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이 올라도 동결, 매출이 내려도 동결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입김이 났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사람들 대부분이 롱패딩을 입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게 입은 옷들이 다들 비슷하다. 표정은 더 비슷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지쳐 보이거나 피곤해 보이거나. 정말 사람들의 표정이 그런 건지, 나의 마음이 투영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올겨울은 유난히 추위가 빨리 온 것 같다.
‘하긴... 벌써 12월이잖아’
그 사이 버스가 왔다. 이미 버스 안은 사람들로 절반은 차 있었다. 가끔 앉아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버스를 탄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미 이곳도 외곽인데, 사람들은 어디까지 더 들어가 살고 있는 걸까. 깊은 산속 옹달샘이란 동요에 나오는 그 옹달샘은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창밖으로 거리가 지나갔다. 지하철 역이 가까워 오자 백화점 주변에 크리스마스트리, 아침엔 꺼진 조명들이 스쳐 지나간다. 저녁 퇴근 시간이 되면 이 조명들은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사람들 표정도 밝을 것이다. 연말이니까. 곧 크리스마스니까. 선물을 사고, 약속을 잡고… 예전처럼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12월은 들뜬 계절이다.
나만 무거웠다.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생각했다. 올해도 끝나간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마흔이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오후 3시.
컴퓨터 오른쪽 하단에 알림이 떴다. 경영지원팀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연봉계약서 안내의 건'
사무실 여기저기서 ‘띠링’ 알림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안 꺼놓은 사람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들 조용히 메일을 열어보고 있을 거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사무실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나도 메일을 열었다. 내년 연봉 계약을 진행한다는 간단한 내용과 함께 연봉 계약서, 비밀유지 계약서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연봉 계약서를 열고 숫자를 확인했다. 작년과 동일했다. 동결. 2년 연속 동결이었다.
조용하던 사무실에 약속이라도 한 듯 짧은 한숨과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담배나 피우러 가자”
누군가의 한 마디에 남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전에는 담배를 피우러 간다면서 몇 십 분씩 자리를 비우는 남자 직원들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담배 피운다는 핑계로 근무 시간을 몇 십 분씩 까먹고,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 험담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여전히 그 생각은 비슷했다.
그러나 어느 날 팀장 대신 들어간 부서장 회의에서 기회를 잡았다는 듯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괴롭히는 S전무에게 고스란히 당한 후 나는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김 차장도 담배 피우러 왔어? 회의 시간에 고생했다 ㅎㅎ”
같이 회의를 했던 옆 팀 팀장님의 한 마디를 듣자 왈칵 눈물이 나려 했다. 옥상 한 귀퉁이에 한참을 앉아 음악을 듣다가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렇게 담배 피울 때가 아니면 언제 한숨이라도 편히 쉬겠어’
평생 담배를 끊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문득 떠올랐다. 아주 조금은, 담배를 피우는 그들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작년에는 회사의 매출이 회사 설립 이래 최고라고 했다. 사상 최고 매출 어쩌고, 한동안 들뜬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12월 연봉 계약서의 금액은 대부분 동결이었다. 매출은 높았지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었던 신사업을 위한 공장을 사느라 영업이익은 마이너스가 예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동결.
올해는 매출이 작년보다 줄었다. 그래서 또 동결.
매출이 올라도 동결. 매출이 내려도 동결. 그럼 대체 언제 오르는 건데? 매출이 올랐던 작년에는 대표를 포함한 몇 명의 임원들만 성과급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만의 잔치…
나는 아무 감정 없이 메일을 닫았다. 오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다. 이 회사에 그런 기대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후에 첨부파일을 하나씩 열어 출력을 하고 사인을 해서 경영지원팀 팀장에게 가져다줬다.
"연봉계약서 여기 두면 되죠?"
"네."
면담을 신청해 온 직원들이 많다며 경영지원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바쁘시겠네요. 수고하세요."
의미 없는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뻔하지. 승진한 사람들 찔끔 올려주고, 나머지는 다 동결이겠지.'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 얼마 올랐어?"
"동결이지 뭐. 너는?"
"나도 동결."
"우리 팀 다 동결이래."
"근데 국내 영업팀 K대리 알아? 걔 삭감당했대."
"삭감? 진짜? 삭감이 있어?"
"응. 인사고과 D 맞아서."
"헐… 그럼 다른 팀도 삭감이 있는 거야?"
"그런 것 같아. 해외 영업팀 H과장도 삭감당했다던데."
H과장. 숟가락이 멈췄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H과장. 작년에 결혼했고, 아내가 임신 중이라고 했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식판에 밥을 반 이상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을 남긴지라 아메리카노가 아닌 바닐라 라떼를 한 잔 사서 자리로 돌아왔다. 단 게 필요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데 카톡이 왔다. H과장이었다.
‘차장님, 연봉 계약서 받으셨어요?’
‘네, 받았어요. 사인해서 냈어요. 동결이더라고요, 기대도 안 했어요.’
‘차장님.. 저.. 연봉 삭감 당했습니다.‘
점심때 들은 소문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깎였어요?’
‘10% 깎여서 왔습니다.’
‘정말요? 경영지원팀에 얘기해 봤어요? 왜 삭감이 됐대요?’
‘경영지원팀장한테 물어봤는데, 팀 실적 달성 못 한 것 때문에 좀 깎이고, 인사평가 점수가 안 좋아서 또 깎였다고 하더라고요.’
‘팀 실적 달성 못 한 걸 왜 H과장 연봉에서 까요? 이번에 부서장급들은 전부 동결이라고 들었는데?’
‘모르겠어요. 부서장들은 다 동결이고, 팀원들 중에 인사고과 D 맞은 사람들이 다 때려 맞은 것 같아요.’
머리가 띵해졌다.
‘말도 안 되지.. 팀 실적 못 채운 팀장은 동결이고 팀원이 왜 그걸 다 감당해요? 인사고과도 팀장 마음대로인데…’
‘휴.. 모르겠습니다. 집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직을 알아봐야 할지…’
‘어휴… 정말 너무하네요…‘
“와이프 임신 중이라 스트레스 주기 싫어서 얘기 안 하고 싶은데… 근데 숨길 수도 없고.‘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처자식 있는 사람 연봉을 그렇게나 깎으면 어떡해요?’
‘차장님은 동결이라도 됐으니 다행이에요. 저는.. 진짜 어떡하죠.’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해도 거짓말 같았다.
‘힘내요…라는 말밖에 못 하겠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카톡을 닫고 멍하니 모니터를 봤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처럼 자욱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줄었지만, 역성장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연봉 삭감이라니. 부서장들은 동결인데 팀원들만 삭감이라니. 팀 실적 못 채운 책임을 왜 팀원이 지는 건데. 그럴 거면 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기는 거지? 권리는 있고 의무는 없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다른 곳이랑 다르다…라는 말들로 아무리 포장을 해도 이건 그냥 나쁜 거였다.
문득 작년 초가 떠올랐다. 부서 이동 전, J이사가 나에게 했던 말.
"김 차장, 인사고과는 내가 평가해요."
그 말투. 협박 같았다. 아니, 협박이었다. 만약 내가 그 부서에 그대로 있었다면? 분명히 J이사가 인사평가를 나쁘게 줬을 거다. 나도 H과장처럼 연봉 삭감 대상이 됐을 거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었다.
퇴근 무렵, 대학 동기 단톡방에 메시지가 20개가 넘게 와 있었다.
’ 얘들아~ 송년회 하자!‘
언제나 모임을 주도하는 민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말을 꺼냈다.
'좋아 좋아!'
'오랜만에 다 모이자!'
민지는 대기업에 다녔다. 연봉도 높고, 성과급도 빵빵하게 나오는 그런 회사.
'장소는 내가 예약할게. 청담동에 요즘 핫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때? 분위기 진짜 좋대! 날짜만 정해 보자'
청담동 이탈리안. 정확히는 몰라도 꽤나 비싼 곳이겠지.
'우와 좋다!'
'나도 거기 가 보고 싶었어!'
다들 신난 것 같았다. 민지가 또 카톡을 보냈다.
'ㅋㅋㅋ 나 내년 성과급 많이 받을 것 같아서 기분 좋아~ 내가 쏠게!'
'헐 대박 얼마 나올 것 같은데?'
'300% ㅋㅋㅋ'
300%.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리 회사 성과급은 0%였다. 아니, 성과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동결도 감사해야 하는 회사. 삭감 안 당한 게 다행인 회사.
'와 부럽다~ 민지 짱!'
나도 뭔가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ㅋㅋ 축하해 민지야'
그게 전부였다. 입력하고 보내기를 누르는 손가락이 무거웠다.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아침에 본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빨강, 초록, 금색. 반짝반짝.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성준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왔어?”
“응”
겉옷을 벗고 옆에 앉았다.
"나 내년에도 연봉 동결이야."
"또?"
"응. 작년에 이어서 2년 연속."
성준이 한숨을 쉬었다.
"물가는 매년 오르는데."
"그러게."
"성과급은?"
"당연히 없지."
성준도 올해 연봉이 동결됐다고 했다. 중견기업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동결이었다.
"근데 있잖아."
"응?"
"예전에 같이 일했던 H과장 있잖아. 연봉 삭감 당했대."
"삭감? 회사가 그렇게 해도 돼?"
"했대. 한 달치 월급 넘게 깎였대."
성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H과장 작년에 결혼했거든. 아내가 임신 중이래."
“…”
"집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대."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대학 동기들 송년회 한대."
"가?"
"… 민지가 장소 잡는데, 청담동에 새로 생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래."
"비싸겠네."
"민지가 쏜대. 성과급 300% 나온대."
성준이 피식 웃었다. 웃는 건지 한숨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대기업은 다르네."
"응."
"가기 싫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 가야지. 안 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축하해야 할 자리에서 나만 초라해질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잠이 오질 않았다.
2년 연속 연봉 동결. 성과급 0원. 그런데 회사는 직원들 연봉을 삭감하고 있다. 매년 오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연봉 동결이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인데. 벤더인 중소기업들에게는 분기마다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대기업을 다니는 민지는 성과급 300%. 중소기업을 다니는 나는 동결에 감사해야 한다.
삭감 안 당한 게 어디야.
그게 위로라고.
창 밖 크리스마스 캐럴이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파트 옆 상가에서 틀어놓은 건지,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건지.
즐거운 성탄 되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 @kimchajang.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