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1. 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을

행복이라는 사혼의 구슬조각

by 한소리


'언니. 불행은 찾아오는데, 행복은 내가 찾아야만 하는 것 같아요'


지난 가을. 내가 아끼는 동생 중 하나가 꽤나 힘들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꺼냈다. 비단 동생 뿐만 아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행은 커다란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려와 사람을 집어삼킨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느낌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면 한참을 그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 한번 몰려가고 난 불행은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괜찮음에도 불안에 떨게 만든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나, 의도치 않았던 실패. 가고자했던 진로를 포기하는 것. 행복할 줄 알았던 상황이 피치못하게 와르르 무너지거나, 믿었던 것들이 배신할 때.

그럴때 우리는 큰 불행을 느낀다. 내 삶을 탓하고 주변인들을 탓하고 나를 탓한다. 억울해도 그 감정이 오롯히 내 것이라 어쩔 수 없다. 그 불행함을 나 홀로 느껴야 한다.


반면 행복은 아주 드문드문, 그것도 왔다!하는 느낌보다 잔잔하게 온줄도 간줄도 모르게 흔적도 제대로 남기고 가지않을 때도 많다. 물론 종종 '나 행복해!'하고 외칠만큼 행복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일상의 감정 중 일부로 치고 넘어간다.


왜 그럴까.


아마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느끼기 위해

아주 먼 옛날부터 행복이라는 단어를

쪼개서 사용해왔던 게 아닐까.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를 다른 인류보다 더 세세하게 쪼갠다고 한다. 인간들도 그랬던 거 아닐까. 그러니까 사실은 '저 고양이 너무 귀여워!'라고 느끼는 순간이나 '오늘 점심 맛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사실은 모두 행복이라는 단어에 속하는 거다. 귀엽다는 행복함. 맛있다는 행복함. 그렇게 따지면 세상 대부분의 동사와 형용사, 일부의 명사들은 행복함인 거다.


오늘 입은 목도리가 따뜻했다. 야근한다고 타고 왔던 택시 아저씨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날이 추웠는데 하늘이 파랬다. 지나가던 차 위에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야식으로 먹은 라멘이 맛있었다. 우연히 본 전 회사가 반가웠다. 글쓰기 주제가 마음에 든다. 이것 모두 행복이지 않을까.


인류는 오래 전부터 행복을 찾았고 그걸 더 세세하게 느끼기 위해 단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불행은? 굳이 쪼개고 싶지 않다. 우울하다, 힘들다, 피곤하다 등 비슷한 뉘앙스로 몇 개만 만든 거다. 그러니 감정도 크게 따라올 수밖에.


처음 말했던 그 동생에게 나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은 너무 자잘하고 가까이에 있어서 약간은 무뎌진 게 아닐까?"


잘게 쪼개진 행복을 사람들은 너무 행복을 쉽게 흘려버린다. 이게 뭔지도 모르게 흘러가니 하나하나 모아야 그제서야 완성되는 '행복'의 존재를 자주 놓친다. 처음부터 만들어져 떨어지는 불행과는 다르다. '사혼의 구슬조각'인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 감정들을 잘 모아둬야 한다. 여러분들의 1년을 돌아보자. 올해는 어땠는가. 여러분들 사혼의 조각을 잘 모은 것 같은가. 어려운 일이 많은 올해였더라도 작은 구슬 하나쯤 품고 갈 수 있는 한해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