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의 명절 나기

그래도 가야지

by 하우주

긴 설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첫날은 고향으로 출발하지 않고 하루 푹 쉬기로 했다. 명절 연휴 전은 항상 업무가 많았다. 우리야 휴일이지만 중국을 제외한 해외 거래처들은 쉬는 날이 아니기에, 그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았다. 나도 성준도 하루를 빼고는 2주 동안 계속 야근이었다. 연휴 직전 금요일까지 9시가 넘어 퇴근했지만 혹시 몰라 노트북을 챙겨 왔다. 휴일이라는 안내 메일을 다 보내 놓았지만, 이상하게 노트북을 안 가지고 간 연휴에는 꼭 뭔가 일이 터지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둘 다 알람도 없이 늦잠을 자고, 동네 브런치 맛집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켜 아침을 해결했다. 겨우 정신을 좀 차린 후 날은 춥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너저분한 집을 청소했다.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 정리를 하다가 명절을 지나고 오면 상할 것 같은 과일들을 깎아 요거트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장을 볼 땐 집에서 잘해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는데, 정작 주중에는 해 먹을 시간이 없고, 주말에는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많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보고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냉장고의 음식들을 처리하면서,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하고 매번 다짐하고, 마트에 가면 또다시 음식을 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 딱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계는 어느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짐 목록을 정리했다. 며칠씩 집을 비우려고 하면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하나씩 정리하지 않으면 뭔가 잊은 것 같고 놓친 것 같아 불안함이 커졌다. 집에 있어도 늘 마음이 바쁜 것 같았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 저녁을 차려 먹고 싱크대에 그릇들을 담가 두고는 아파트 옆 작은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얼마 전부터 식후 걷기가 당뇨를 예방한다며 서로에게 “밥 먹고 좀 걸어”라며 당부를 하기 시작했다. 마흔을 앞두니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많이 드는 것 같다. 말없이 성준의 손을 잡고 걸으며, ‘명절이고 뭐고 그냥 쭉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짐을 싸기 시작했다. 생각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의무감에 몸이 움직여지는 것 같다.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하루가 짧았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고 7시에 출발했다. 이번엔 친정에 먼저 가기로 했다. 명절 연휴에 친정으로 가려면 보통 4시간, 늦으면 5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시댁보다는 좀 가까운 편이다. 이번 연휴엔 설날이 연휴 끝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엄마는 설 당일에는 시댁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전화로 말했다. 늘 시댁 우선, 시댁 먼저인 엄마의 말에 짜증과 미안함이 올라오면서도 ‘그래 그게 마음은 편하지’ 하면서 엄마 의견대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운전석에 앉아 출발을 하며 성준이 말했다.

"길 많이 막히려나."

"뉴스에서 오늘 오후가 정점이래. 그래도 지금이 좀 낫겠지"

고속도로에 올라타자마자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빨간 불빛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정체 구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의 귀성길은 늘 이랬다. ‘집’이라는 단어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했다.


막히는 고속도로 중간에서 성준이 말했다.

"민준이가 설에 예비 신부 데려온대."

"아, 진짜? 인사드리는 거야?"

"응.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더라."

민준. 성준의 남동생. 올해 34살. 우리보다 여섯 살 어리다. 시댁이 있는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올해 결혼 예정이다. 상대도 같은 공무원이라고 했다.


"공무원 커플이면 안정적이겠다."

"그러게. 둘 다 칼퇴하고, 연금도 있고."

"부럽네."

나는 창밖을 봤다. 차들이 거북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민준이가 그러더라. 결혼하면 빨리 아기 갖고 싶대."

"…"

"부모님이 그 말 듣고 엄청 좋아하시더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만 봤다.

“공무원 부부들은 아이 셋씩 가진 사람들 꽤 있더라...”


무언가 더 방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내 주변에 아이 셋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안정’과 ‘여유’가 있었다.

‘여유가 되니까… 아이도 가지는 거지’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다 꺼내진 않았다.

빨리 아기 갖고 싶다,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아기를 안 갖기로 했다. 딩크.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도, 친정도, 아무도.



4시간이 조금 넘어 친정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길이 덜 막혔다.

"왔어?"

엄마가 현관에서 맞았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어, 왔어. 고생했어."

집은 아직 조용하다, 오빠네는 이번 설에는 안 온다고 했다. 명절마다 처가와 본가를 번갈아 가며 오기로 했다고 했다. 이번 설은 처가 쪽만 다녀온다고, 형제 카톡 방에 이미 얘기를 했었다.

"지민이네는 언제 온대??"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더라. 저녁때맞춰 오겠지."

"그렇구나."


오빠네가 이번에 안 오는 게 조금 아쉬웠다. 다른 명절에는 시댁에 갔다가 친정에 오면 오빠와 남동생은 이미 떠나고 없을 때가 많았다. 오빠도, 남동생도 어릴 때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애틋함이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니 뭔가 조금 소원해진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다들 명절마다 시댁, 처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가족이니까.



다음 날 저녁 무렵, 남동생 지민이네 가족이 도착했다. 남동생, 올케보다 먼저 뛰어 들어오는 두 명의 조카를 보고 부모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누나 왔네! 오~ 매형!"

"어, 왔어?"

큰 조카가 뛰어와서 안겼다.

"고모!"

"어머, 우리 서연이 또 컸네”

큰 조카 서연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큰 조카가 태어났을 때는 결혼 전이라 자주 보러 갔다. 만나면 항상 포옹을 해 주던 걸 기억하는 서연이는, 나를 보면 항상 두 팔을 벌려 뛰어온다.

뒤이어 둘째 서준이가 기다리다가 포옹을 하러 두 팔을 벌리고 온다.

“서준이도 잘 있었어?”

“응~고모”

아이들은 성준을 보고는 “안녕하세요, 고모부”하고 배꼽 인사를 한다. 성준이 활짝 웃었다. 눈빛에 사랑이 가득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올케는 아이들을 씻기러 가고, 아버지, 성준과 남동생은 거실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옆에서 그릇을 정리하던 엄마가 말했다.

"너희는 아이 계획 없어?"

시작이었다.

"…"

"이제 마흔인데."

대답을 하지 않고 세제로 닦은 그릇들을 물로 헹궈 그릇들을 설거지 건조대에 올려 두었다.

"지민이는 애들 있으니까 좋대. 애비가 되더니 좀 어른스러워지기도 했고."

"…"

"너희도 하나는 있어야지."

그릇을 내려놓았다. 짜증이 올라왔다.

"엄마, 회사도 힘들고, 대출 갚기도 빠듯해. 애 갖기가 쉬워?"

"그래도…"

"그래도 뭐. 애 낳으면 누가 키워? 육아휴직 쓰면 눈치 보이고, 복직하면 자리 없을 수도 있어. 맞벌이해도 대출 갚고 나면 여유롭진 않아."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가 잠시 멈췄다.

"… 그래도 나중에 후회해."

"후회 안 해."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날 봤다.

"… 안 낳게?"

"응."

“너희 둘이 정한 거야?”

“응, 그니까 더 말하지 마 엄마”

엄마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설거지를 마저 하고 거실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었다. 전, 나물, 된장찌개…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한 상 가득했다. 엄마가 새벽부터 준비하신 것들이었다. 일어나 보니 이미 엄마가 다 차려놓고 있었다.

“뭘 벌써 일어나.”

언제나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는 듯한 엄마의 말투다. 결혼을 하면 좀 마음을 놓으시려나 했는데 또 다른 걱정이 생기신 거겠지.

"많이 잤어"

"맨날 피곤할 텐데, 푹 자지…"

“어제도 푹 쉬었잖아, 친정이 좋네 ㅎㅎ”

어색하게 웃으며 아침상을 차렸다. 조카들은 밥도 꼭꼭 씹어 잘 먹었다. 성준은 아이들에게 눈을 못 떼고 “우와~ 잘 먹네~”를 연발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올케가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기에 짐을 쌌다. 엄마가 이것저것 반찬이며, 시댁에 드리라면서 과일 세트와 동네에서 샀다는 토종꿀을 싸 주신다.

“뭘 또 이런 걸 샀어, 토종꿀 비싸다며.”

“갖다 드려, 진짜 토종꿀 구하기 힘들잖아.”

시댁에 언제나 더 잘해드리고 싶어 하는 엄마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출발하기 전, 부모님께 용돈 봉투를 건네고 조카들에게도 세뱃돈을 줬다. 5만 원씩 넣은 봉투를 성준이 건네자 아이들은 또 “고맙습니다, 고모부” 하며 배꼽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돈을 꺼내 들고 자랑을 하자 남동생이 눈치를 봤다.

"누나, 매형, 애들 아직 어린데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야?"

"괜찮아. 자주 주지도 못하는데 뭐."

세뱃돈으로 뭘 할 거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거실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서연이, 서준이 잘 놀다가 가. 고모랑 또 만나."

"고모, 고모부 안녕~"


인사를 하고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엄마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고 서둘러 차에 탔다.

“갈게요, 엄마 전화할게”



시댁까지는 3시간. 길이 비교적 한산해 막힌 길 없이 도착했다.

"어서 와라. 오느라 고생했어."

시아버지가 현관에서 맞아주셨다.

"많이 막혔어?"

"아니요, 오늘은 괜찮았어요. 지혜네 집에서 오는 길은 안 막히네요"

거실에 들어서니 민준이 있었다. 옆에 예비 신부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형, 형수님! 오랜만이에요."

"어, 민준아."

"여기 수빈이예요. 올해 결혼할 사람이요."

소개를 받은 수빈이라는 여자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수빈입니다."

예의 바르고, 차분해 보였다. 나보다 여섯 살 어리니까 서른넷. 살짝 웃는 미소가 참 예뻤다.

"반가워요. 잘 됐네, 축하해요."

과일을 깎아 주방에서 나오시는 시어머니 표정이 환하셨다.

"왔니?”

“네, 어머님”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왔어?”

“부모님이 갖다 드리라고 싸 주셨어요.”

“어머나 매번 뭘 보내주시고~ 감사해서 어쩌니. 감사하다고 꼭 전해 드려줘”

“네, 어머님”

“수빈이도 공무원이야. 둘이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는대."

"좋으시겠어요."

"그러게. 부럽지?"

나는 웃기만 했다.


인사를 나누고 짧게 다과를 먹고는 민준은 예비 신부와 함께 나갔다. 결혼 전이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러 약속이 꽉 차 있다고 했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민준이는 결혼하면 바로 아기 가질 거래."

"아, 네…"

"수빈이도 빨리 갖고 싶대. 요즘 젊은 애들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기특하지."

감자를 깎던 손이 멈췄다.

"지혜도 이제 슬슬… 올해 마흔이잖아."

"…"

"나이 더 먹으면 힘들어. 몸도 그렇고."

"네, 생각하고 있어요."

매번 했던 대답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엄마한테는 솔직하게 말했는데, 시어머니한테는 말이 안 나왔다.


설날 아침, 아침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가까이 사는 성준의 사촌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를 하러 왔다.

"안녕하세요, 형, 형수님!"

"어, 왔어?"

다섯 살, 세 살. 두 아이가 거실을 뛰어다녔다. 시어머니 표정이 더 환해지셨다.

"우리 강아지들 왔어? 할머니한테 와 봐."

아이들이 시어머니 품에 안겼다. 시아버지도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역시 애들이 있으니까 집이 환해."

그 말이 나를 향한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지혜야, 애들 예쁘지?"

"네, 예뻐요."

"너희도 빨리 하나 낳아. 응?"

성준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시어머님께 대답했다.

"네, 생각하고 있어요."



밤.

성준과 방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힘들어?"

"조금"

"나도"

"성준 씨는 왜 힘들어 ㅎㅎ…"

"그러게, 마음이 편치 않네"

"엄마한테는 말했어. 안 낳을 거라고."

"… 진짜?"

"응. 설거지 같이 하다가 또 얘기하길래… 그냥 말해버렸어."

"뭐라셔?"

"그래도 나중에 후회한대."

성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

"후회하려나… 성준 씨는 조카들 볼 때마다 눈에서 꿀 떨어지던데? ㅎㅎ"

“내가 그랬어?”

“그래 보였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해”


누구에게도 말 못 한 복잡한 심경을 성준에게 말했다. 성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먹고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시어머니도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주셨다.

"이거 가져가. 반찬이랑 떡이랑."

"감사합니다, 어머니."

“몸 관리 잘하고, 응?”

“네”

“좋은 소식 있겠지 올해는”

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네비를 켜니 5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트렁크에는 엄마와 시어머니가 싸 주신 반찬들이 가득했다.


"이번 명절도 끝났네."

"응."

"힘들었지?"

"그렇지 뭐”

성준이 운전대를 잡고 말했다.

“우리도 이번 추석엔 여행 갈까?”

그냥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씀이 고마웠다.

“나는 그래도 아직은 부모님 뵈러 가는 게 좋아, 오가는 길이 힘들어도.. 난 좀 촌스럽나 봐 ㅎㅎ”

명절에 가기 전의 설렘과 두려움, 가족들을 만나서의 그 시끌벅적함이 나는 좋았다. 어쩌면 서로 배려해 주시는 양가 부모님 덕에, 좀 더 명절 나기가 수월한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말하길 잘한 것 같아."

"… 그래?"

"응.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잖아. 어머님, 아버님께도 말씀드려야 할 텐데…"

"괜찮아. 천천히 하자."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막히기 시작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내년에도 또 이 고생하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가야지."

"응. 가야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우리는 그렇게 매번 집으로 간다.

다음 명절에는 아이를 안 갖기로 했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을까, 그 사이 또 몇 번의 전화를 받고 좋은 소식을 물어보실까? 다음 주 출근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할까? 생각은 쉼 없이 이어졌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 명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 @kimchajang.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