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지니..

여자 김차장의 파란만장 중소기업 이야기

by 하우주

지방에 있던 세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지혜는 바로 다시 취직을 하지 못했다. 지혜의 나이도 이미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서울에 방을 구하기는 부담스러워 친구가 있는 경기도에 7평 남짓한 오피스텔을 구하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해보고 싶던 카페 알바도 하며 구직 활동을 했다. 두 달이 넘고 세 달이 넘자 조금씩 마음도 조급해졌다. 연봉을 깍지 않겠다며 퇴사를 했는데 정작 마음이 급해지자 연봉을 깎아서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조급했던 마음을 겪고 난 이후, 지혜는 회사의 후배 직원들에게 덥석 사표부터 내지는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직도 좋고 창업도 좋다, 단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이직 준비도 하고 창업 준비도 해서 어느 정도 기반이 되면 그때 나가도 늦지 않다고.

전문직이 아닌 이상, 나이를 먹을수록, 특히 애매한 나이의 여직원일수록 조건에 맞는 자리는 점점 더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본인 스스로도 오래 쉬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현명한 선택을 못 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 또한 쉬고 있는 직원을 채용할 때는, 상대의 조급함을 이용하여 ‘좀 더 낮은 대우를 해도 오겠는데?’라며 협상의 우위에 서게 된다.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이력서를 수십 통을 보내고 면접도 봤지만, 면접 자리에서 '미혼이시네요? 결혼 계획은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대여섯 번 듣고 나니 '기혼이었으면 채용해 주실 건가요?'라고 되받아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의도와 목적만 있다면, 채용을 할 이유도, 채용을 하지 않을 이유도 차고 넘쳤다.




퇴사를 하고 난 후 반년이 지나서야 지혜는 겨우 직장을 구했다. 절실해진 마음은 어릴 때 이후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신앙심을 불러왔고,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것으로도 부족한가 싶어 신앙서적들을 사서 읽게 하였다. 어느 책에 있던 기독교 회사들을 보고 지혜는 무작정 인터넷으로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보냈다. 구구절절, 세상 경건한 마음을 담아 지혜는 몇 번이나 이력서를 수정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고, 그야말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사의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한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본인만의 전략을 짜고 면접일에 발표를 해 달라는 답메일을 받았다. 또 얼마나 정성을 들여 조사를 하고 ppt 자료를 만들었던가. 면접일,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함께 일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혜는 부끄러운 것도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왜.. 이렇게까지.. 쉽지 않은 걸까.




지혜가 들어간 회사는 좀 특이했다. 크리스천만 입사가 가능했고, 아침에 출근하면 모두 모여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종교와 직장이 구분되지 않은 채 ‘사명' 혹은 '소명'을 가지고 대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 같은 곳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했다. 특히 급여 체계가 특이했다. 프로젝트들을 따 와서 돈을 받게 되면 그 돈을 대표를 포함한 십여 명의 모든 직원들이 균등하게 나누고 따라서 급여가 없는 달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채용사이트에서 확인한 평균 연봉은 일반 다른 회사보다 훨씬 높은 곳이기에 지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첫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 150만 원이 전부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서울 외곽까지 하루에 3시간 반씩 출퇴근을 하며, 지혜의 입사를 전후로 들어온 프로젝트들이 있어 지혜는 늦게 퇴근하여 하루에 4-5시간씩 겨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 서울로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일은 재밌었다. 그전에 하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 배우는 것도 많았다.


지혜가 일한 첫 달은 프로젝트를 신규로 따낸 것이 있어서 직원들이 급여를 나눠 받았다고 했다. 지혜는 수습 급여로 세금을 떼고 138만 원 정도를 받았다. 알고 있었던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 두 달째가 되었을 때 회사는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 급여를 주지 못한다고 했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은 다른 가족들과 살거나 결혼을 했거나 하여 한두 달은 크게 지장이 없는 듯했다. 세 달째가 되었을 때도 회사는 급여를 주지 못했다. 직장인이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기에 젊은 직원들 또한 한 두 명씩 어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기에 신앙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생활이 안 되어 마음이 어려운 직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본인의 약하고 얕은 신앙심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울며 회개 기도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급여를 못 받는 게 왜 본인 탓이지?"

지혜는 조금씩 불편해졌다. 수습 기간의 급여를 본인만 받는 것이 오히려 미안해지고 있었다. 수습에게 급여를 줄 정도의 돈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예비금 정도는 있지 않을까? 수습 기간이 끝나고 네 달째가 되었다. 여전히 회사는 급여를 주지 못한다고 했다. 지혜는 다른 직원들과 상황이 달랐다. 혼자 월세를 내며 본인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대표와 이사는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라며 일말의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괜찮았다. 대신 생활비를 벌어 올 배우자들이 있었다. 아침 기도 시간에는 이 고난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들이 이어졌다.



지혜는 이해를 할 수도 납득을 할 수도 없었다. 비영리법인이 아닌 이상 회사의 존재 목표 첫 번째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이윤 창출이다. 사회 공헌, 기여.. 다 좋지만 어찌 되었던 첫 번째는 이윤 창출이다. 그리고 대표라면, 한 회사를 이끌고 책임지는 대표라면 직원들 월급 주는 건 너무나 기본이고 당연한 일 아닌가? 회사가 사정상 이윤을 내지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는 본인 집을 저당 잡혀 대출을 받아서라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한다고 지혜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은, 월급을 주지 못하는 대표가 너무도 당당했고 임원인 이사는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며 어린 직원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더욱이 수습기간이 지난 후 듣게 된 회사의 급여 체계는 정확한 1/n 도 아니었다. 구조적으로 대표와 이사가 프로젝트로 번 돈의 일정 금액을 더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수습 기간이 지난 후 들은 OJT를 끝내고 지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사에게 말했다. 이사는 이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길이라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를 다닐 이유는 없었다. 지혜는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퇴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했고, 대표와 이사는 주말 동안 기도해 보자며 지혜를 설득했다.


주말이 지나 다시 마주한 이사는, 본인은 지혜가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된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노라 이야기했다.

"이사님의 하나님과 제 하나님은 다른 분이신가 봐요. 저는 그만두라는 답을 받았거든요."

엄청난 업무량과 하루 3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으로 체력은 바닥이었고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내 몸 챙길 영양제 하나 사 먹기도 어려울 형편이었다. 그런데 월급을 못 주는 대표가 미안함이 없다...


"지혜 씨, 대표님이 그냥 이렇게 혼자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하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과 수시로 대화하시면서 회사를 신앙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예요. 나는 분명히 지혜 씨가 나가면 안 된다는 응답을 받았는데.. 지혜 씨는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네."

하.. 말로만 듣던 사이비 머 이런 거였나.. 왜.. 그냥 본인이 하나님이라고 하지..

"누가 고집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네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지혜 씨의 상식 중에 뭐가 맞을까요?"

"제가 아시는 하나님은.. 제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실 것 같아요 ㅎㅎ"


착한 사람들의 깊은, 혹은 미성숙한 신앙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을 이름을 빌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모든 것을 이해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이라면 지혜는 믿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혜는 확신했다. 지혜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로,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었다. 신이 아니라, 사람이 나쁠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지혜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그랬다. 사람이 신이 아니라 사람임을 기억하자고, 그들도 본인도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언제나 기억하자고. 그러면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애써 생각하며 지혜는 네 달짜리 경력 한 줄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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