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Mar 22. 2024

낯설었던 그곳, 신경정신과

중등도 우울증 진단

 요즘은 직장에서도 심리 상담을 권장하고,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교육을 많이 진행한다. 정신과적 질병은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으라 권하기도 한다. 쉬쉬하는 분위기도 여전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감수성이 많이 좋아진 상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그때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과적 질병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문턱을 넘는다는 것 자체로도, 아니 병원을 검색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질감이 가득한 그런 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병원 한 군데를 찾아내었지만 도저히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원 문 앞에서 조금 망설이다 돌아갈 곳도 없고 해서 문을 열었다. 로비에는 40대 남성 한 분과 5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었다. 카운터에서 무어라 인사를 하긴 했는데,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음을 다쳤다는 것이, 이곳 정신과에 온다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인가 싶지만 그때는 참으로 무지했다.

 접수를 하기 위해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기 같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말하니 직원이 한 번 더 물었다. "000이요." 괜히 한 번 더 말하고는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치과보다 더 이질감이 있었지만 호기심만큼은 가라앉지 않았다.

 주변에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증상으로 오신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궁금해져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 분만이 당당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중에 어쩌다 알게 된 사실인데, 주변을 당당히 둘러보던 그분은 교통사고 후에 혹시 있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해 진료를 받으러 오신 것 같았다.

 "키랭이님 들어오세요." 내 차례가 되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와 몇 마디 나눈 후 이것저것 검사를 시작했다. 딱히 힘들었던 것은 없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질문지를 작성할 때가 가장 귀찮고 힘들었던 것 같다. 작성할 때는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작성이 모두 끝나고 결과를 들으러 다시 방에 들어가니 가관도 아니었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요?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내가 대답했다. "아... 그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서 시작됐어요.", 의사가 말했다. "음... 키랭 군 결과를 보니까 우울증이 있어요. 정도로 치자면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중등도구요. 호흡도 호흡인데, 우선 우울증을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의사는 나의 과거와 가족관계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하나 둘 이야기해 나갔다. 그제야 의사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동이가 하나 있어요. 양동이에는 키랭 군의 스트레스가 조금 담겨 있죠. 그런데 이건 나쁘지 않아요.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 번씩 비워줘야 하는데, 키랭 군 같은 경우는 스트레스가 양동이에 점점 차다가 넘치기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서 그게 넘쳐버린 거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은 있어요. 우선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지점으로 가서 해결을 해줘야 해요. 그러려면 가족들 전체를 다 모셔와서 상담을 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 참 쉽지 않은 걸 알거든요... 혹시 할 수 있겠어요?"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상담을 한 번 받아보고 싶었다. TV 프로그램에 보면 사회 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솔루션을 주고, 드라마틱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우리 가정에도 이런 행운이 오지 않을까 늘 꿈꿔봤지만, 그냥... 꿈이었다. 사실 몇 번 권유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때마다 크게 혼이 나며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의사에게 말했다. "저... 혼자서 상담받을 수는 없나요? 노력은 해 볼 건데... 안 될 것 같아요..." 시도해 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했다. "혼자서라도 가능하면 해 봐야죠. 아 그리고 약도 있어요. 그런데 너무 어린 친구고 그리고 상담으로 먼저 접근하는 게 더 좋아서 권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너무 힘들면 이야기해요. 처방해 줄게요"


 호흡곤란의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30분가량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었다는 것이다.


 '와... 이 얼마만의...'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저녁이 되어 귀가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우울증인가 그거래. 근데... 가족들이 상담을 다 받으면 좋겠다는데..." 엄마가 대답했다. "우울증? 내가 너 보면 멀쩡한데 무슨 우울증? 아빠한테 이야기해 봐." 나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호흡은 불안해졌다. 매일 매 순간 몰아쉬며 간간히 버티고 있었다. 얼굴에 크게 남은 흉터 때문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지금은 티가 좀 나더라도 컨실러라는 화장품을 20여 년째 사용하며 가려서 살고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다. 흉터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감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도 나지 않았고, 치료비를 달라고 손을 벌릴 형편도 아니었다.


 나의 첫 신경정신과 방문기는 힘들게 시작해서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마음의 문도 굳게 닫아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고 누구에게 도움 받아야 할지... 고민은 깊어져갔다.
















이전 03화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