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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7. 2024

14층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다.



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다.     



      

"생각보다 별로 안 높네?"     



          

14층이었다. 평소처럼 창문을 열고 등교를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찔한 높이였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섭지 않았다. 나는 창문 가까이에 서서 지긋이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지냈던 방.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오신 아빠는 이 방에서 3개월을 지냈다. 아빠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식구들이 아무도 없는 시간이면 나는 이 방에서 아빠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아빠를 기억하고 싶었다.



                

안방과 마주 보는 아이들 방이었다. 침대와 옷장이 있는 작은방이었다. 밤이 되면 방문은 닫혔지만, 방문 너머로 밤새도록 아빠의 소리가 났다. 주방에서 물을 끓이는 소리 작은 유튜브 소음. 화장실을 드나드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 작은 비닐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안도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 아니구나. 아직은 아니구나. 다행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있어서 방문은 열지 못했지만 방문 밖에서 들리는 아빠의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였다. 새벽에 들리는 조용한 생사 확인의 소음이 때론 두렵기도 때론 착잡하기도 했다. 그 작은 소리가 밤새도록 나를 살렸다. 아빠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나는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되었다. 밤이면 잠들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간암 치료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네이버 카페 안에 나의 세상을 만들어 두었다. 간암 환우들과 환우의 보호자들이 매일 울고 안도하는 곳. 그곳에 들어가서야 겨우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잠들 수 있었다. 자는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언제 잠들어도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번쩍 떠졌다. 매일 꿈과 현실이 뒤섞인 밤을 보냈다. 



               

아빠가 떠나고 집안은 고요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집안을 걸어 다녔다. 아빠를 떠올리게 되는 작은 물건들과 메모들,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아빠가 처방받은 약 뭉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펼쳐보았을 아빠의 책, 빨대와 티슈들. 숨 쉬는 공간 곳곳에 아빠가 놓여 있었다. 떠난 자리에 남은 물건은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건들을 볼 때마다 아빠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나는 그 시간 속으로 저항 없이 빨려 들어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남은 사람이 겪어야 할 지독한 시간은 느리고 길었다. 사고로 돌아가신 건 아니었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컸다. 표면적으로는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온전히 보고 느꼈던 나는 사실 처음 보는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아빠는 간암 발견 당시 이미 10킬로 이상이 빠져 있었고 매일 1킬로씩 살이 빠졌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아빠의 체중을 채우는 속도보다 빠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매일 조금이라도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지는 점점 더 헐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생명이 꺼져가는 현장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야 말았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결국 내가 알던 아빠의 모습은 없었다. 그곳에는 작은 소년이 누워있었다. 아빠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은 이렇게도 죽는구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하늘로 가는구나. 아빠를 떠나보냈던 모든 상황이 살아있는 나에게는 무서웠다. 슬픔보다 죽음의 공포가 삶을 덮치자, 이상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하지. 결국 사라질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력이 찾아왔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사라져 가는 것을 끊임없이 붙잡았었다. 시간을. 아빠를. 그리고 우리를.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매일 밤 끌어안았다. 분절되지 않은 시간이 하나의 형태로 흘러가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뼈와 살이 흐물거리는 백숙처럼 해체되고 말았다. 나의 존재도 그리고 내가 알던 나도 그리고 앞으로의 나도. 내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자. 그냥 공중에 흩뿌려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공기 속에 섞여 무색무취의 살점들이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티브이를 보듯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더 이상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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