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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Aug 09. 2024

남겨진 것들

사라진 것들_앤드루 포터

지난주에 책을 못 읽었다.

하지만 이번주에는 다행히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사라진 것들_앤드루 포터

주로 서점에 가서 읽을 책을 고르는 편이다.

서점이 주는 묘한 편안한 분위기는 책에 대한 매력을 더욱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주에 읽으려 도전한 책은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사라진 것들'이라는 제목이 더 끌려 읽기 시작했다. 또한 어떤 것이 사라진 것이며 그 사라짐 이후에 남겨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일 것 같아 궁금하기도 했다. 


이상하리만치 이번에 읽은 책은 페이지 수에 비해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평소 나름 속독이 가능한 편이라 300페이지는 1시간 반도 안 걸리는데, 2배 이상의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줄 알았던 책이라 첫 부분의 이야기는 쉽게 넘어갔다. 그런데 요즘 생각하고 있는 주제와 너무 잘 맞는 책이라 한 문장 한 문장을 온전히 생각하며 읽게 되어, 필요한 시간이 많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어떤 단어에 대해 집중하며 꽤 시간을 많이 보낸다. 최근 꽂힌 단어는 '상실'이다. '빵가게를 습격하다'와 비슷한 주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책도 상실과 시간, 남겨진 것에 초점을 맞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p.26)"
"그러니까, 내 몸이 더는 내 것이 아닐 때 진정한 자아는 어떻게 되느냐고.(p.88)" "당신은 두려운 거야. 이해해. 나도 두려우니까.(p.89)" "그런데 요점은 바로 그거야. 나는 전혀 두렵지 않거든.(p.89)"


우리는 시간이 정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비참한 일일수도 있다. 물론 그 상황을 버티기 위해 더 확고하게 살아가고 있기는 하다. 무언가 확고한 것을 찾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정해진 시간 동안 끊임없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어떤 것에 부딪히게 된다면.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버린다면. 그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리는가.


그때의 상실감은 누군가가 공감해 줄 수도, 극복을 도와줄 수도 없을지 모른다. 불안은 넘쳐나고 마음껏 해소할 마음의 여유는 없어질 것이다. 글 속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하자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p.267)"


아직 나로서는 그 현실을 견디는 방법도 모르고, 견디고 싶지도 않다.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젊지 않다. 평생의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나오는 글들의 '나'는 40대의 남자다. 그들은 자신이 가정을 이루기 전, 혹은 그 이후에도 젊음을 오롯이 느꼈던 순간과 현재의 자신의 상실을 비교하며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젊음은 과거의 일, 현재는 가질 수 없는 어쩌면 지금은 척을 하고 놀 수밖에 없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십 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시기인 것 같아. 하지만 삼십 대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시기지.(p.45)"


이십 대인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고하게 결론을 짓는 게 여전히 너무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요즘 사회는 나에게 여유롭게 살라고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나에게 뒤처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게 상실에서 오는 불안감이나 절망감은 아니다.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은 "그렇게 살면 안 심심해? 지루하지 않아? 외롭지 않아?"이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언가의 확고함을 가지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물론 그게 남들 눈에는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곤 나는 답한다. "난 외롭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아. 물론 지루하지도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낮아지고 있다.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편안함을 찾기 위한 안위의 조건을 수정했을 뿐이다.


"대니얼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어요?(p.316)" "사라지기를?(p.316)" "혹은 모든 걸 끝내기를.(p.316)" "그럼요.(p.316)"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그 과거로부터의 상실을 경험한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도, 그렇다면 나에 대한 기억의 과거로부터 상실이 동시에 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실의 고리를 끊어낼 수는 없는 건가.

어쩌면 당연한 시간의 흐름일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속 편한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이를 받아들이는 게 당연할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책 속의 여러 이야기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포솔레'다. 엄청 짧은 이야기인데,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날이면 날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단골집이 있다. 그곳의 포솔레 수프를 먹으러 간다.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은 식당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돌아온 그 식당은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있던 단골들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당연하게 포솔레 수프는 팔지 않았다. 그렇게 내용은 끝이 나는데,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지독한 상실에 빠트리는 대목이라 만족스러웠다.


사라진 것들이라는 제목은 동시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한다. 무언가가 사라지면 남겨지는 무언가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젊음이 사라질 때가 되면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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