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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un 21. 2024

가벼움 속에 살고 싶은 무거운 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실 이 책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관심이 없었다. 밀란 쿤데라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의 또 다른 책인 '농담'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비교적 명확했다. 바로 요즘 내가 꽂혀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인 '존재' 때문이다. 평소에 여러 키워드들을 생각하며 다양한 방면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뻗어나가는데, 지금은 '존재'에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 궁금했던 부분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걸까, '존재'에 참을 수 없는 걸까였다. 체코어로는 Nesnesitelná lehkost bytí이며, 프랑스어로는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이다. 책을 읽기 전,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역시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첫 문장부터 영원한 회귀, 니체, 철학자, 반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책이 난도가 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바로 보이는 듯하다. 밀란 쿤데라가 담고 싶은 어떤 철학적 말들은 1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1부 제목 자체가 가벼움과 무거움인데, 재밌게도 5부 제목도 가벼움과 무거움이다. 비슷하게 2부와 4부의 제목이 모두 영혼과 육체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p.13)"


이 작품이 현대의 역사를 표현하는 글임과 동시에, 그 속에서 살고 있었던 지금도 살고 있는 인간들의 존재에 대해 다루는 글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여러 사람에게 가벼움이면서 동시에 무거움일 수도 있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도 그러하다. 대표 인물들로는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가 나온다. 체코 프라하, 스위스 취리히 등 여러 장소에서 한 시대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 상황과 사회의 혼란을 보여준다. 책을 쭉 읽을 때, 결말이 어떻게 날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서술하는 '나'라는 존재자가 과연 네 인물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맞을까. 감히 짐작하건대, 맞다. '나'라는 말 자체가 독자가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 등장인물들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한 부 한 부 읽어나갈 때마다 지정한 주인공이 달라졌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사비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과 가치관이나 상황이 가장 잘 맞는 인물에 이입해서 읽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사비나가 등장하게 되는 부분은 토마시가 여자와 에로틱에 대해 다루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이다. 토마시와 연관이 있던 사비나는 토마시에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삶을 만들게 해 준 테레자와도 관계를 맺게 된다. 주요 인물들 중 하나인 프란츠와는 말 그대로 반대의 사람이면서 서로의 끌림을 무시할 수 없는 연인이었다. 토마시의 첫 번째 부인과 토마시 사이의 아들 역시 사비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관계뿐만 아니라 사비나가 하는 말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서술하는 사람의 생각처럼 느껴졌다.

사비나는 가벼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유로우면서도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사비나는 가벼운 삶을 지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무거운 세상 속에서 삶은 비교적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테레자와 토마시는 무거움의 분위기 속에서 죽었다. 그녀는 가벼움의 분위기에서 죽고 싶었다. 그 가벼움은 공기보다도 가벼울 것이다.(p.446)"


책 속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한다. '키치'다.

글을 인용해 이야기하자면,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을 도출한다고 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을 키치라 부른다.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함에 따라 원래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지워졌다. 다시 말해, 키치란 본질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따라서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한때 '키치'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심지어는 노래까지 나왔다. '키치 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들만 취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을 시작할 때,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다룬다. 다시 돌아가보면, 종종 우리네의 인생은 매 순간 무한히 반복된다고 말한다. 영원한 회귀 속에서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을 보인다. 직선으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무한히 반복되는 삶은 결국 어떠한 심판을 내리기 어려운, 무의미함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각자의 키치는 각자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가지고 나아가면서 반복되는 삶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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