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에 관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보다는 기다리는 일이 더 잦은 요즘이다. 늦는 사람일 때는 몰랐는데 버릇을 고친 후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 이 글의 첫 문장도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쓰였다. '곧 도착해'는 5분, '미안 나 조금 늦어'는 10분, '먼저 들어가 있어'는 20분.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늦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언어를 해석할 능력은 탁월하다.
아침잠이 많은 데다 천성이 느긋한 나는 언제나 지각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글을 배운 인연으로 아직까지 종종 만나는 은사님은 ‘요즘도 늦냐’를 안부 인사처럼 물으시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대학 가서는 지각 안 하제?’라는 말로 핀잔 아닌 핀잔을 주신다. 그럴때면 나는 ‘에이 선생님, 요즘은 안그러죠’하고 받아치면서도, 빗살 무늬가 가득할 내 강의 출석표를 떠올리며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렇게 지각을 밥 먹듯이 했을까. 나 하나쯤이야 늦어도 그만 안 늦어도 그만이었나. 그냥 개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랬던 내가 이 고질적인 버릇을 단숨에 고치게 된 건 어떤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날도 나는 약속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겨 도착했다. 그 사람은 30분 전에 와있었다 말했다.
"원래 약속 장소에 10분 먼저 도착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뼈아픈 야단도, 대단한 충고도 아니었지만 내겐 충격적인 한 마디었다.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에겐 당연한 것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나는 당연한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겠구나. 이 당연한 깨달음은(아니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일생이 부끄러워졌다.
이외에도 그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나에겐 당연하지 않던 것들이 꽤 있었다. 상대가 잘 먹는 반찬을 슬쩍 밀어주는 것, 말없이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것, 사소한 친절에도 고맙다 말해주는 것, 몸이(혹은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달콤한 것을 사다 주는 것. 당신에게는 공기 같은 것이지만 나에게는 낯선 향기였던 행동들. 사람의 향기는 배려가 만든다는 걸 당신을 만나며 알았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보며 나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그 간극은 사람을 끌기도, 멀어지게도 한다. 예컨대 나 같은 경우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그런 태도가 부럽다고 말한다. 상황을 따지지 않고 감정에 솔직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어렵고 그래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좁게는 상대의 편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부터 더 나아가 내게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는 마음까지. 이 당연한 깨달음도 늦은 감이 있어 아쉬운 일이 많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서툴지만 차근차근 나만의 향기를 머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