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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그런 Jul 23. 2024

4. 아홉 살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선생님은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교육 관련 도서들을 읽다 보면 이런 용어가 나온다. 하인형 교사, 보스형 교사. 읽으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름부터 너무 노골적이었다. 물론 발령 직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하인형 교사가 바로 나라는 걸. 첫 날, 다리가 아파 수업 시간에 앉지 않는 아이들과의 실랑이 이후, 갈피를 잡지 못했다. TV에서만 보던 상냥하고 친절한 선생님은 허상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보던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환상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가늠하고 있었다. 


 9살, 그저 순수하기만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선생님은 내가 멋대로 행동해도 되는구나. 그래도 받아주는구나. 한 명의 잘못된 행동은 감기처럼 번져 두 명, 세 명으로 늘어났다. 아홉 살도 누울 자리를 보고 자리를 뻗었다. 눈치라는 건 본능적인 감각인 듯 했다.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화를 낼 줄 몰랐던 대학생 때까지의 나는 이제 없었다. 자그마한 일에도 앵그리버드 그 자체였다. 


"으아악! 선생님, 쟤가 저 때렸어요!"

내가 고함을 지르고 싶었던 걸 알았는지 쉬는 시간 아이들은 날 대신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은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상처에도 부상병들이 속출했고 나는 위생병이 되어 그들을 치료했다. 어렸을 때 못한 직업 체험은 모두 쉬는 시간에 가능했다. 재판이나 추리도 내 영역이었는데 이처럼 판결을 많이 내릴 줄 알았더라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판사가 될 걸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짧은 10분동안 수많은 직업을 수행하다 보니 화장실을 가지 못해 때로는 아팠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그제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교탁에 웅크린 채로 한참을 있어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제야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 오신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신규라 열정이 넘쳤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얼굴이 초췌해져갔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 문을 모두 나섰을 때, 나는 선생님의 크나큰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에휴."

어깨를 두드리던 축 처진 그 날의 선생님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았는데 그게 내 모습이 될 줄이야.




 


그 시절의 열정 넘쳤던 칠판. 장기자랑날, 아침 일찍 와서 서프라이즈로 그렸다.



 아이들에게 애걸복걸하며 한 해를 보낸 후, 나는 보스형 교사로 진화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착하고 여린 교사가 다음 해부터는 점점 무서운 호랑이 교사로 변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니까. 무시했던 교육학 책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하인형 교사에서 보스형 교사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무서운 선생님이 있다면 한번쯤 의심해보시라. 처음에는 분명 누구보다 착한 선생님이었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새학기, 첫 날 첫 시간에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다. 바로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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