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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Sep 22. 2024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_움베르토 에코

읽기 어려웠던 책..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책..

하지만 또 그만큼 이해하면 재밌는 책..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책이 되게 잘 짜인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장미의 이름'의 내용은 단순하게 줄이면 이렇다.

한 수도원에서 발생하는 살인의 사건들을 7일 동안 파헤치는 이야기다.


도전으로 생각한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많은 역사와 종교적인 부분이 지나갔고, 하나씩 명확히 읽고 싶어 하다 보니 오래 걸렸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주의 깊게 여겼던 부분은 다름 아니라 '지식'과 '배움'이었다.

크게 보면 이 주제들을 가지고 움베르토 에코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 젊은이들은 더 이상 공부 하려 하지 않아 배움은 사양길에 들었다. 뿐인가? 세상이 거꾸로 걷는다.(p.31)"


아무래도 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동의하는 말이다.

공부하려 하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공부를 할 수 있을 장소도 잘 만들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것도 욕망이라면 어떤 환상과 허영에 머무를 뿐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또 허영, 지적 허영 말일세. 이 수도원 안에서는 지적 허영이 언어에 대한 허영, 지혜에 대한 환상에 희생되었다네.(p.93)"


수도원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은 결과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하려는 자와 호기심으로 문을 열었던 사람들 간의 파국이었다. 이 수도원의 장서관은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열리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선도될 수 있고 악도 될 수 있는 비밀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식자들이 동류끼리만 통하는 말로 이를 지키고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시도 허영심에 휩싸인 사람들의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책들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개인의 직관이나 인식이 유일선이라면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전제는 증명이 곤란한 명제가 되어 버린다. 내 마음이 개별적 실체 사이의 관련성을 감지하는 것인데, 여기에 보편성과 영속성이 있다는 것을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느냐?(p.278)"


끝으로 향할수록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을 정말 체계적으로 잘 썼다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잘 작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기호학 등 엄청나게 방대한 지식을 쏟아붓고 자신은 그 안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면서 굉장히 신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개인의 인식이 유일선이 되어버리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더불어 그것을 설명하는 일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일까.

책 속의 인물은 수학상의 지식은 언제나 진리처럼 기능을 하는 지성이 구축한 명제라 말한다. 보편적 지식을 인간이 진정으로 설계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 든다. 수학을 보편적 지식이라고 일컫는데, 이 역시도 인간들의 연약한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장미의 이름_움베르토 에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세상이 소실되었다고 믿거나 아예 쓰이지도 않았다고 믿는 책. 어쩌면 이 세상에서 한 권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소장품, 바로 그겁니다.(p.607)"


철학과에 다니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조건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많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 중에서 시학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비극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기도 하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에 대해 적었다고 말로만 알려진 시학 2권은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사람이 희극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서술을 해 나갔을지 궁금하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숨겨진 시학 2권에서 쓰인 웃음의 필요성과 정당화를 막고자 하는 수도사가 벌인 일이었지만, 과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학 2권을 탐냈던 다른 수도사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 이 점이 지혜와 지식에 대한 욕심이겠지만, 이러한 욕망이 나쁘다고 표현하는 것 또한 과한 처사로 생각한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이 작품은 과거부터 있었던 철학, 기호학을 잘 정리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또 다른 욕망으로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황을 펼쳐내며 무의미한 허영심의 결과를 보여준 것 같았다. 


글을 읽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의 말로 풀어내는 것도 꽤나 시간이 지났다. 이제야 독후감 아닌 독후감을 올리는데 말을 제대로 정리한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욕망에 휩싸인 인간의 모습들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지적인 호기심을 버리는 건 상상도 안된다. 모순되는 말들의 향연이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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