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지나 마음에 닿다

하우주의 마음기록

by 하우주

마음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 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나는 틈틈이 핸드폰 메모장에 마음속에서 떠오른 단상들을 간략히 적어두기만 했을 뿐,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또다시 '생각'에 사로잡혀, 시작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을 끝없이 만들어 내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사실 지금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팡질팡하지만, 아마도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여정부터 풀어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한 곳도, 어느 시절도 녹록지 않았던 18년의 회사 생활. 그 마지막 회사는 그야말로 "빌런 오브 빌런"을 만난 곳이었다. 겉보기엔 코스닥 상장사에 매출도 꽤 있어 그럴듯해 보였지만, 안으로는 곪고 썩어 있던 회사였다.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에서 평점 2.0도 되지 않던 곳. 입사 한 달 만에 겪은 사건 하나로 직속 상사에게 찍히고 사업부 사장에게 밉보인 나는, 이후 온갖 방식의 괴롭힘을 당했다. 업무 배제, 공개적 망신, 오너 및 경영진에게 흉보기, 부서 이동… 회사 옥상에 올라가 겨우 분노를 가라앉히면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속으로 사표를 썼다.


그러나 그 알량하면서도 너무나 절실한 월급 때문에, 선뜻 그만둘 수 없었다. 다른 회사를 찾아보려 했지만, 마흔이 넘은 여자 부장을 받아줄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처음 6개월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 나쁜 인간들, 그리고 언젠가는 못돼 먹은 이 회사의 경영진들의 자녀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어느 화요일의 출근길, 사장의 '갈굼'이 예정된 회의가 있는 날 아침. 운전 중, 문득 '이대로 죽는 게 나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곧장 너무 억울해졌다. 그 사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 뻔했고, 방금 전 웃으며 통화한 부모님, 오매불망 집사의 퇴근을 기다릴 아지와 냥이가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그 생각은 하지 말자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회사에 분노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다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다 퇴근을 몇 십분 앞두고 나서야 답을 찾았다.


'돈'.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이 모든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돈이었다. 이 회사에서 더 배울 것도 없고, 커리어에 도움 되는 일도 없지만, 안정적인 월급 하나가 내가 여기에 매여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러니 돈만 있으면, 현실에 닥친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터였다.



그때부터 돈공부를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한때는 '왜 저런 책을 읽어?' 하던 자기 계발서를 읽고, 유튜브를 보고, 강의를 듣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며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무작정 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만을 키웠다.


무력감이 두려움으로 변해가기 시작할 무렵, 그때 읽은 모건 하우절의 『부의 심리학』의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능력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다. 이는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이다."

"갑자기 몸이 아프더라도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필요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은퇴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처럼 돈으로 시간과 선택권을 살 수 있다는 건 어지간한 사치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다."

- 모건 하우절 [부의 심리학] Story 7 ‘돈이 있다’는 것의 의미 Freedom 中-



맞다. 나에게는 그 '이유'가 빠져 있었다. 나는 단지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서 돈을 원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회피가 목적이 되면, 회피 이후의 삶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돈은 단순히 탈출의 수단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 나는 왜 돈이 필요했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고 싶은가?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돈이 많으면 좋겠어' '얼마나?' '글쎄…'

'왜 돈이 많아야 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유롭게 뭐 하고 싶은데?' '회사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다랐고 그 질문은 다시 '나는 누구인가'로 흘러갔다.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했고,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무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구성하는 것이 '생각'만이 아님을,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임을 깨닫는 시간들이 있었다.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르고 나의 모습을 그렸지만, 그것이 진짜 '나'는 아니었다. 생각이 그리는 나의 모습은 때론 왜곡되었고, 때론 미화되었으며 어떨 때는 내가 아닌 듯 보이기도 했다.


그 생각들의 너머에, 그 아래엔, 생각에 의해 조작되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끊임없이 제멋대로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은 뇌의 잘못이 아니었다. 생각은 죄가 없었다. 나의 마음 상태에 따라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혹은 오랜 세월 만들어 온 내 마음의 모양에 따라 생각은 마음을 해석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한글은 Mind와 Heart를 모두 '마음'이라 부른다. 생각과 감정, 이성과 느낌이 모두 '마음'으로 엮이는 언어. 어쩌면 진짜 나란 존재는 그 모든 마음을 온전히 품었을 때 완성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며 당시의 메모장을 뒤적거리다 찾은 글이 있다.

- 마음 들여다보기

- 마음에게 말 걸기

- 마음과 대화하기

- 마음이 좋아하는 일 계속해 주기 (예: 엄마와 저녁 먹기)

- 온 마음 다해 감사하기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는 내 마음을 자주 외면했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과 다시 친해지는 일,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할 여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멀고도 긴 시간을 돌아왔지만, 서툴고 느리지만, 괜찮다.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생각을 지나 마음에 닿아가는 그 길을 걷고 있다. 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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