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도 아닌 것이

죽기 전에 어떤 순간을 후회할까

by 하우주

워크숍이 끝나고 3월 중순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2월 말처럼 우르르 나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매주 한 두 명씩 퇴사자가 있었다. 사람은 부족하고, 업무는 쌓여가고,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또 조직개편을 할 것이라 했고, 부서이동과 함께 자리가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일 년에 두 번 이상씩 있는 조직개편과 자리 이동이라 모두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바뀐 게 하나 있었다. 대표가 요일을 정해 부서별로 업무 보고를 직접 받겠다고 했다. 출근하자마자 시작되는 부서별 업무 보고는 늘 그렇듯 질책과 욕설 뿐이었다. 때로는 점심시간이 넘어서까지 몇 시간씩 직원들을 일일이 혼내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걸 보며 사람들은 대표 체력이 정말 좋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직원들한테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서 힘들지 않을 거라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매주 하루씩, 부서별 업무 보고 시간이 다가오면 모두가 긴장했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가면 좋겠다…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 팀의 주간업무보고는 수요일 오전이다. 경영지원팀과 함께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각 팀의 막내 사원까지 대회의실에 모여 팀별로 지난주 업무와 이번 주 계획을 발표한다. 팀장님이 발표하고 나는 옆에서 자료를 넘기며 조용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 팀 차례가 됐다. 팀장님이 발표를 시작했다.

"지난주 업무 보고 드리겠습니다. A사 NDA 계약서 검토 완료, B사 구매 계약서 1차 검토 후 법무팀 전달…"

대표가 손을 들었다. 팀장님이 멈췄다.

"잠깐. 계약서 검토를 누가 했어?"

"김차장이 1차 검토하고 변호사님께 전달했습니다."

대표가 나를 봤다.

"김차장이? 왜?"

"네?"

"네가 계약서를 왜 검토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팀장님이 답을 하려고 하자 대표가 말을 끊었다.

“왜 김차장이 계약서를 검토해? 김차장이 대답해 봐”

“예전에 대표님께서 NDA랑 구매 계약서는 저희 팀에서 1차 검토하고 변호사님께 보내라고 하셔서…"

"내가? 내가 언제?"

"작년에…"

"작년? 작년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렇게 해?"

대표 목소리가 높아졌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각 부서에서 1차 하고 변호사한테 보내면 되지. 니가 변호사야? 뭣도 아닌 것이 왜 계약서를 검토해?"


뭣도 아닌 것이.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김차장 할 일이 없어? 한가해?"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앞으로는 각 부서에서 각자 하라 그래. 다음."

팀장님이 발표를 이어갔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PPT를 넘겼다.


뭣도 아닌 것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보고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손이 떨렸다.

분명히 대표가 시킨 일이었다. 작년 초, 변호사님이 바빠서 계약서 검토가 밀리니 혼자 다 할 수 없어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가로 누굴 뽑을 수는 없으니 법학 부전공을 하고, 다른 회사에서 법무팀 지원 업무를 했던 나에게 지원을 해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1차 검토라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사람 좋으신 변호사님의 부탁에 알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한다 못한다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시’가 내려왔고 따를 뿐이었다. 그래서 1년 넘게 그렇게 해왔다. 아무 문제 없이. 꼼꼼하게 챙길 사람이 없다기에 계약서 검토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한 내부 자료 취합도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차장님, 괜찮으세요?"

같이 보고에 들어갔던 경영지원팀 대리가 작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뭣도 아닌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왜 그 일을 하냐는 욕을 들었다. 매일 야근하며 남의 부서 일까지 했는데, 한가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보고가 끝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팀장님에게 말했다.

“식사하러 가시죠”

“김차장 괜찮아요? 본인이 시켜놓고 갑자기 왜 또 저런대”

“괜찮아요. 저런 변덕 어디 하루 이틀인가요 뭐…”


괜찮지 않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부당한 상황에서 내가 힘들어하면 지는 것 같았다. ‘뭣도 아닌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지만 지금 내가 화내거나 속상해하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그날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현아 언니는 예전 회사에서 만난 선배였다. 언니는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펫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 잘 나간다고 했다.

한 달 전에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을 했는데 서로 바빠서 미루고 있다가 언니가 회사 근처에서 미팅이 있다길래 끝나고 근처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의 백화점 안에 있는 한식집에서 만났다. 현아 언니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지혜야, 여기."

"언니, 잘 지냈어요?"

"그럭저럭. 너는?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 그래요?"

"응. 무슨 일 있어?"

웃으면서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다. 백화점까지 오는 동안에도 대표가 했던 얘기들이 계속 생각났다. 현아 언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밥 먼저 시키고 얘기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한지라 배가 고팠지만, 밥이 잘 넘어갈 것 같지도 않았다. 가급적 가벼운 걸로 시키고 싶었지만 메뉴는 떡갈비 정식 위주였다. 같은 걸로 두 개를 시키고 언니가 따라 준 물을 마셨다.


"회사가… 요즘 많이 힘들어요."

"왜? 무슨 일인데?"

나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퇴사 러시, 충원 없는 것, 워크숍,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 뭣도 아닌 것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아 언니가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그 회사 얘기 들으면서 참 엉망인 곳이라 생각했는데, 대표가 제일 문제였네."

"네."

"그 대표는 본인이 일 시켜놓고 뒤집고,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너무 말을 막 하네.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도 않고. “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안 나오고…”

목이 메었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 반상이 나왔다. 음식은 맛있었는데 많이 들어가진 않았다.

"지혜야."

"네."

"넌 그 회사 계속 다닐 거야?"

"… 모르겠어요. 이직을 해야 하나 생각은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나이도 있고."

"마흔이 뭐. 오히려 더 늦기 전에 이직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

"그럴까요… 여기 있다 보니까 점점 자신감도 없어지는 거 같아요. 언니처럼 능력 있어서 사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 있어서 사업하는 거 아냐 ㅎㅎ 그냥 하는 거야. 그런데 회사를 위해서 일한 만큼의 노력을 내 회사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좀 덜 억울하지."

“전 사업할 엄두도 못 내겠어요.”

“생각을 안 해 보니까 안 보이는 거야 ㅎㅎ”


현아 언니는 매번 내가 고민을 얘기할 때마다 그랬다. 막연한 두려움을 좀 떨쳐 버릴 필요가 있다고. 언니는 사는 게 쉬워 보였다. 아니, 결정을 하는 것이 쉬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는, 마음을 먹으면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다음 일을 했다. 그런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언니는 혼자니까…’라는 생각에 우리는 다르다 생각했다.


“언니 사업은 어때요?”

“그냥저냥, 먹고살 만큼 벌어. 유지는 되고 있어. 처음 1~2년이 좀 힘들더니, 3년 차 되니까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어.”

“언니 진짜 부럽다…”

“장단점이 있긴 하겠지만 나는 만족하고 살아. 그거면 된 거 같아 ㅎㅎ”

“언니 좋아 보여요.”

“그래?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언니는 안 불안해요? 회사는 그래도 안정적이지만 사업은 또 조금 다르잖아요.”

“회사가 안정적이야? ㅎㅎ 매달 월급 나올 때는 안정적이지만, 언제든 잘릴 수도 있고, 월급도 삭감될 수도 있고. 회사 나온 후에 보니까 회사가 가장 불안정한 곳이야 ㅎㅎ”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을 보며, 나는 왜 이 금액의 월급이 언제까지나 매달 들어올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까.

동일한 금액이 같은 날짜에 들어오는 게 언제까지일까?

“진짜… 그러네요…”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언니가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성준 씨도 잘 있지?”

“네 똑같아요, 일하고 야근하고 주말에 쉬고. 한동안 바빠서 저녁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둘 다 바쁘구나, 건강 잘 챙겨야겠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왠지 언니한테는 딩크족이 되기로 한 걸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언니, 저희 아이 안 낳기로 했어요.”

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네…"

"… 왜인지 물어봐도 돼?"

나는 잠시 멈췄다. 어디부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 회사 다니는 것도 힘들고, 아기 가져도 육아 휴직도 맘 편히 못 쓸 것 같고, 대출도 많이 남았고, 회사를 그만두자니 외벌이는 힘들 것 같고… 아이 낳으면 그 애도 이렇게 치열하고 삭막한 세상에 살아야 하잖아요 ㅎㅎ"

"음…"

"에휴… 모르겠어요. 낳지 말자고 성준 씨랑 얘기는 했는데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너 올해 몇 살이지?"

"마흔이요. 저 지금 낳아도 노산이에요 ㅎㅎ”

“만 나이로 하면 서른아홉 아냐? ㅎㅎ 그렇게 급히 마흔으로 안 넘어와도 돼 ㅎㅎ”

“저번에는 회사 인원 감축 얘기 나오면서, 저희 팀장님이 출산이 리스크라고 하더라고요.”

“와… 진짜 구시대적 발상이네. 근데 그 회사 분위기가 워낙 그렇긴 하다. “

“오늘도 아침 보고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대표가 저 자르려고 일부러 저러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부서별로 업무 보고 받으면서 정리할 사람들 고르고 있나 싶었어요.”

“너무 생각이 많을 필요는 없는데… 정황상 그런 생각 들 수도 있겠다.”

“자존심 상하고 모멸감 드는 거 별개로, 갑자기 회사 잘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리고 출산할 수도 있으니까 일찌감치 대표가 내보내려고 작정한 건가 싶고…”

“아이고… 생각이 많았구나… 종일 힘들었겠네.”


힘들었겠다는 그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났다. 입맛에 맞는 된장국을 한 숟가락 뜨려다가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현아 언니가 냅킨을 건넸다.

언니는 말없이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기만 했다. 한참을 눈물을 닦고 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 냅킨이 수북이 쌓였다. 그제야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쳐다볼 걸 생각하니 민망했다.

“지혜 오늘 눈물 젖은 밥 먹네. 빵을 먹었어야 했나 ㅎㅎ”


언니의 다정한 농담에 ‘훗’하고 웃음이 났다. 눈물을 쏟고 나니 조금 후련해진 것 같았다.

“다 울었어? 어디 가서 울지도 못했을 텐데 실컷 더 울지 그래.”

“ㅎㅎㅎ 다 울었어요. 이제 괜찮아요.”

“괜찮긴… 뭘 했다고 괜찮아. 안 괜찮아도 돼.”

언니는 나에게 ‘괜찮아 병’에 걸린 아이라고 했다. 같이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다. 내가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산다며, 중증이라며, 그냥 힘들다 하고, 도와달라 하고, 고맙다고 하라고. 그렇게 현아 언니 덕에 전 회사에서는 거절도 해 보고,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언니는 내가 진정이 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딩크는 양가 부모님도 전부 동의하신 거야?”

“아뇨, 지난 설에 엄마한테는 얘기했는데, 시댁에는 얘기 못했어요. 아직은 성준 씨랑 둘만 결정한 상태예요.”

“시댁에서 물어보시지 않아?”

“물어보시죠, 요즘은 나이 공격하시면서 좋은 소식 없냐 계속 물으세요.”

“난감하겠네, 어른들은 잘 이해 못 하시지.”

"네."



현아 언니가 잠시 창밖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있잖아, 결혼은 안 하더라도 애는 하나 낳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요즘 가끔 해."

"… 진짜요?"

"응. 후회까진 아닌데, 가끔 생각해. 내가 낳았으면 어땠을까."

"그래요?"

"응. 나는 원래 애를 별로 안 좋아해. 조카들은 조카들이라 이쁜 것 같고. 오히려 동물을 더 좋아하지.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애는 안 낳겠다 생각했었거든. 일하느라 바쁘고 결혼도 안 했고.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핑계였던 것 같기도 하고."

"…"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뜻밖이었다. 늘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언니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젠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어 ㅎㅎ”

심각하지 않게, 덤덤하게 현아 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지혜야."

현아 언니가 나를 똑바로 봤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애를 낳고 안 낳고는, 그건 너의 고유하고 소중한 권리야."

"권리요?"

"응. 네 권리. 아무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어. 시댁도, 친정도, 사회도."

"…"

"근데 그 권리를 외부 요소 때문에 결정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외부 요소요?"

"시댁에서 뭐라고 하니까 반발심에 안 낳겠다, 이런 거. 또는 주변에서 다들 낳으니까 나도 낳아야 하나, 이런 거. 혹은 세상이 무서워서 내 새끼를 이 험한 세상에 못 내놓겠다 이런 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정확히 내 얘기 같았다.

"그 애 입장에서는 세상이 험한 들 그걸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그걸 왜 부모님이 정했냐 할지도 모르지 하하.”

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낳든 안 낳든, 그건 네가 정말 원해서, 성준 씨가 정말 원해서 내리는 결정이면 좋을 것 같아. 남들이나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너희 둘만 생각한 결정이면 좋겠어."


현아 언니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나는 있잖아, 매일 매 순간 생각해. 죽기 전에 어떤 순간을 후회할까."

"…"

"뭔가 결정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 봐. 80살이 돼서 뒤돌아봤을 때, 죽기 직전에 이 선택을 후회할까? 안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나와요?"

"항상은 아니야. 근데 적어도 남 탓은 안 하게 돼. 내가 선택한 거니까. 회사 그만두고 사업 시작한 것도 그 이유가 제일 컸어. 부모님도 자주 못 뵙고, 내 시간도 가지지 않고 회사에 매인 걸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언니."

"응."

"고마워요."

"뭘. 밥이나 더 먹어."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성준이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일어나 가방을 받아줬다.

"왔어? 현아 누님 만났어?"

"응."

"어땠어?"

털썩, 성준 옆에 앉았다.

"… 좋았어. 오랜만에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

"다행이다. 아까 점심에 카톡 보고 안 좋은 일 있나 걱정했어."

"… 오늘 회사에서 좀 힘든 일이 있었어."

"뭔데?"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대표한테 들은 말. '뭣도 아닌 것이.'

성준 얼굴이 굳어졌다.

"그게 뭐야. 본인이 시킨 일인데 왜 그래."

"그러게."

"너무하다. 진짜."

"… 그래도 현아 언니 만나고 좀 나아졌어."

"다행이다."

성준이 내 어깨를 감쌌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줬다.

"많이 힘들었겠네."

"응."

"고생했어."

현아 언니와 나눈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침대에 누워 현아 언니 말을 생각했다.

'애 낳고 안 낳고, 그건 너의 고유하고 소중한 권리야.'

'그 권리를 외부 요소 때문에 결정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죽기 전에 어떤 순간을 후회할까.'


나는 뭘 후회할까.

안 낳은 걸 후회할까. 낳은 걸 후회할까.

시댁에서 뭐라고 해서, 친정에서 뭐라고 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힘드니까, 그 아이의 세상도 힘들 거라 지레 짐작해서… 그래서 결정한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해서 결정하는 것.

그게 뭘까.

아직 모르겠다.


조심히 손을 뻗어 핸드폰을 들고 현아 언니가 헤어지고 나서 보낸 카톡을 다시 봤다.

‘지혜야, 걱정이랑 불안을 조금은 내려놓아 봐.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없잖아? ㅎㅎ 그리고 좀 더 이기적이어도 되니까 무엇보다 너 자신을 아껴 주렴^^”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좀 더 이기적이어도 된다…

언니는 오늘도 티 나지 않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눈을 감았다. 내일도 출근이다.

하지만 오늘보다는 조금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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