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그리움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이사를 결심했다. 아마 아빠의 흔적들을 보기가 힘들었을 거다. 이사한 집으로 처음 갔던 날.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무너지고 말았다. 그곳에는 온통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아빠의 빈자리가 보였다. 한 사람의 빈자리라는 것이 이토록 뭉쳐진 상태 그대로 덩그러니 놓이는 것인지. 지금 내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다.
가구도 그대로 물건도 그대로인데 주인은 사라졌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의 외침이 살갗을 타고 올라왔다. 그때 나는 피부 표면이 따끔거린다는 걸 느꼈다. 소파에 앉아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속에 있던 아빠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마다 그리움은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그리움이 뭉텅이 같은 모양이었다. 둥그렇게 뭉쳐진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아빠의 흔적들은 눌러두었던 그리움을 꺼내기에 충분했다. 발걸음이 닫는 곳마다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아빠가 쓰던 물건이 나에게 주는 그리움은 짙고 무거웠다. 그러는 동안 계절이 변했다. 이제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아무렇지 않게 아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각자가 삼켰던 슬픔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서로가 가진 상실감의 크기, 그 크기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표정에서도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빠가 없는 식탁에 처음 둘러앉은 가족들. 막상 식탁에 앉으니 두꺼운 굵기로 다가오는 아빠의 빈자리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우리는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했다.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멀리 시집을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가끔 친정에 갈 때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빠. 6시간을 달려 친정에 도착하면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식탁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피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은 만큼 나에게는 아빠의 따뜻했던 부정이 쌓여있었고 아빠가 주는 사랑은 언제나 흘러넘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아빠의 사랑을 받은 만큼, 딱 그만큼 고통스럽다. 상실은 이렇게 아픈 감정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나를 보호하는 완벽한 지붕이었다. 나는 지붕 아래에서 아빠의 보호를 받았다. 시집을 가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아빠가 주는 묵직한 안정감이 있었다. 나이테가 여러 겹이라 한 아름 안아보아도 닿지 않는 커다란 나무 기둥 같은 것이었다. 나의 뒤에서 묵묵히 버텨주는 사람, 내가 쓰러지고 무너지면 나를 일으켜줄 유일한 존재였다. 아빠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서도 딸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아빠는 아빠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았다.
아빠의 사진을 본다. 엄마와 함께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보인다. 젊은 시절의 사진, 여행 갔을 때 사진, 기쁜 일이 있었을 때마다 찍었던 가족사진도 함께 있다. 그 옆에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급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아빠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니 미리 마지막 사진이라도 찍어놓아야 했다. 아빠는 모르고 우리만 아는 마지만 가족사진이었다. 어쩌면 남은 가족들은 아빠가 없어진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아빠의 사진을 남겨놓아야 했다. 영정사진을 겸한 증명사진도 찍었다. 장례식장에서 사진이 없어 절차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사진관에 예약된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족들의 고민은 커져갔다. 어쩌면 아빠도 알고 있었을까. 아빠가 찍는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사진을 찍던 날. 가족사진을 다 찍고 아빠 혼자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 순서가 되었다. 멀리서 카메라 렌즈 안에 있는 아빠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려왔다. 아빠, 아빠 장례식에 쓸 사진이야. 조금만 건강하게 보이면 좋겠다. 지금은 항암 치료로 너무 말랐어. 나는 애써 웃는 아빠를 보며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모둔 상황이 여전히 어렵고 버거웠다. 나는 지금 무슨 정신으로 아빠를 보낼 준비를 하는 걸까. 하루 종일 무거운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가와 나를 찔렀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나에게는 후회만 남은 것 같다. 더 잘하지 못했던 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나, 아빠가 영원히 함께 할 거라 믿었던 나. 바보 같고 한심한 나.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언제나 한 발 느렸다.
마지막 가족사진을 내 화장대 위에 올려둔다. 우리가 함께 찍은 마지막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사진을 보며 아빠에게 말을 건다. 아빠 안녕? 오늘 날씨가 참 좋다. 거긴 어때?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편안하게 지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며 몇 번이고 사진 속에 있는 아빠와 눈을 맞춘다. 아빠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숨을 내쉰다. 아빠가 아프지 않다는 것, 그것 하나면 된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아빠. 이제야 실감이 난다.
아직도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다.
아빠의 묵직한 사랑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