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필드_박문영
가볍게 책 선정 이유에 대해 다루자면, 단순하다. 소재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사실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번 달 책 선정 및 진행자가 나였다. 그런 이유로 서점에 가서 책들을 둘러보던 중, '컬러 필드'라는 책을 발견하였고 뒤에 적힌 짧은 문구를 읽게 되었다.
"매칭 서비스 기업 컬러 필드의 아이콘, 컬러 뱅글은 각자의 성적 페로몬에 따라 색을 드러내는 팔찌였다. 구매자들은 뱅글의 색을 기준으로 각자의 기호에 맞는 연인을 택했다."
작가가 어떤 형태의 세상을 표현했을지가 궁금해졌다. SF 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솔직히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나의 책 읽기 흐름은 취향이 아닌 책도 끝까지 중단하지 않고 읽어보기였기 때문에 도전하기로 했다. 책을 전부 읽고 난 뒤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179페이지라는 비교적 짧은 이 책은 컬러 뱅글이 주요 소재이다. 컬러 필드라는 회사는 컬러 뱅글이라는 팔찌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원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흐름은 이와 같은 기업의 흥행을 일으켰고, 컬러 뱅글을 낀 사람들끼리 모여 살 수 있는 컬러 필드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이 역시도 회사가 관리하고 있다. 글에 따르면 팔찌의 색은 250개가 된다고 한다. 또한 이 색깔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더불어 특정 색깔을 지닌 집단이 생겨나고 사회적인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매칭 성공률도 회사에서 제공한다. 색을 통한 결합이다.
"정말 이상한 시대였죠? 다들 고통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고통 안에서 위로를 주고받았으니까요."
"안류지는 컬러 필드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이상한 시대를 건너왔는지 의심스러웠다. 고통 밖으로 무사히 탈주했는지 궁금했다. 다들 정말 무게중심을 잘 찾은 게 맞나. 거칠고 황량한 감정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사람은 없나."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은 '나는 저 세상 속에서 컬러 필드 안에 살고 있을까, 밖에 살고 있을까.'였다. 중간 즈음에 컬러 필드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까. 다자 연애, 선명한 관계, 호르몬 변화, 기한이 있는 애정.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처음에는 관계에 상처받지 않는다고 하나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인간이 누군가가 떠난 이후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연애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 말이 컬러 필드에 동의한다는 의미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여기든, 밖이든 관계란 게 다 선명해요? 관계는 하나의 색이 아니잖아요. 근데 누가 떠나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은요? 누구도 상대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일 순 없어요.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한 게 잘못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누가 옆에 있든 없든, 어차피 불안과 고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결국 혼자 견뎌야죠."
"사람을 항상 가볍고 산뜻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말이네요."
영원한 애정과 관계는 성립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대일 관계도 유지하기 힘든 사회 속에서 오히려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두려울 수도 있다. 우리에게 컬러 필드라는 것이 하나의 세상의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속에 나온 바로 그 형태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상황들의 나열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 금단의 사랑이 없어지면 예술도 없어지는 거야."
이 말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 금단의 사랑을 우리는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책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안류지, 백환, 장은조가 나온다. 안류지의 어머니는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한다. 그러다 백환과 장은조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안류지의 어머니는 백환과 장은조의 아버지가 가정이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장은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자신의 동생이 아닌 다른 아이에게 아빠라고 불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아이는 안류지다. 이 사랑도 금단의 사랑인가. 감정적인 피해를 그들의 자식이 보는 게 다자 연애를 할 때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이를 자식들이 선택한 적도 없었는데. 그리고 피해 본 자식이 또 다른 피해자인 자식에게 복수를 하는 상황이 기이하기도 했다. 무엇이 옳다고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컬러 뱅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는 책 속의 세계에서 금단의 사랑은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류지는 자신의 아쿠아 뱅글 색을 띠는 팔찌를 착용하며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처음으로 주도한 전시는 지난 연인에 관한 작업을 다룬 것이었다. 금방 관계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지난 연인과의 사랑을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켜켜이 쌓인다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러면서 장은조가 근무하는 바로 용기라는 발을 달고 뛰어간다.
빠르게 변화하는 가치관과 관계 속에 둘러싸인 이 시대에서 좋든 그렇지 않든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랑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보이지 않는 컬러 뱅글을 찬 우리가 자유로운 사랑의 형태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