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당주민 Nov 06. 2023

23년도에 가장 잘한 결정

클럽모우에서 운이 좋았던 날

여기까지 왔는데 2홀이라도 쳐보자. 잔디라도 밟고 가자. 2홀 치고 못치겠으면 그냥 가자.

이 한마디가 23년도 가장 잘 한 결정이 될지 비를 맞고 나가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23년도가 이제 마지막을 향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골프를 사계절 다 치지만 그래도 가을은 골퍼들에게 최고의 계절입니다.

특히 저같은 직장인에게 가을이란 그해 골프실력이 최고조에 올라오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겨울 동면기에 들어갔다 다시 봄이되면 실력은 최악이고

여름에 반짝하며 가을이 되면 절정을 치고 다시 내려가는 사이클이 매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부상의 위험 무엇보다 추운게 너무 싫어 겨울 골프는 접었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혹서기 혹한기 시기에 싼 맛으로 다니기는 했는데

이제 골프장은 이 시기를 잊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골프가 너무 비쌉니다.


11.5일 일요일 오전 8시14분 티를 잡았습니다.

그간 날씨가 너무 따듯해서 반팔을 챙겨야 하나 고민했는데 비 예보를 보고 반팔은 접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것으로 예보되었고

6시 좀 넘은 시간 분당에서 출발할 때는 날이 따듯했고 

비도 안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고 음악을 들으며 강촌 IC를 들어섰습니다.


약속된 아침식사 장소를 1km 남겨둔 시점에서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 이런 나가리인데. 걱정이 됩니다.

식당에 도착하자 비가 더 거세집니다. 

식당 처마 밑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합니다.


일행이 모두 도착했고 모두들 걱정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도 밥은 먹자. 식당에서 김치찌게와 된장찌게 각 2분을 시킵니다.

식당은 3인 이상이면 홍천막걸리 1병과 계란후라이가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클럽모우 바로 앞 '장락가든' 특이하게 3인 이상에게 홍천막걸리 1병이 서비스

밥을 먹고 막걸리 한잔씩을 하며 떠들며 비가 그치기를 희망해 봅니다.

희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식당에 들어갈 때보다 비가 더 오는 것 같습니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니 많은 골퍼분들이 할지 말지를 고민하느라 

여기저기 모여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 지점에는 대형 파라솔 밑에서 고민하는 무리들이 모여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취소할지 진행할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딱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8시 14분 티인데 우선 8시까지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2홀이라도 쳐보자. 잔디라도 밟고 가자. 2홀 치고 못치겠으면 그냥 가자.

제가 제안합니다. 그러자 좋아! 하며 모두들 락커로 튀어 들어갑니다.

모두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 바랬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가서 스크린을 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말도 안됩니다. 스크린 갈 봐에 집에 가지.


그리하여 11.5일 8:14분 클럽모우 마운틴 코스를 사수합니다.

캐디분도 표정이 썩 나쁘지 않습니다. 차라리 본인도 나오고 오후에 쉬는게 낫다고.

첫 홀 파 5를 돌고 두번째 홀에서 거짓말처럼 비가 안옵니다. 잠시 멈춘건가?

세번째 홀에 들어서니 비는 더 이상 오지 않고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밀려옵니다.

캐디분이 안개등을 놓을 상황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 걱정합니다.

비가 안오니 상관없습니다. 한 홀을 더 돌자 안개도 걷힙니다.

이래서 완벽한 가을 골프의 날씨가 완성되었습니다. 

뛰는 자와 걷는 자, 실력 차이


캐디 말로는 대략 30팀 정도가 취소했다고 하는데 후회를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주말에 앞팀과 뒷팀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옆 홀의 사람도 못보고 전반이 끝났습니다.

이런 골프를 치는 날도 있군요.

취소 팀이 많아 그늘집에서는 쉬지 않고 막걸리 1병 빠르게 마시고 1병은 들고 후반을 시작했습니다.

후반도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가을 정취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안개로 더 멋있었던 클럽모우의 풍경

후반 5홀부터인가 뒷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원래 뒷팀이 보이는게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날의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후반에 비가 오기는 했습니다. 못칠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후두둑 쏟아지다 그만할까 고민하는 딱 그 순간 비가 멈추고. 오다 멈추고.

18홀 잘 돌았고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차 안막힐 때 서울가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 날씨가 너무 좋아 옹장골로 향합니다. 

강촌IC 인근 닭갈비 집인데 산 중턱에 위치해 풍경이 너무 좋고 장작과 돌판이 있는 특이한 식당입니다.

감자전이 특히 맛있습니다.



오늘은 23년에 내린 의사결정 중 가장 잘 한 결정이었어!  

작가의 이전글 노은님 1주기 추모행사 삶의 에너지를 얻는 소중한 기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