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_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예전에 MBC 프로그램 중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한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존 레논을 살해했던 살해범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 등 많은 범죄자들이 살해를 저지르기 전에 닳도록 읽었던 책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 책은 세계 문학 전집에 들어간 작품이며, 살인자들의 손에서 뗄 수 없었던 건지 궁금함이 굉장히 컸다.
소설의 뒷부분은 휘몰아치는 내용들로 가득했고, 이는 깔끔한 결말을 맺기에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난 사람들이 그렇게 대답할 때가 가장 싫다. 분명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겁니다. 선생님 제발 더 이상은 제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p.24)"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홀든 콜필드 자신이 크리스마스 때 겪은 일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내용은 전개된다. 사실 읽다가 그만 둘 뻔했는데, 앞부분 전개가 너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취향에 상관없이 읽어보기로 다짐했으니 일단 쭉 읽어보았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구절이 꽤 많아서 당황스럽기는 했다.
"난 무식했지만, 책은 정말 많이 읽었다.(p.31)"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p.32)"
위의 두 구절은 홀든 콜필드가 책에 대해 생각한 부분이다. 놀랍게도 내가 생각하는 굉장한 책들의 기준과 유사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나는 홀든 콜필드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다. 내 옆에 친구로 있으면 비슷한 서로를 바라보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 다시는 보지 않을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을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에게 한 없이 엄격한 잣대를 대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소중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아끼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이 주인공이 안쓰럽기도 했다. 또한,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딘가 삐딱해 보이지만 자신에게 있는 방어기제를 내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구나 겪은, 겪을, 겪고 있을 일종의 질풍노도 시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누구는 사춘기의 시절이 과하게 솔직한 시기라고 하지만, 나는 솔직할 수 없어서 겉으로 많은 거짓말과 자신만의 방어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호밀밭의 파수꾼은 잘 표현해주고 있다.
"물고기들은 얼음 속에서 그냥 사는 거요. 그게 물고기들의 법칙이오. 얼음이 얼어도, 겨울 내낸 그 자리에서 그냥 지낸다는 거지.(p.114)"
"이봐요. 손님이 만약 물고기라면, 대자연이 그쪽을 보살펴주지 않을 것 같소? 겨울이 되기만 하면, 물고기들이 죄다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p.115)"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센트럴 파크의 연못에 대해 가졌던 질문을 택시 기사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겨울이 되었을 때,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는지까지 궁금해진다. 이 질문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의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환경과 상황이 바뀌는 세상 속에서 자신은 그 자리에서 머물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고 보았다. 택시 기사는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답을 하는데, 대자연이 보살펴준다는 부분이 홀든 콜필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트를 입고 왔다든지, 하는 것처럼.(p.164)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p.165)"
사실 내 사춘기 때는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는 현상을 몸소 느꼈다. 흔히 말하는 예민해지는 시기, 모든 것에 신경질을 부리는 시기이지만 그만큼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와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 사이에서 변해야만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 차라리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졌다.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 역시 겪어야 했던 것이며, 성인이 된 지금 이 책을 읽은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그 시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반항심이 더 커지고 제대로 된 고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p.229)"
책의 마지막에 가서,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홀든 콜필드가 되고 싶은 꿈이다. 그는 이 시기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 무엇도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이러한 꿈을 꾼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내가 가능성이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어떤 건지 모르는 내가 무작정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파수꾼의 자리에 내가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희망과 기대를 걸어본다.
책의 마지막 구절이 상당히 마음에 들고 공감한다. 호밀밭에 있는 모든 파수꾼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호밀밭에서 머물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행운을 빈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