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은 언제가 리스크가 아닌 거예요?
"이 정글 같은 세상에, 내 아이를 초대하고 싶지 않아."
내 말이 끝나고 식탁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성준은 내 손을 잡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결혼한 지 3년.
아이 이야기는 늘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결혼 전에는 막연히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1년 차에는 '조금 있다가'였다. 2년 차에는 '지금은 아닌 것 같아'가 됐다. 그리고 3년 차인 지금.
'아예 안 낳으면 어떨까'가 되었다.
성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갑자기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지?"
"응. 계속 생각했어."
"얼마나?"
"한 1년?"
성준이 손을 놓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화가 난 건지, 실망한 건지, 아니면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나도…"
"응?"
"나도 생각은 했어."
나는 성준을 바라보았다.
"진짜?"
"응. 지혜 너 회사에서 당하는 거 보면서. 애 낳으면 어떻게 되나, 그런 생각."
성준의 회사는 그나마 중견기업이라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는 나았다. 매출이 조금 더 크다는 것뿐, 중견기업이라고 그 안에서의 분위기는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최소한 대기업에 준하는 공식적인 ‘복지’의 형식은 갖추어야만 했다. 육아 휴직이 이직이나 퇴사의 중간 단계로 이용되는 경우는 많다고 하지만, 남자 직원들 중에 육아 휴직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은' 것과 '좋은' 것은 달랐다. 성준도 매일 야근에 시달렸고, 주말 출근도 잦았다. 승진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지만, 그건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을 떠안으라는 뜻이기도 했다.
"근데 지혜야."
"응."
"결정하면… 돌이킬 수 없어."
"알아."
"후회 안 해?"
나는 잠시 생각했다. 후회. 그 단어의 무게.
"모르겠어. 솔직히."
"…"
"근데 있잖아. 나 오늘 의자 차이면서 생각했어."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런 데서 일하면서 애를 어떻게 키워. 육아휴직 쓰면 일단 노트북이고 뭐고 다 반납하면서 퇴사하는 걸로 알고, 설사 낳아 키운다 한들 아이 아파서 일찍 가면 눈치 받고, 칼퇴근하면 찍히고. 그렇게 키운 애가 크면? 똑같은 지옥에 출근하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 애 낳아도 누가 봐줄 수도 없잖아. 외벌이 하면 빠듯하고.."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
성준이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알아. 나도 무서워."
"그래서 안 낳자는 거야?"
"아니. 네가 무서운 거 안다고."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된장찌개는 식어가고, 맥주는 미지근해졌다.
성준이 먼저 말했다.
"일단… 우리끼리 정하자.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응."
"천천히 생각하면서. 정말 이게 맞는지."
"응."
"근데 지혜야."
"응?"
"나는 네 편이야. 뭘 결정하든."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아까 회사에서는 괜찮았는데. 의자를 차였을 때도, S전무에게 대들었을 때도 안 났는데. 남편이 내 편이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준이 일어나 내 옆으로 와 나를 안았다. 적막 속에서 나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우리의 딩크 선언서는 눈물로 서명되었다.
다음 날 출근길.
어제 일이 꿈만 같았다. 의자를 발로 차인 것도, 남편과 아이를 안 낳기로 한 것도. 복잡한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중심을 붙잡고 서 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아, 어제 일 때문이구나. S전무에게 대든 김차장. 업무 공유는 느리지만 이런 소문은 참 빨랐다.
내 자리에 앉자마자 팀장이 다가왔다.
"김 차장, 잠깐."
회의실로 불려 갔다. 팀장은 문을 닫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제 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사과는 나한테 할 게 아니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도 알 것이다. 내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위와 아래가 중요한 곳.
"일단 조심해요. 요즘 분위기도 안 좋은데."
"무슨 분위기요?"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인원 조정 이야기 나와요. 아직 확정은 아닌데."
가슴에 또다시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저도 포함이에요?"
"몰라요. 근데 김 차장."
"네."
"기혼이고 아기 계획도 있을 거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나도 알아요, 상관없어야 하는 거. 근데 위에서는 달리 보는 거 김차장도 알잖아요."
팀장이 말을 이었다.
"회사 힘들다고 직원들 쪼다 보니.. 임신 가능성이 리스크래요. 위에서 그렇게 본다고요."
리스크.
임신 가능성이 리스크.
나는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팀장님, 저 임신 계획 없어요."
"그건 나도 아는데, 위에서는 모르잖아요."
"그럼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간단해요? 증명할 수 있어요?"
증명.
아이를 안 낳겠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각서라도 쓰라는 건가?
가슴에 밀려왔던 서늘한 바람이 아랫배까지 굼실거리며 내려가 싸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팀장의 잘못이 아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팀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팀장님.. 여자 미혼은 결혼할 수도 있으니까 리스크고 여자 기혼은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 리스크예요? 여직원은 그럼 언제가 리스크가 아닌 거예요?”
“…”
긴 침묵이 이어졌다. 숨이 막힐 듯 다시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 침묵과 침잠을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팀장은 대답이 없었다.
“나가봐도 될까요?”
“네 그래요”
나는 회의실을 나왔다. 다리가 풀렸다. 자리에 돌아와 앉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임신 가능성이 리스크.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며 뉴스에서는 연일 떠들어 대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임신이 리스크란다. 낳으라면서 낳지 못하게 하고, 키우라면서 키울 수 없게 만드는 이상한 구조다.
어젯밤, 성준과 한 결정이 떠올랐다.
'이 정글 같은 세상에, 내 아이를 초대하고 싶지 않아.'
아니, 초대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초대할 수가 없는 거다.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전화가 온다. 처음엔 반가웠다. 며느리 챙기는 시어머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전화의 진짜 목적을 안다.
"네, 어머니."
"지혜야, 퇴근했니? 밥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성준이는?"
"아직 퇴근 전이에요.
"그래, 그래. 둘이 바쁘구나."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온다. 이제 올 거다. 매번 이 타이밍이다.
"근데 지혜야."
"네."
"좋은 소식은 없니?"
좋은 소식.
그 말의 뜻을 모를 리 없다. 임신. 출산. 손주.
"아직… 없어요, 어머니."
"아이고, 둘이 너무 바쁜가 봐. 건강은 챙기고?"
"네."
"한의원이라도 가봐. 요즘 좋다던데."
"…네."
"성준이 아빠도 그러더라, 애들 언제 보냐고. 우리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을지 모른다.
손주를 보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희 이제 내년이면 둘 다 마흔인데…”
이건 대화인 걸까, 협박인 걸까.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어머니. 저희도… 노력할게요."
"그래, 그래. 기다릴게."
전화를 끊고,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보름이 다가오는지 달이 커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임신이 리스크이고, 시댁에서는 임신을 기다린다. 낳으면 내쫓기고, 안 낳으면 눈치다.
어젯밤 성준과 합의한 '딩크 선언서'가 떠올랐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했다. 천천히 생각하자고 했다.
하지만 전화 한 통에 그 결심이 흔들렸다.
정말 괜찮은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어느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발걸음은 무겁다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찜찜했다.
마음 한쪽이 자꾸 찜찜했다.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 @kimchajang.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