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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7. 2024

아빠 그리고 온기

당신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당신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발인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하얀 쿠쿠 밥솥 아빠가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5개월이라는 모래시계. 그 안에서 쉴 새 없이 낙하하는 모래를 어떻게든 손으로 움켜쥐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간절함만 남은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아빠를 잃은 아이처럼.  



                                 

‘간암 4기입니다. 여명은 6개월 정도, 주변 정리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빠가 간암 선고를 받던 날, 진료실 안에는 담담한 척하던 내가 있다. 슬퍼하는 딸을 보면 마음 아플 아빠가 걱정스러웠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그것이 딸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진료실의 공기와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따뜻한 가을 햇살까지 완벽하게 잔인하던 지난 2022년 9월 20일. 



                        

아빠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독한 치료를 받으면서 아빠의 체중과 식사량은 급격히 줄어갔다. 아빠는 밥을 드셨다가 죽을 드셨다가 미음을 드시기도 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몸 상태에 따라 끼니마다 끝도 없는 전쟁을 했다. 밥과의 전쟁. 항암치료는 입맛을 더 예민하게 만들었고 냄새에도 민감해졌다. 점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었다. 나는 아빠의 몸무게를 매일 체크했다. 아빠는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갔다. 먹는 속도보다 빠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매일 1킬로씩 빠져가는 몸무게를 보고 있으니, 체중계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아빠의 몸무게를 지키고 싶었던 엄마는 매일 새로운 음식과 간식을 만들었다. 아빠가 한입이라도 목으로 삼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가 밥솥 하나 사주려고"     


"아니야 아빠. 곧 이사 갈 거라서 이사 가면 살 거야. 그때까지 이거 쓸게"     


결혼 10년 차 하나씩 고장 나던 가전제품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오던 까만색 쿠쿠 밥솥. 나에게는 지난 10년의 결혼생활을 함께했던 친구 같은 밥솥이었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낡은 느낌은 있었지만 뭔가 애틋하기도 했다.     



"그냥 아빠가 새것으로 사줄 게 골라봐"     


"아니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럴까 봐? 그냥 내가 살게요"     


"아빠가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래. 예쁜 걸로 골라봐"     


          

나는 조용히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서 수돗물을 틀었다. 입을 틀어막아도 심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내 목구멍에 묵직하게 걸리더니 눈물이 차올랐다. 울컥울컥 심장에서 피를 토해내듯 감정의 덩어리들이 얼굴 가득 경련을 일으키며 흘러내렸다. 심장을 조여 오는 통증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폭풍우가 온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느낌. 그때 처음 알았다. 눈물에도 통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빠는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었을 테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딸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을 거다. 모정보다 뜨거운 부정. 나는 그런 아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받기가 싫었다.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매일 쌀을 씻어 밥을 하겠지.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갓 지어진 하얀 쌀밥을 주걱으로 저으면서 휘휘 저으면 그때마다 아빠가 떠오르겠지.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아빠를 잃어버린 게 현실이 될까 봐 너무나도 불안했다. 사실은 다가올 시간이 두려웠다.   



            

암이라는 녀석은 잔인했다. 환자에게는 처절한 고통을 주고 가족들에게는 그 고통을 지켜보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무력감에 일상을 통째로 빼앗겼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나를 벗어나지 못해. 한번 해보든지'  

   

낮게 드리워진 악마의 그림자는 가족 모두를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어두운 회색 도시에 영원히 가두어 버렸다. 내가 보는 세상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마지막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가던 한 사람의 인생도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멈췄다.

고요해진 병실. 아빠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짓는 첫 밥.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을 마주한다.

마지막 순간, 사라져 가는 희미한 숨결과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던 온기가 벌써 그립다.

증기를 내뿜는 밥솥이 아빠에게 받았던 온기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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