러고 좋냐" "이 집에서 질루 좋다냐" "밥 묵어라"
한참을 잘리 얼굴을 부여잡고 친한 친구와 수다 떠는 거처럼 소곤거리셨다.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잘리 애교를 아버지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겨울이면 부뚜막에 자세를 잡고 잠든 잘리 (어릴 적 시골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밥을 지었다.)언제나 든든한 내 친구이자 아버지 친구였던 잘리는 어느 해 겨울 자신이 낳은 새끼 강아지의 토사물을 먹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후로 강아지는 키우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울기도 많이 울었던 그 시절, 아궁이 연기의 매캐함에 눈물 찔끔거렸는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내 모습에 눈물 찔끔거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뜨뜻한 부뚜막에 곤히 잠든 잘리가 그립다.
아버지는 강아지, 토끼, 닭, 소, 염소 집에서 가축을 많이 기르셨다. 아버지는 정이 많은 분이셨던 게 맞다.
어쩌면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가축에게만 당신의 정을 표현하고 사셨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와 자식 간에 어색함만 가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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