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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7. 2024

눈물을 얼려두는 냉장고

이제는 슬프지 않다.


이제는 슬프지 않다.



눈물은 무엇일까. 어떤 상태로 멈춰있다가 어떤 자극 때문에 다시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그냥 나오면 좋겠는데 온몸을 감싸는 통증과 알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터져버리는 걸까. 마음속에 꽁꽁 얼려두었던 눈물이 언제부터 다시 흐르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아빠의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편안하기를 바랐다. 나는 아빠 앞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들 때는 안방 화장실로 달려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 없이 울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가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평소처럼 아빠를 대하는 것, 슬픔의 무게로 집안의 공기를 채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아빠는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꺼이꺼이 울며 아빠에게 안기지 않는 내가,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가하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대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픈 아빠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단단한 딸이 되고 싶었다. 말기 암 환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 나보다 아빠가 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대신 그 눈물을 마음속 냉장고에 얼려 두었다. 눈물 덩어리를 안고서 제주에 내려왔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냈다. 유난히 더웠던 날씨 덕분에 제주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나는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을 살았다. 하루 종일 눈물이 흘러도 그대로 두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곳이 오히려 편했다. 점점 외부와 멀어져 가던 어느 날. 나는 이 슬픔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어떻게든 다시 건져올려야만 했다. 나는 제주에 있는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고 그곳에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울면서 쓰고 또 울면서 읽었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얼어있던 눈물의 존재를 자각했다. 첫 번째 글쓰기 주제였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제목을 받았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갈등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굳이 나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나 때문에 첫 수업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어떡하지? 막상 글쓰기 수업에 나가려니 망설여졌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래, 써보자'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글을 쓰며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되었다. 슬픔과 고통이 번갈아 가며 휘몰아쳤다. 내가 눌러놓았던 감정의 덩어리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글을 쓰며 이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나를 돌볼 시간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하루를 살았다. 엄마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누군가를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나의 표정을 보고 있는 두 딸의 눈망울을 보면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 얼음은 얼려진 상태로 냉동 보관되고 있었기에 나는 차라리 그 상태가 편하다고 느꼈다. 냉장고는 잘 돌아갔고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나는 너무 자만하고 있었다. 



         

나는 찰랑거리던 수위를 무시하고 얼음 얼리기에만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 전원이 꺼졌다. 무방비 상태로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한 번 녹기 시작한 얼음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냉장고는 완전히 고장 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속에 있던 눈물을 모두 녹여내기로 했다. 차갑고 딱딱한 형태로 꽉 채우고 있던 응어리들을 뜨거운 액체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왕 녹이기 시작한 거 다 털어 내보자 굳은 결심도 했다. 서서히 녹아내린 슬픔의 잔여물이 휴지를 적실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괜찮아지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이곳에서 글을 쓰며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애도의 터널에 갇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걸어 나왔다. 글을 쓰면서. 글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나와 만나고 헤어졌다. 힘들었지만 후련했다. 따끔거렸지만 견딜만했다. 나는 이제 상처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눈물을 얼릴 냉장고가 필요하지 않다. 눈물이 흐르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더 이상 눈물에 익사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성스럽게 나의 마음을 보살피려 한다.



           

긴 터널을 지나왔다. 처음 겪어보는 상실에 삶이 뿌리째 흔들렸다. 아빠의 부재가 나에게 이런 상흔을 남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암 환자의 보호자들은 투명한 화상을 얻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나에게만 보이는 상처다. 화상은 피부 깊숙한 곳까지 상처를 남긴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화끈거리는 상태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보호자들이 이 투명한 화상을 글로 치료하면 좋겠다. 잘 쓰지 못해도 좋다. 일기도 좋다. 한 줄의 메모면 또 어떤가. 나의 마음을 글로 토해내면 좋겠다. 글을 통해 나를 안아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처럼.



     

투명한 화상이 예쁘게 아물어 주기를.

다시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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