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세상과 나를 잇다
미국에 사는 조카가 여름방학이라고 한국에 들어왔다. 2년 만에 방문이라 놀 시간도 빠듯할 텐데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길래 같이 다녀오기로 했다. 아빠 직장을 따라 중학교 1학년, 그리 빠르지 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조카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했고,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간호사 실습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방학이 지나면 졸업 전까지 한국에 못 올 것 같다며, 한 달의 짧은 방문을 아쉬워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다고 했다. 훌쩍 커버린 조카가 기특하기도 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골에 가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가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시는 그 지역 유명 소금빵집에 들렀다. 휴가철의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기줄이 5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냥 갈까 하다가, 조카가 언제 또 먹어 볼 기회가 있을까 싶어 뙤약볕에서 20분 넘게 기다려 막 나온 소금빵을 받아 차에 타자마자 하나씩 먹었다.
“우와 고모 너무 맛있어요! 완전 겉바속촉이에요!”
그날따라 유난히 맛있는 소금빵에 연신 감탄하는 조카를 보니 기다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럭키비키네” 라는 나의 말에 조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럭키비키’는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스페인 유명 빵집에서 줄을 서다가 자기 앞에서 빵이 다 팔렸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새로운 빵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갓 나온 빵을 먹을 수 있겠네”라며 SNS에 ‘럭키한 비키(장원영의 영어 이름)’라고 적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영적 사고방식’이 좋아서 가끔 쓰는 표현이다.
예상보다 늦어진 도착 시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빵을 사려고 기다리면서 조금 허기가 생겼고, 기다리면서 기대감이 높아졌고, 빵은 훌륭할 정도로 적당히 따뜻하여 한 입 베어 문 순간 바사삭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버터향 입안을 가득 채웠다. 빵 하나로 엄청난 행복감을 맛보며 우리는 즐겁게 한 시간을 더 달렸고, 집에 도착하여 엄마는 손녀와 애틋한 상봉의 시간을 보낸 후 또다시 ‘맛있다’를 연발하며 빵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국 조카가 시골에 간다는 이야기에 미리 부모님 댁에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와 있던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냇가에서 놀고 있는데 아이들 갈아입을 옷가방을 두고 왔다며 가져다 달라고 했다. 엄마는 덤벙거리는 아들을 못마땅해했지만, 아빠 퇴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텃밭 옥수수를 몇 개 따 삶아서 드라이브도 할 겸 다 같이 가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길과 맑은 시골 풍경에 미국 조카는 오랜만에 보는 경치라며 신나 했고, 엄마는 맛있게 옥수수를 먹고는
“할머니 저 하나 더 먹을래요”
하는 조카에게 옥수수를 건네며 행복해하셨다. 30분을 달려 도착하니 초등학생 조카들은 깨끗한 물에서 다이빙도 하고 다슬기도 잡으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고모를 만나면 늘 허그를 해 주던 녀석들은 물에서 놀아 젖은 옷이라 안지도 못하고, 노느라 배가 고팠는지 소금빵을 맛있게 먹고는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투명하게 맑은 물속에 작은 민물고기들이 보였고, 조카들은 뒷다리만 나온 올챙이를 잡아 와서 보여 줬다가, 네 다리가 모두 나왔지만 아직 꼬리가 조금 남아 있는 개구리를 잡아 와서 보여 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집 앞에 있는 냇가나, 이젠 폐교가 된 작은 학교 앞의 냇가로 가 다슬기도 잡고 물놀이를 하며 여름을 보냈다. 가끔 차를 타고 나가 놀기 좋은 물가에 자리를 잡아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수박을 잘라먹기도 하고 밤에 전등을 켜고 다슬기를 잡으며 여름을 즐겼다. 그렇게 자란 동생은 여름만 되면 와이프에게는 자유의 시간을 주고, 아이들을 데려와 여기저기 물 좋은 동네를 다니며 아들 둘과 캠핑도 하고 물놀이를 했다. 또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실내 수영장이나 바다보다 계곡이나 물 좋은 시골에 가는 걸 더 좋아했다.
엄마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슬기를 잡으러 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미국 조카가 물속으로 들어오고 곧 엄마까지 합류했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에 들어가니 더위가 가셨다. 오후 2시, 아직 큰 다슬기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작은 아기 다슬기들이 물속의 돌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깊은 데까지는 들어가질 못하고 얕은 곳에서 다슬기가 숨어 있을 만한 돌들을 뒤집어 보았더니 역시나 한 두 마리씩 눈에 보였다. 채집의 여왕답게, 나는 순식간에 다슬기들을 한 손 가득 줍고는 조카들에게 자랑을 하고, 미국 조카에게 다슬기를 잡는 방법을 전수해 주며 여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물속에서의 한 시간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카에게 물었다.
“동생이 애들 옷 두고 가서 덕분에 우리까지 오랜만에 재밌었네, OO도 재밌었어?”
“이런 시골 풍경 보는 것도 미국에선 못 보고 다슬기 잡는 거도 오랜만이라 재밌었어요~ 삼촌이 옷 두고 가셔서 오히려 좋아~~”
“진짜 그렇지~ 지나고 보면 나쁜 일은 없어. 다 좋은 일이야”
‘오히려 좋아’ 럭키비키 밈이 작년에 유행이었다면 오히려 좋아는 그전에 유행했던 밈이었다. 둘 다 잘파(Z+Alpha) 세대의 신조어라고 하는데 긍정적 사고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라고도 하지만, 장원영이 유퀴즈에 나와 밝힌 것처럼, ‘자기 합리화가 아닌 일상 속 행복에 감사하는 사고방식’이라는 설명이 나에겐 더 와닿는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두 표현의 바탕에는 ‘감사함’이 깔려 있다.
‘상황이 나쁜데 어떻게 감사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상황에서, 혹은 거창한 성취를 얻었을 때만 감사하는 마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폭염 속 기다림의 끝에 만난 막 나온 소금빵처럼, 예상치 못한 동생의 심부름 덕분에 아름다운 시골 풍경 속 냇가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가족들과 추억을 소환한 것처럼, 잠시의 불편이 때로는 더 큰 기쁨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결국 감사란,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자리에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생겨난다.
그 시선이 바뀌면, 계획이 틀어진 하루도, 길이 막힌 순간도, 누군가의 깜빡 잊음마저도 뜻밖의 선물이 된다.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웃을 수 있는 하루가 쌓여, 인생은 조금 더 가볍고 따뜻해진다.
감사는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는 삶을 바꾼다. 그러니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풍경, 그리고 이 순간의 나 자신에게도 한 번 감사해 보자. 그 작은 감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날들이, 결국 내가 살아가는 삶의 온도를 정해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