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소더비 프리뷰에서 나라 요시토모
세계 3대 경매 회사인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의 홍콩 가을 미술경매가 10월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이중 소더비는 아시아 진출 50주년을 맞이하여 완차이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단일 소유자 컬렉션을 포함한 프리뷰 전시를 개최했다[그림1]. 미술 경매에서는 판매가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종종 뉴스에서 어마어마한 금액의 미술품 낙찰가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경매회사의 프리뷰 전시는 판매를 위한 것이고 미술 경매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쏠리게 만드는 것은 작품의 ‘가격’이지만, 메이저 경매회사의 프리뷰인 만큼 아트페어나 미술관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소더비 프리뷰에서도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우키요에부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등의 현대미술 작품과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1961-),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1980-) 등의 동시대 미술까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2019년 소더비 홍콩 미술 경매에서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 1959-)가 큰 눈의 심술 난 표정의 여자아이 그림으로 아시아 생존 작가 중 최고가(약 300억 원)를 달성했다. 나라는 단순하고 귀엽게 보이는 여자아이를 그린 회화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일본 작가이다. 나라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여자아이 도상으로 도쿄팝이나 일본의 오타쿠 문화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의 행보나 의사소통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소녀 이미지가 보여주는 복합적인 정서는 일본 하위문화 이론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라의 작품은 개인의 상상과 성찰의 자유를 추구하는 작가의 감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으며 반전과 반핵 등의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나라의 작품을 이번 소더비 프리뷰에서 태국의 수상가옥 형태를 한 작은 ‘건축물’로 만나볼 수 있었다. 나라는 드로잉이나 회화로 유명하지만, 조각, 세라믹,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감성을 표현해 왔다. 소더비 프리뷰에서 만난 설치 작품은 이런 나라의 감성을 독특하게 경험하게 한다. 나무로 만든 집은 창문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는데 창문을 들여다보면 2층에 걸린 그림 속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이 아이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1층에는 큰 눈을 감은 여자아이와 놀란 표정으로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한 여자아이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리고 집 밖의 아이는 선글라스로 불안한 큰 눈을 가린 채 어딘지 악동처럼 보이는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독일어로 안부를 묻고 있다.
나라가 그려 온 여자아이들은 동화책 속 주인공처럼 귀여워 보이는 모습 이면에 반항, 슬픔, 고통, 분노가 담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쳐다볼수록 아이의 복잡한 표정이 읽히는데 그러면 어느 순간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닌 성인의 내 모습과 복잡한 내 감정이 투영된다. 이 작품에서도 나란히 걸린 두 그림이 보여주는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상태와 집 밖에서는 안에서의 약하고 불안한 내 감정을 숨겨야 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나라의 여자아이 도상은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는 도중에 구축되었다. 따라서 이는 그가 일본에서의 유년 시절에 영향을 받은 펑크록과 독일에서의 생활에서 받은 예술적 영감, 일본이나 국제 사회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들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더비 경매에서 300억에 낙찰되었던 작품의 제목은 <Knife Behind Back>, 즉 ‘칼을 뒤에 숨긴 소녀’이다. 귀여운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등 뒤로 숨기고 있다. 아이가 등 뒤로 숨긴 것은 무엇일까? 손을 뒤로 숨기고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예쁘고 작은 사탕일 수도, 안보임으로써 더 불안하게 만드는 다른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PLACE: 소더비 홍콩(Sotheby’s Hong Kong)
소더비는 1744년에 영국에서 설립된 미국의 경매회사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가 있으며 1973년 홍콩에 진출하여 올해 아시아 진출 50주년을 맞이했다. 홍콩에서는 봄(4월)과 가을(10월)에 중국 예술품과 현대, 동시대 미술을 포함한 시계, 와인, 보석 등의 경매가 개최된다. 이번 가을 경매에서 한국 박서보의 1970년대 작품이 약 35억에 판매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