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Jun 17. 2024

내가 발 뻗을 곳은 내가 만든다.

인공 중력

나라는 인간은 집을 떠나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 집을 나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이 좋다 한들, 언제까지 둥지에 가만히 앉아 입만 벌리고 있으랴. 나이가 됐으면 날갯짓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낸 이력서가 덜컥 인생을 바꿨다. 그렇게 경기도의 한 천문대에 취직했다. 

 딸이 집 떠나 상경한다는 말에 엄마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생각난다. 기특함, 서운함, 걱정이 이리저리 뒤섞여있었다. 정작 난 당황했더랬다. 어라, 이렇게 대구를 떠날 생각이 없었는데? 인생 첫 자취 라이프는 갑작스러운 합격 소식과 함께 계획도 없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만 해도 수도권은 곧 신도시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리와 덜 자란 가로수,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내가 생각하는 경기도다. 하지만 도착한 직장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이런 곳도 수도권이라고 불러주나 싶을 정도로 깊은 산에 자리 잡은 건 물론, 가장 가까운 상점가 역시 번화한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데에만 차로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나의 고향을 듣고선 서울로 올라와서 좋겠다고 말을 붙였다. '우리 집은 한 정류장만 가면 대학병원도, 구청도, 스타벅스도, 영화관도 있는데, 여긴 편의점 하나 없어요.'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하하 웃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경기도는 이런 곳이 아니었고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다섯이서 복작이며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면 눈물부터 쏟아졌다. 기다려도 오는 사람이 없는 공간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깊게 가라앉은 마음은 돌봐줄 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독립해서 사는데 나만 이렇게 힘든지 자책만 가득했다. 남들 다 하는 일 하면서 왜 이렇게 유난일까 난.


 그렇게 일도 생활도 정신없이 적응하는 신입 시절을 보냈다. 집도 한 번 이사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그 산골짜기로 출근한다. 여전히 이곳에 있다.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본 지구 /NASA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할 때 중요한 건 뭘까. 숨 쉴 공기와 마실 물, 보관이 긴 음식 따위가 떠오른다. 이런 건 쉽게 준비할 수 있다. 짧은 여행에서는 이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긴 여행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지구에서 챙겨갈 수도 없는 "중력"이다.


 사실 중력이 없는 건 공기가 없는 것만큼 치명적이지 않다. 실제로 지금 우주에 있는 우주인들도 무중력 상태에서 잘만 생활한다. 하지만 중력이 없는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된다면 몸을 지탱하던 근육이 빠지는 것을 시작으로 뼈의 밀도가 낮아지고, 신장에 무리가 가며, 혈액량이 주는 등 자잘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된다면 결국 더 이상 중력에 버틸 수 없는 허약한 몸이 될 것이다.


 머나먼 우주, 중력이 없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 여행하기 위해서는 인공적으로라도 중력을 만들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구나 달처럼 커다란 천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중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질량만으로 중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중력은 그저 가속도일 뿐이다. 가속도(加速度). 속도를 더한다, 속도가 변한다. 멈춰있는 차가 갑자기 출발하면 몸이 의자 쪽으로 붙는 힘이나 달리던 차가 멈춰서 몸이 앞으로 쏠리는 힘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종의 앞뒤로 작용하는 중력이다.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주선이 순간마다 가속, 그러니까 계속해서 속도를 올리기만 하면 인공적인 중력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중력가속도는 9.8m/s²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인공 중력을 지구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 1초마다 속도를 9.8m/s씩 높이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초속 9.8m, 다음 순간에는 초속 19.6m, 그다음 순간에는 초속 29.4m로, 꾸준히 속도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인공 중력을 만들 때 필요한 건 단 하나, 추진력이다.


 가속과 감속뿐 아니라 원심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네를 아주 빨리 타면 떨어지지 않고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다. 쥐불놀이와 같다. 불을 담은 깡통은 빠른 회전에 의해 밖으로 나가려는 원심력을 받아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원의 중심에서 반대편 방향으로 작용하는 중력이다. 이를 이용해 우주선을 만들면 급가속, 급감 속하지 않고도 인공 중력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엄청나게 커다란 우주선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인공중력은 매체에서 자주 다뤄진다. 소설 <헤일메리 프로젝트>에서는 가속과 감속을 이용해 인공 중력을 만든다. 한 방향으로 힘을 받기 위해 우주선을 회전시키기도 한다. 영화 <하이 라이프>에서도 같은 원리의 인공 중력이 등장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영화 <마션>에서 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구조를 이용해 인공 중력을 만든다.






 나는 지금 우주여행 중이다. 집과 멀리 떨어진 이곳은 날 지탱해 주던 중력은 더 이상 없지만, 다행히도 나의 작은 우주선을 채워줄 인공 중력을 찾았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학생들. 주말에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직장 동료들. 같이 여행 중인 어린 시절 친구들. 철마다 앞마당에 나타나는 계절 동물들.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마음 붙일 수 있게 된 나의 도시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사랑하고 후회하며 나아가는 지금, 무겁게 날 내려 앉힌 인공 중력 덕분에 두 다리로 단단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휘청일 땐 잠시 돌아갔다 온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지구의 품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