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는 아내의 고향이자, 결혼 전에는 우리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몇 십 년을 살아온 곳이라 진해군항제(벚꽃축제)가 다가올 때면 아내의 얼굴도 벚꽃처럼 환하게 만개할 준비를 한다. 마치 개천예술제(진주유등축제)가 시작될 때 나의 얼굴처럼 말이다.
아내가 평생 지냈던 방의 창문을 열면 예쁜 벚꽃이 손에 잡힌다며 자랑을 했었는데, 결혼식 후 몇 달 뒤 가보니 정말이었다. 하얀 눈송이처럼 아름다운 벚꽃이 핀 긴 가지가 방문을 두드리고 있길래 열어주었는데, 거짓말처럼 손에 와닿아 깜짝 놀랐었다.
이제는 모두 이사를 와 그 창문을 열어볼 수 없지만, 여좌천을 끼고 마음껏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다시 찾은 그곳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몸은 멀리 떨어졌지만 늘 고향생각에 그리움이 가득하신 장모님과, 지척에 두고도 군항제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봄나들이에 나섰다. 사실 어머니는 우리 가족과 한번 와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사진이 남은 것이 없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추억은 기록이 있어야 오래가고, 대화를 나눠야 더더욱 오래가는 법인데, 그때 그 시절 긴 터널을 함께 지나오며, 소중했던 기억의 조각들을 많이 놓고 온 것 같았다.
노란 할머니와 하으니
만개하지 않았지만
경남 진해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시며 축제 때 각종 봉사활동을 해 오셨던 장모님은 마창대교를 넘기 전까지 듬성듬성 피어있는 벚꽃을 보며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축제가 너무 빨리 시작되었어..."
그러고 보니 아직 만개 전인데, 며칠 뒤 폐막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창대교와 터널을 지나고 나니 조금 전까지 듬성듬성했던 나무와는 다르게 꽤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마치 진해에 사는 나무들만 다른 양분을 먹는 듯한 아주 진기한 광경이었다.
주동자는 바로 노란 북극곰 할머니!!!
훌쩍 커버린 하이텐션 하은이도 얌전히 유모차에 앉아 풍경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하은이는 왠지 벚꽃보다는 아기상어 풍선이나 막대사탕에 더 눈이 많이 가는 것 같았다. 늘 빨간 옷을 입고 다니는 어머니를 보며 "빨간 할머니~" 혹은 "북극곰할머니~"라고 불렀었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노란 할머니~"라고 불러준다.
군항제에 오면 여좌천만 걸었는데, 이 날은 먹거리장터도 가보았다. 역시 '로컬'이 있으니 동선도 다양해진다.
하은이가 갑자기 노란 할머니를 찾는다. "아빠 노란 할머니는 어디 있어요?" "응? 잠깐만~" 어머니는 식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쓰고 약 파는 곳이라 부르겠다) 앞에서 흰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네들도 이 봉지 하나씩 들어봐 봐~"
어머니가 저리도 신나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장모님이 봉지를 받아 들고 따라나섰다. 가만 보니 선물을 그냥 주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봉지를 들고 모여 서 있다가 5분 정도 설명을 다 들으면 선물을 하나 넣어주고, 천막으로 유인해 설명을 계속 듣게 만든다. 다음 선물을 드릴 때까지 영상을 동원해 잡아두고, 상품 가격과 효능을 중간중간 곁들인다. 그러곤 상품을 사라고 하지 않고 선물을 준 후 다시 설명을 이어간다.
나는 유모차를 밀며 장터를 10바퀴를 더 돌며 기다렸다.나는 속으로 '그래... 그동안 일상 속에서 많이 지쳤을 텐데... 즐거워하시는 모습 보니까 좋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은이의 지치는 모습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 특공대로 아내를 보냈다. 하지만 단단히 박힌 어머님들의 발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판매를 주 업으로 삼았던 나의 좁은 식견으로 미루어 볼 때 어머님들은 분명 손에 든 봉지와 군중심리 때문에 못 나오는 것이리라 판단했다.
30분 후...
"할머니, 저와 함께 가시죠"
내가 나서 노란 북극곰(어머니)을 손으로 낚아챘다. 그러자 장모님도 아쉬워하며 함께 딸려 나올 수 있었다. '역시 우두머리를...'
"딱 한 번만 더 들으면 치약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쉬워하는 표정이 꼭 순수한 소녀의 모습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쓰리기도 했다. '얼마나 놀고 싶으실까... 맨날 일만 하시고...' 새벽까지 일을 하다 나들이를 가기 위해 몇 시간 못 자고 따라온 어머니, 아니 엄마. 집에 가면 또 일이다...
진해 '팥이야기'
네 여자와 함께한 꽃놀이
어머니와 장모님은 여좌천 길을 따라 걸으며 단짝 친구처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천천히 올라갔고, 나와 아내는 하은이가 탄 유모차를 밀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사람들은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늦은 개화시기에 전국에 있는 많은 지자체들이 울상이라며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를 준비하는 주최 측은 수백 수천여 축제 관계자나 공연팀 등과 사전에 협의, 계약해야 하니 개화상황을 보고 미룰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축제 현장 속의 관광객들의 표정은 벚꽃보다 더 만개한 환한 웃음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보다 못 미친 벚꽃을 보며 아쉬웠겠지만, 이 또한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며 저마다 플래시를 터뜨렸다. 세월이 흘러 갤러리에 쌓인 '인생샷'을 꺼내어 보며, "야~ 그때 우리 정말 즐거웠지?"라고 또 추억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날, 우리 행복했노라고 추억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미소가 담긴 어색한 구도의 사진 한 장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