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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ul 12. 2024

습격당한 상실감

빵가게를 습격하다_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을 반복하다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여름 같았다. 장마가 시작되고 여름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색다른 책을 읽고 싶었다. 서가를 보다가 재밌는 제목의 책을 보았다.

바로 '빵가게를 습격하다'이다. 그 옆 책의 이름은 마치 하나의 이어지는 내용인 것처럼 '빵가게 재습격'이었다. 자연스럽게 두 책을 고르고 만족스럽게 도서관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 정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라는 것과 '빵가게를 습격하다'가 아주 최근에 개정된 판본이라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인 '빵가게 습격'과 '빵가게 재습격'을 다시 고쳐서 재발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빌린 책인 '빵가게 재습격'은 앞서 말한 초기 작품이 맞다.


빵가게를 습격하다

생각보다 '빵가게를 습격하다'의 분량이 적었다. 그리고 내용 역시 단순했다.

첫 번째 내용의 제목은 '빵가게를 습격하다'이다. 배가 고팠던 두 사람이 칼을 들고 빵가게로 침투해 주인과의 협상을 통해 빵을 얻어먹는 이야기다. 두 번째, '다시 빵가게를 습격하다'의 제목을 가진 작품은 '빵가게를 습격하다'와 이어진다. 빵가게를 습격했던 인물들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새벽에 허기짐이 밀려온다. 그러던 중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빵가게 습격을 이야기하며, 아내와 함께 다시 빵가게를 습격하러 간다. 새벽인 시간이라 여는 빵집은 없었고 스스로의 타협으로 맥도널드를 털기로 한다. 이번에는 총을 든 채 매장 안으로 들어가 위협을 해 햄버거를 얻고 돌아온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생각이 너무 궁금했다. 후기 부분까지 읽으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부부가 모습을 조금 바꾸어 '태엽 감는 새'의 세계로 걸음을 옮겨간 듯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빵가게 재습격'에 단편으로 수록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을 이어서 읽었다. 이어서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부부의 또 다른 이야기 같았다. 사실 나는 이 유명하고 대단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하나도 읽은 적이 없었다. 이 작품들이 처음이다.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까지 읽었을 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상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 작품들 중 하나는 '노르웨이의 숲', 번역으로는 상실의 시대이다. 이 작가의 아주 소소한 작품들만 접했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상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빵가게를 습격하다'의 후기 마지막 부분에서 이 글을 썼던 때가 존 레논이 살해당한 바로 후의 상황이었고, 어쩌면 빵가게를 습격하고 싶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삭막했던 당시의 모습을 반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글을 읽었을 때 '상실'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두 차례 빵가게를 습격하게 되었을 때 견딜 수 없는 허기짐이 생겼다. 처음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빵가게 주인은 자신과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서로가 가진 부재, 상실감을 이용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또한 누군가를 해칠 생각까지 한 사람들이 주인의 생각을 듣고 기다리며 결국에는 온건한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 우리가 상실을 대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는 특수한 기아감에 대해 다룬다. 


"나는 조그만 보트를 타고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속에 잇는 해저 화산의 꼭대기가 보인다. 해수면과 그 꼭대기 사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한데,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물이 너무 투명해서 거리감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p.33)"


작중에 묘사된 특수한 기아감이다. 눈을 감고 말들을 생각하면 모습이 그려지면서 적확해진다. 자신이 가진 어떠한 상실감을 명확히 드러낼 수는 없지만 부분의 결핍을 느끼고 있음이라고 해석했다. 허탈감과 상실감을 가진 한 인간은 충동적이든 그렇지 않든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글 속에서 오히려 묘한 충족감과 동시에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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