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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Sep 22. 2024

가볍게 살아가기

지구별을 여행하는 방법

아침에 등산을 가며 생각했다.

삶이 참 가벼워졌구나..


요즘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자주 가지도 않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쉬운 요가만 골라 듣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 더 체력을 키우면 좀 힘든 수업들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목요일 몸을 풀어주는 요가 수업을 하나 듣고 또다시 고민했다. 그냥 집에 갈까, 조금 어려운 다음 수련을 하고 갈까.

문득 ‘체력 좋아지길 기다리다 평생 못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고는 다음 수업 체크인을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하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잠깐 쉬었다 하면 될 일이었다. 수련 중간중간 많이 쉬었다 ㅎㅎ

그렇게 수련을 하고 3일이 지난 아직까지 온몸에 알이 배겨 어기적거리는 중이다.



토요일에는 친한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나처럼 고향에 다녀오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심심할 수도 있는 것이 또 명절인지라, 넉넉히 주문한 송편과 엄마가 해준 음식을 싸와 대충 차리고 요즘 너무 좋아하는 오토김밥을 사 왔다.

할머니집에 온 거처럼 계속 먹을 걸 준다는 동료들의 농담에 또 한참씩 웃다가 동네 유명한 빵집에도 갔다가 소화를 시키려고 꽤 한참을 걷기도 하고 또 저녁에는 동네 맛집에 가 푸짐하게 고기를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전에는 집에 누군가 온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인간관계가 좁기도 하고,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상당한 노력과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집 주변도 아닌 이웃 동네에서 만나는 게 더 편했다.


그런데, 그냥 사 오기도 하고 냉장고 가득한 많은 음식들도 나눠먹고 가볍게 초대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니 또 어려울 일도 아닐 듯했다. 동료들을 배웅하며, 나는 언제든 편하게 또 놀러 오라고 했다. 집에서의 만남이 편하고 즐거웠다.



노느라 바빴고 추석 때부터 쭉 잔뜩 잘 먹은 덕분에 몸은 무거웠다. 예전 같았으면 미리 정해진 등산 일정을 앞두고 어제저녁에 또 생각이 많았을 터였다. 추석 귀경길 7시간 운전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고, 온몸에 여전히 근육통이 있었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가을이 되어 버린 기온 탓에 어제저녁과 아침의 아지 산책은 으슬으슬했다. 그러나 어제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그런 걱정이나 고민은 없었다.


아침 6시 반 산책길에 만난 하늘은 높고 맑았다. 이 맑은 날씨에 등산이라니! 하남 검단산 등반을 위해 집을 나서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기 전 서로 “사랑해~”를 동시에 했다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엄마의 웃음소리에 행복해졌다.

‘행복하다~ 행복이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법문을 듣는 둥 마는 둥, 운전을 하는 눈앞에 보이는 하늘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삶이 참.. 가벼워졌구나..”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무거웠던 머리에서 생각들을 한 줌 덜어내니 걱정할 것도, 나쁠 것도 별로 없었다. 많은 생각과 걱정 없이 ‘그냥 하면 되었다 ‘. 충실히 열심히 하되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고민만 하다가, 계획만 하다가 시작 못한 일들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해결되지 않을 걱정을 하지 않고 있고, 언제나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집착도 하지 않게 된 듯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쉬워졌으나 깊어졌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불필요한 해석들이 사라졌다. 그저 그 일이 사진에 찍힌 장면처럼 있을 뿐, 내가 그곳에 존재할 뿐이며 즐겁게 그 일들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삶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금요일까지도 에어컨을 틀다가 토요일 오후 비가 갠 후 갑자기 가을이 되었다. 아지와의 산책길에 긴 옷을 꺼내 입었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처럼 삶의 무게 또한 어느 순간 가벼워졌다. 여행하듯 그렇게, 삶을 즐기며 살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체력 바닥인 등린이에게 돌이 많은 검단산은 쉬운 등반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을 밟으며 옆으로 흐르는 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와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가득한 공간들을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저 즐거웠다.


선물처럼 맑은 공기와 높고 파란 하늘은 덤이었다. 정상에서 사 먹은 메로나는 맛있었고 덕분에 하산길 내내 든든했다. 당신들이 마시고 있는 막걸리가 남으니 한 잔 하고 가라는 아저씨의 제안이 감사했다.


여행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삶은 무거울 이유가 없었다. 심각하고 진지하고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면 아마도 평생 계획만 하다가 결국 길을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문을 열고 발을 내딛고 집을 나서면 된다. 그뿐이다. 언제나 좋은 일만 가득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여행을 끝내고 오면 그 또한 추억이었다며 웃어넘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가볍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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