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려함은 그들의 이야기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숙소는 홍콩 공항에서 멀지 않은 신도시에 있었다. 회사는 거리로만 보면 가까웠지만 섬과 섬을 바로 연결하는 전철이 없어 홍콩 시내까지 나갔다가 다시 갈아타고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사장님의 지인이라는 회사 사장님과 사모님이 도착한 첫날 숙소를 안내해 주고 다음 날 회사까지는 전철을 타고 찾아갔다. TV에서 봤던 화려한 홍콩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황량하고 큰 회색 건물이 서 있었다. 사무실이 있다는 층수를 누르니 지인 분의 회사 사무실이 한 층을 다 사용하고 있고 한편에 창고로 쓰던 공간을 치우고 지주회사 사무실을 만든 곳이 있었다.



6월 초 홍콩의 뜨거운 여름날, 지혜는 싸구려 페인트 냄새가 빠지지 않아 두통과 헛구역질이 나는 공장 한 켠 사무실에 짐을 풀었다. 7월이 되자 한국에 있던 사람들과 필리핀 공장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홍콩 지주회사 사무실 개소식을 한다며 홍콩으로 왔다. 사람들은 페인트 냄새가 난다며 5분을 채 있지 않고 사무실을 휙 둘러본 후 밖으로 나가버렸다. 페인트 냄새는 1년이 지나도록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지혜는 페인트 냄새 때문에 두통이 심할 때면 잠시 나가 홍콩의 매캐한 공기를 맡곤 했다. 홍콩으로 파견온 많은 외국인들이 점점 심해지는 공해 때문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혜의 회사에 투자한 회사들의 몇몇 담당자들도 아이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영국으로,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근무 환경은 최악이었다.


해외에서 파견 근무를 한다는 친구 덕을 보겠다며 휴가를 내고 홍콩으로 놀러 왔다가 지혜의 사무실까지 따라왔던 친한 친구는 사무실에 들어와 지혜가 일하는 곳을 보고는 그 자리에 앉아 뚝뚝 눈물을 흘렸다.

"야! 너 어떻게 이런 데서 근무를 하고 있냐.. 너네 회사 너무하는 거 아냐?"




사무실의 그 페인트 냄새는 지혜에게도 오래오래 남았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암에 걸리게 되면 아마도 이 페인트 때문일 거라고 지혜는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혼자 있으면서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업무가 시작되는 9시, 홍콩 아침 8시에는 출근을 하고 7시가 넘어서 퇴근을 했다. 많지 않아도 홍콩에서의 급여를 따로 받는 이유가 자신이 해야 하는 밥값이라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순진하고 바보스러웠다. 요령을 피운다거나 적당히 둘러대는 건 소질이 없었다.



지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퇴근을 한 후엔 전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역에 내려 지하에 연결된 대형 슈퍼마켓에서 초밥이나 일인분씩 포장된 간편식을 사 숙소로 돌아가 먹었다. 주말에는 카메라를 들고 홍콩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매일 오며 가며 전철에서 보이는 디즈니랜드에는 혼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쇼핑도 좋아하지 않아 애초에 관심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지인의 회사에 오는 손님들 관광 안내도 지혜가 하게 되면서 쇼핑몰도 자주 가고 어느 백화점에 어느 명품 매장이 있는지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한국 본사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알지 못했다. 지혜는 돈들의 입출금 내역을 보고 지주 회사로서 해야 하는 각종 법인 서류 작업들을 하고 홍콩에서 진행 중인 한 건의 R&D 공동 프로젝트와 한국에서 진행 중이라는 두세 건의 회사 인수를 위해 홍콩에서 진행해야 하는 업무들만 해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홍콩 지주회사로는 수시로 송금 요청이 왔다. 출금은 한국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송금 요청은 홍콩으로 왔다. 유럽과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월급,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보내지는 사장님의 월급, 크게는 필리핀 공장에서 요청하는 돈을 합치면 한 달에도 몇 억은 족히 넘었다. 한국에서 진행하던 두세 건의 인수합병 건으로도 큰돈이 빠져나갔다. 회사의 씀씀이도 커지는 듯했다.




​어느 주말, 사장님이 사모님과 두 딸을 데리고 홍콩에 여행을 왔다. 시간이 되면 지혜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한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 사장님은 저녁 식사에 50만 원짜리 와인을 시켰다. 여전히 그 큰 미소를 지으시면서 홍콩에서 혼자 고생이 많다고 지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는 길, 택시를 타고 택시비를 청구해도 되었지만 지혜는 언제나처럼 전철을 탔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 홍콩 공항까지 가 버렸다. 대중교통 충전 카드로 1달러를 지불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지혜는 알 듯 말듯한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한 끼에 20만 원이 넘는 비싼 저녁 식사와 50만 원이 넘는 와인. 지혜가 홍콩에서 받는 생활비 약 48만 원. 필리핀 공장과 동일한 규정으로 월급의 20%만이 생활비로 나왔다. 지혜는 그 생활비를 알뜰살뜰 모아 지난 크리스마스에 쿠키들을 구입하여 한국 사무실로 보냈다. 술담배를 안 하시는 대표님은 군것질을 좋아하셨다.


'내가 여기서 얼마를 받는지 전혀 모르시는 걸까, 아니지.. 저런 식사 자리에 직원 초대해서 밥을 사주시는 게 고마운 거지'


숙소로 가는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지혜는 그렇게 씁쓸한 기분을 삼켰다. 화려한 홍콩의 겉모습이 그 저녁식사 자리였다면, 1달러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혜의 생활은 닭장 같은 홍콩의 회색 아파트들이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홍콩 사무실로 법인 카드 사용 내역서 하나가 왔다. 한국 돈 3백만 원이 넘는 카드 금액이 청구되어 있었다. 지주 회사에서 사장님에게 발급한 법인카드였지만 사용처는 사장님의 두 딸이 있는 캐나다의 한 백화점 의류 매장들이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회사 돈이잖아…‘

2,3일간의 백화점 사용 내역이 전부인 카드명세서를 손에 쥐고 지혜는 어디까지 본인이 이해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무거웠다.




지혜가 홍콩으로 간지 1년이 되어갈 무렵 한국에서의 M&A 건들도 마무리가 되고 홍콩 지주회사의 통장에 보호예수금으로 묶인 300억을 빼고 400억이 넘는 돈을 거의 다 소진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럴 만했다. 회사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었다. 지혜에게도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홍콩에 들어올 때처럼 간단히 짐을 챙겨 지혜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리로 승진하여 본사로 복귀했다. 본사의 분위기는 지혜가 홍콩을 가기 전이랑은 사뭇 달랐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지혜가 '사랑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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