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0만 달러의 투자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투자를 받는다며 외부에서 사장님 동생의 지인이라는 사람이 한 명 들어와 사무실 하나를 차지하고 부사장 직함을 달고 가끔 지혜를 거슬리게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부사장이라는 사람은 첫인상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관상은 과학이라 했던가. 욕심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본인이 G사의 투자를 받아올 것이라며 실제 임원도 아닌 사람이 임원으로서 대접을 받고 싶어 했다. 지혜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가 매사 똑 부러지는 여자 상사가, 여직원에게 차 심부름 시키는 건 사장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니 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으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해외에 있는 공장에 가봐야 한다며 출장 비행기를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하라기에 지혜가 회사 규정상 비즈니스 항공권은 대표이사만 가능하다고 대답하자 같은 학교 선배에게 그딴 식으로밖에 못하냐고 짜증을 냈다. '학교 동문이면 회사 규정 어기고 맘대로 해도 되는 건가?' 지혜는 같은 동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 회사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사장님이 저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례한 부사장은 회사와, 그리고 함께 일하던 다른 분들과 결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투자를 받기 6개월 전부터 사장님은 회사를 거의 나오시지 못하고 회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다. 사장님은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고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출장이 잦았다. 전문경영인으로 온 대표님은 사장님이 이전 회사에서부터 어려울 때마다 도와줬던 고객사의 대표였던 분이라고 했다. 사장님의 전 회사가 어려울 때면 추가 발주를 내기도 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매출에 대해 익월 현금 결제를 해 주기도 할 정도로 사장님과 좋은 인연을 맺으신 분이라고 했다. 평사원부터 시작해서 국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한 중견 기업의 대표가 되신 분으로 지금 사장님과의 좋은 인연 하나만 믿고 탄탄한 중견기업의 대표 자리를 사임하고 지혜의 회사로 오셨다고 했다. 능력도 인성도 훌륭하신 분이었다. S대 경영학과를 나오셨지만 학벌을 무기로 젠체하지도 않으셨고 권위적으로 행동하시지 않으셨음에도 권위가 있었고 직원들을 아끼고 늘 도와주시려고 했다. 작고 아담한 체구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으시면서도 따뜻했고 년간 재무제표가 나오면 목차부터 가장 마지막 페이지까지 보시는 꼼꼼한 분이셨다.


그 부사장이 진행했던 투자가 진행된 것 같진 않았지만, 부사장은 그대로 회사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지혜가 입사한 다음 해 우회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이 된 회사는 그다음 해에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 투자 회사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홍콩에 설립한 지주회사의 통장에 투자금 7,300만 달러, 한국돈 700억이 넘은 돈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랬다. 말 그대로 현금 700억이 넘는 돈이 통장에 들어와 숫자가 찍혀 있었다. 투자금을 받은 이후 회사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고 어중이떠중이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장님을 뵙기가 더 힘들어졌지만 대표님께서 중심을 잡고 계셔서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부사장 또한 대표님은 어려웠는지 자신의 사무실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서는 오만방자하게 굴지 않았다.


그러나 투자를 받은 그 시점부터, 회사는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투자금이 홍콩 회사 통장에 입금된 후, 회사에서는 홍콩 지주회사에 사람을 한 명 파견해야 한다고 했다. 법인 관리도 해야 하고 홍콩에 있는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보내거나 사장님과 함께 미팅에 참석해야 하는 등 여러 일들이 지속적으로 있을 예정이었다. 대표님은 지혜에게 일 년 정도 홍콩으로 파견을 가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부사장 쪽에서 누군가를 보내고 싶어 했지만 대표님은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사장님 지인이 운영 중인 회사에서 사무실을 조그마하게 내어 주기로 했을 뿐, 갖춰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주어진 공간에 사무실을 꾸미고 할 일들을 정리하고 법인을 실제로 운영해야 했다. 숙소 제공, 홍콩에서의 월 급여는 현재 한국 급여의 20%가 따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 욕심이 많은 지혜는 더 많은 업무들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사원이지만 그런 중요한 업무를 맡길 만큼 신뢰받고 있고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이야기가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지혜는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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