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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Aug 30. 2024

아무튼 사랑하겠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알랭 드 보통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는 나도 모르게 소심하고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가.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사랑은 무엇일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화의 소재 중 하나는 사랑 이야기다.

최근 이야기를 했던 주제는 사랑이 감정일까 아니면 어떤 것을 상징하는 단어 일까였다.


나는 감정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한 2년 전부터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이 하나 생겼다.

"지금 연애하고 있는 사람과 서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왜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할까?"였다.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p.18)"


약 270페이지 정도 되는 이 책은 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며, 그때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상황에 대한 입장들을 전달한다. 낭만적인 운명을 통해 만남을 가지고 그 상대와 만나면서 가지는 친밀함과 익숙함, 이를 넘어서서 나오는 행복한 현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헤어짐을 맞이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마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겪고 나서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너무 신기하다.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이 순간을 말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는 순간들에는 대다수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유사한 단어들로 이야기를 나누어준다. 그 광경도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안 믿는다고 대답할 거예요. 사람들도 사랑을 믿지만, 그렇게 믿어도 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는 아닌 척하죠.(p.35)"


책 속의 구절 중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를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 말이 곧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행을 다닐 때 나는 그곳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어떤 한 장면을 보고 그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통해 내가 사랑한다는 감상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내가 완전히 모른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완전히 알기도 어렵다. 심지어 나조차도 잘 모르는데, 기준을 나누는 것도 불명확하다. 맞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구절을 봤을 때 약간의 허용으로 문장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회에 의해서 구성되고 규정된다.(p.111)"


나는 사랑을 우리가 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종종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누구도 사랑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학습된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 단어를 규정하면 할수록 원래 어떤 의미를 가지고 탄생한 단어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인 듯하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사랑을 우리는 정확히 규정하고 싶어 하는 오만에 빠진 것이 아닐까.


주인공인 나는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한다. 타인인 나는 그 말을 명확히 느낄 수는 없을 것이지만 닳고 닳은 사랑이라는 말과 다르게 생경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하다고 규정한 병이었다_안헤도니아 설명.(p.177)"


행복을 느낄 때 불현듯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기억이나 기대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끝이 보이는 어떤 것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끝을 무서워한다. 사실 나는 자기 방어가 센 편이다. 그 어떤 누구를 만나도 똑같다. 이별이 두려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적확한 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이 보이는 관계를 시작하는 데의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물론 나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자들이 있지만 말이다.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p.228)"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면서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홀로 남아 있다. 동시에 주고받는 건 어려운 일이면서 능동적으로 하기에 피로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 오만에 가득 찬 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여전히 어렵다. 


책이 술술 잘 읽혔다. 중간중간 철학자들의 언어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나오는데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사랑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하는 게 재밌고 해답이 없어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다.

공통된 규정된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현대에는 여러 형태의 떠돌아다니는 사랑을 하면서 새로운 고민과 도달하는 감정이 생기게 되지는 않을까.

결론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튼 사랑할 것이다. 그게 어떤 이유든.


"나는 모든 사람이 거의 똑같은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공통의 해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p.26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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