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인데 아직이요?
문을 열자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현관 한 편에 깔끔하게 정리된 커플 크록스가 눈에 들어왔다. 신발을 최대한 가지런히 벗으려고 했지만 발이 부은 탓인지 단화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신발장에 기대어 신발을 벗었다. 아침에는 발에 잘 맞았던 신발은 퇴근할 때 즈음이면 발에 꽉 맞았다. 신발을 벗자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발로 툭툭 신발을 정리해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집안, 성준은 오늘 야근이라고 했다. 겉옷을 벗고 거실의 소파에 털썩 앉았다가 다리를 올려 반듯이 누웠다. 나라는 사람과 분리되지 않고 마치 하나인 것 같은, 내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성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자고 있었어?”
“응... 잠들었네”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아서 걱정했어”
“그랬어? 미안...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
그제야 겉옷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성준의 부재중 전화와 카톡, 아파트 대출 원금과 이자 납입일이 다가온다는 안내 카톡이 와 있었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어김없이 다가오는 친절한 카톡. 나의 홈스윗홈은 이 카톡이 올 때마다 부담이자 족쇄로 변한다.
성준도 옆에 같이 앉는다.
“저녁은?”
“안 먹었어. 밥 생각도 없네... 성준 씨는?”
“난 야근하기 전에 회사 식당에서 먹었어.”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이 성준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전화하셨더라.”
“…뭐라셨어?”
“매번 하시는 이야기 똑같지 머…”
“응…”
“근데 이번엔 나이 공격도 하시던데?”
나는 얕게 웃었다. 성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내년이면 마흔이라고 하시더라”
성준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노력한다고 했지 뭐. 달리 뭐라고 하겠어…”
“……잘했어…… 간단히 샐러드라도 해줄까?”
“아냐, 내가 간단히 차려먹을게”
우리는 이 대화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서로를 지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때론 서로 눈을 질끈 감고 상황을 피하는 것 또한 관계를 지키는 괜찮은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밤은 깊어갔고, 침묵은 더욱더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여전한 무거움을 등에 단 채 출근한 다음 날, 부서별로 아침 회의를 마친 10시 즈음, 다른 팀 수진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오늘 점심에 시간 돼요? 시간 되시면 점심 같이 먹을까요?”
수진이는 나보다 다섯 살 어렸지만, 같은 시기에 입사하여 함께 OJT를 하며 알게 되었다. 부서는 달랐지만 수진이 적극적으로 ‘더 오래 직장생활을 한 언니’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수진이도 나도 이 회사 내부 사정을 알면서 각자의 어려움을 더 많이 이해해 줄 누군가는 필요했기에 우리는 종종 점심을 함께 하며 회사 흉을 보거나, 부서에서 겪는 일을 이야기하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최근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닌다고 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래, 어디서 볼까?'
'한 블록 뒤에 있는 순대국밥 어때요?'
12시가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수진은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블록을 걷는 동안 웬일인지 수진은 조용했다. 식당에 들어가며 순대국밥을 시키고 빈자리에 마주 앉아 테이블 위에 티슈를 깔고 서로 수저를 놓아줬다.
"무슨 일이야?"
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언니, 저 이직 안 하기로 했어요."
"어? 왜? 저번에 면접 잘 봤다며."
"잘 봤어요. 연봉도 300 정도 올려줄 수 있대요."
"그럼 가야지. 왜 안 가?"
"저 내년 봄에 결혼하잖아요."
"응."
"회사 옮기자마자 결혼하면… 아무래도 좀 그럴 거 같아서요."
"뭐가?"
"눈치 보이잖아요. 새 회사에서."
그 사이 펄펄 끓는 순대국밥이 나왔다. 연기에 수진의 얼굴이 순간 가려졌다. 숟가락으로 국밥을 휘휘 젓는 수진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회사 옮기는 거랑 결혼하는 거랑."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회사 옮기고 4개월 만에 결혼했거든요. 청첩장 돌렸는데, 같은 팀에서 축의금 낸 사람이 한 명이래요."
"… 진짜?"
"네. 1년은 있어야 축의금 받을 수 있대요. 그전에 결혼하면 그냥 혼자 하는 거예요."
수진이가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냥 여기 있으려고요. 저도 그동안 사우회비 낸 것도 아까운데 한 번은 받아먹어야죠. 내년에 결혼하고, 아기 생기면 육아휴직 쓰고, 그다음에 생각하려고요. 결혼준비한다고 바쁠 텐데 새 회사 적응하는 것도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
"언니, 저 이상한 거 아니죠?"
"아니. 이상한 거 아니야."
이상한 건 수진이 아니었다. 이 상황이 이상한 거였다.
밖의 사람들은 결혼, 임신 등등이 대단한 축복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 안에 사는 우리는 이직도 결혼에 맞춰야 하고, 결혼도 회사 눈치 봐야 하고, 육아휴직은 퇴사의 다른 말이다.
뜨거운 순대국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커피를 한 잔씩 사 들고 회사에 들어와 자리로 돌아오니 12시 55분이었다. 책상 서랍에서 칫솔통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서둘러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데, 문득 4년 전 생각이 났다.
4년 전. 이 회사에 처음 면접 보러 왔던 날.
면접실.
경력사원 지원자가 준비해 와야 하는 PPT 발표를 끝내고 대표가 내 이력서를 보며 말했다.
"김지혜 씨, 서른다섯 살이네요."
"네."
"아직 미혼이시고."
"…네."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 말투에 이미 판단이 들어 있었다. '서른다섯에 아직 미혼이라고?'
대표가 이력서를 탁 내려놓았다.
"남자친구는 있어요?"
"…네, 있습니다."
"결혼 계획은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설마 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진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왔다.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건가라는 건 나중의 문제였다. 혹시나 하고 연습해 왔던 대답을 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아직?"
대표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른다섯인데 아직이요?"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연출되고 있었다. 결혼 계획이 있다고 하면 '임신할 거 아니냐'라고 할 것 같고, 없다고 하면 '왜 없냐'라고 물을 것 같았다. 어떻게 대답해도 함정이었다.
"당분간은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게 내가 준비한 최선의 대답이었다.
대표가 피식 웃었다.
"술은 잘 마셔요?"
"…네?"
"마케팅 부서가 고객사 만날 때도 있을 텐데 술자리도 때론 참석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미 경험해 봤지만, 중소기업의 마케팅 부서는 기획부터 영업까지, 뭐든 다 하는 부서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투였다. 주량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표정이 어떨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마십니다."
"적당히?"
"네."
대표가 다시 이력서를 들여다봤다.
"경력은 괜찮은데… 이직이 좀 잦네요."
"네…"
"왜 그렇게 옮겨 다녔어요?"
나는 대답했다.
“회사 사정으로 인한 이직도 있었지만, 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싶어서 여러 번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전 회사를 흉보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면접관들이 가장 먼저 거르는 사람이 퇴사 사유가 이전 회사 탓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던가. 그렇다고 나의 부족이라고 말할 것도 아니란다. 언제나 정답은 성장과 발전이었다.
대표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나가봐도 돼요."
그게 끝이었다. 일주일을 꼬박 준비한 PPT 내용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면접실을 나왔다. 대기하던 다른 면접자가 물었다.
"어땠어요?"
"…글쎄요."
“압박면접 스타일이에요?”
“그런 것 같네요.”
그간 내가 겪어 본 중소기업 대표님들의 로망은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대기업에서 하는 건 복지나 급여를 제외하고 ‘통제’를 할 수 있는 범위라면 다 따라 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언제나 유행 지난 대기업의 문화를 뒤늦게 따라 하거나 이상하게 해석해서 회사에 적용하는 거였다.
10여 년 전쯤 대기업에서 유행했던 압박 면접은, 중소기업으로 넘어오면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하여 말문이 막히는 면접 스타일로 변했다. 이제 더 이상 대기업들은 면접에서 업무나 능력과 관련 없는 질문들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중소기업이었다. 자수성가한 대표님의 왕국은, 그들만의 규칙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했다. 대표 마음대로, 기분대로였다.
회사 사옥 건물을 나서자마자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면접 끝났어?"
"응."
"어땠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혼 계획 있냐고 물어보더라."
"… 뭐?"
"서른다섯인데 아직 미혼이냐고. 남자친구 있냐고. 술은 잘 마시냐고."
"그게 면접 질문이야?"
"대표가 삐딱하게 앉아서... 준비해 간 PPT 자료는 하나도 안 물어보고 그런 것만 물어보더라."
성준은 한참 말이 없었다.
"기분 나빴겠다."
"응. 근데 뭐… 처음 겪는 일도 아닌걸... 익숙해"
익숙하다고 말하면서도 씁쓸했다. 이게 익숙해져 버린 내가 싫었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고생했는데 맛있는 거 사줄게"
"응."
전화를 끊고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가을바람이 차가웠다.
'떨어졌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떨어지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후.
회사를 소개해 준 선배가 카톡을 보내왔다.
'대표님이 맘에 들어하셨대. 팀장으로 바로 채용하자고 했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 질문들이 '맘에 드는' 면접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예전 함께 일했던 상사분이 소개해 준 대기업은 결국 떨어진 것 같았다. 드디어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을 해 보는 걸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본 후 나는 한동안 들떠 있었다. 그러나 2주가 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금 직장은 회사를 물려받을 대표 아들의 갑질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구매팀장의 자리를 꿰찬 2세는 걸핏하면 프로젝트에 필요한 구매품을 안 사줄 거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고객사와 약속한 프로젝트의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된 후 나는 2세를 찾아가 따졌다. 대화가 통하질 않았다.
“당신이 받을 회사 키워주겠다는데 왜 방해를 하냐고! 니 거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빨리 이직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면접 질문들이 더 불편했다. 면접은 내 업무 능력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했으니까. 그런 그날 나는 업무가 아니라, 나이와 결혼 등 ‘내 삶’을 평가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 찝찝함이 두고두고 남았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수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수진아, 점심 잘 먹었어. 네 선택 응원해.'
'감사해요 언니 ㅠㅠ'
'근데 있잖아.'
'네?'
'우리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보낸 직후에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무거운 질문이었다. 카톡의 숫자 1은 사라졌는데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다 수진이 답장을 보내왔다.
'모르겠어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4년 전, 면접에서 대표는 물었다.
"결혼 계획 있어요?"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 아이를 안 낳기로 했다. '임신 가능성'이 리스크가 되는 회사에서, 나는 매일 내 자리를 증명하며 산다.
그때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그 질문이 제 업무 능력이랑 무슨 상관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4년 전에도, 지금도.
모니터를 다시 봤다. 오후 업무가 쌓여 있었다.
나는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 @kimchajang.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